어느 집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우리 민족은 소박한 농경문화여서인지 재산을 늘리는 수단으로 전답을 사들이고 새집을 마련하여 온 식구가 오붓하게 살고 싶어 했다. 특히 새집으로 이사하는 경우에는 푸짐한 음식을 장만하여 이웃들을 대접하였다. 초대 받은 이웃들은 달걀 꾸러미나 통성냥 등을 사들고 가서 축하하며 농악을 울려 한바탕 지덕(地德) 밟기를 하는 정겨운 집들이 문화가 이어져 왔다.


 


 전북 익산시에는 대안학교형 초등 4개 과정반, 중등 2개 과정반, 고등 1개 과정반으로 학력인증제반과 검정 고시반을 병행하는 재학생 80여 명, 교사 22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개교 45주년을 맞는 무궁화학교가 있다. 나는 이 학교 교장으로 6년째 재직 중이다. 국가 보조금으로는 학교 재정이 어려워 독립건물은 없고 열약한 임대건물로 유지하다가 올해에는 교육청이 요구하는 교실 규격 6실과 교육학습 환경을 갖춘 곳으로 여러 선생님, 졸업생들 그리고 지역사회 유관단체의 후원으로 올해 2월에 이사하여 그간 고마운 분들에게 5월에야 집들이를 했다.


 


 음식 재료는 고기 및 공산품을 제외한 채소나 과일 그리고 쌀 등은 선생님들, 졸업생들이 후원해주신 재료로 마련했는데 특히 여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손님을 대접할 음식을 조촐하지만 넉넉하게 마련하여 점심때부터 저녁때까지 얼추 300여 명이 넘게 대접을 했다.


 


 올해는 때이른 더위로 한여름 못지않았다. 음식을 조리하는 여선생님들에게 조리기구가 내뿜는 열기가 계속 주방에 쌓이니 찜질방 같았다. 조리실에서 수고하시는 여선생님들의 턱 끝에서는 화장을 지운 땀방울이 떨어지고 등골에는 이른 봄 산골짜기 눈 녹은 물처럼 흠뻑 젖었다. 나는 선풍기 몇 대를 설치하여 해결책을 시도해보았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열기와 음식 조리 연기 속에서 가랑비 맞은 모습으로 조리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니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죽었다가 내일이나 깨어났으면 싶었다.


 


 점심때가 되니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6개 교실의 책상을 식탁으로 활용했다. 메뉴는 20여 가지로 준비하고 각 식탁에 준비된 메뉴 쪽지에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면 만든 음식을 갖다 드렸다. 조리하는 선생님들이나 서빙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다 전문성이 없어서 보는 사람은 어설프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모두나 내 일처럼 도와주셨다. 왔다 가시는 손님마다 맛있고, 감사하게 먹었다고 칭찬하니 입에 붙은 말일지언정 선생님들의 노고에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오후 2시가 넘으니 손님이 뜸해서 가락국수로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점심을 때우고, 식자재 점검과 각 교실 식당을 점검해보니 오전과 점심때 손님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대접이 소홀했던 점 그리고 식자재도 거의 바닥이 나서 다시 가져와야 했다. 특히 졸업생이 방울토마토 20박스를 후원하여 식탁마다 탱글탱글하고 분홍빛 토마토를 기본 음식으로 깔아놓으니 오시는 손님마다 주문 음식이 도착하기 전 방울토마토에 손이 가면서 담소를 나눈 것이 조금은 여유로워 보였다.


 뜻있는 손님들은 교실의 조명시설을 보고 조명설치를 약속해 주신 분도 계셨다. 학교 교구재나 사무용품 집기류나 여러 후원을 자처해주시어 그것 다 받으면 부자학교가 될 것 같았다. 그 옛날 어려운 시절에 학교를 졸업하고 공직에 근무하는 중년의 졸업생 손님은 자녀들과 같이 방문하여 아버지가 어렵게 공부하며 꿈을 키웠던 학교를 소개하는 산교육의 장으로도 이용되었다.


 


 어느 할머니는 며느리와 사위들이 할머니를 중학 졸업자로는 알고 있기에 그걸 숨기고 본교에서 중졸, 고졸과정을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하시고 서너 개의 자격증까지 취득하시어 현재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며 졸업장과 자격증을 거실에 훈장처럼 비치하여 이제는 며느리와 사위들 앞에서도 떳떳하고 뿌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70세가 훨씬 넘은 어느 할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화장지 한 묶음을 가지고 오셔서 이 학교 때문에 자기 평생에 초등학교 졸업장이 있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서 이제는 세상천지가 명경 같다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학교가 있어 이렇게 보람된 사람들이 많으니 보다 더 진실하고 참된 사명감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봉사해야 한다는 각오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채찍을 움켜쥐게 되었다.


 


 오후 9시쯤 집들이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종일 손님맞이 행사로 갑자기 피곤이 엄습했다. 그래도 전주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에어컨을 켜다가 차창을 열기를 반복해도 졸음은 눈꺼풀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죽으면 안 된다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차선은 제일 바깥 차선을 유지하고 시속 60정도로 유지하며 쉬지 않고 아무 노래나 목청이 터져라 부르니 잠이 달아났다. 어느 사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린 것도 없이 손님들을 모시고 선생님들만 고생시켰다고 생각하면서 하늘의 별들을 보니 별들은 잘했다는 뜻인지 그저 깜박거리기만 했다.


                                                           (2019.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