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명월의 고장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역사와 문화를 좋아하는 나는 요즈음도 충청도 지역을 자주 찾는 편이다. 전주와 인접하여 가깝기도 하지만, 30여 년 동안 충청도 지역을 휘돌아 공직생활을 하던 동생이 충청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청풍명월 감상’이란 제목으로 ‘알기 쉬운 충청도역사’를 펴낸 이유도 한 몫 한 것 같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이란 뜻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인데 곧 올곧은 선비정신을 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충효(忠孝)로 다듬어진 예절() 바른 양반들의 고향이며, 고고한 선비들이 사는 ‘물 맑고 바람소리 맑은 청풍명월’의 고장이라 알고 있다.


 서울 살이를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고향이 충청도냐고 물었다. 내 어투가 충청도말씨를 닮아서인 것 같다. 아니라고 하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런데 내가 활동하던 지자체(구청)는 충청북도를 통해 단양군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내가 여성단체 대표로 있을 때 구청의 요청으로 봄이면 농촌지원 일손 돕기에 나섰다. 여름엔 단양마늘 축제에 초청을 받았으며, 추석 즈음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시고 알밤을 주으러 갔다. 가을에는 봄에 계약 재배한 감자를 캐며, 소백산 줄기의 맛을 자랑하는 사과를 직접 수확하러 단양을 찾았다. 어설픈 솜씨로 캔 감자와 사과는 농민들과 단양군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상자에 포장되어 서울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직접 배달까지 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농촌직거래를 하다 보니 우리는 틈만 있으면 충청도 온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중, 나는 산 높고 물 맑은 곳, 거기에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충청도를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다. 친구들이나 모임 등의 나들이는 물론, 문화답사팀들에게도 무조건 충북지역을 소개하며 앞장을 섰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인민을 다스리기 위하여 지방행정조직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했는데 그 5소경 중 중원경(中原京)이라 불린 충주의 중원탑을 답사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940)은 충청지역을 지배하는데 있어 중원경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고려왕조에 충성을 바라는 뜻’에서 지금의 ’충주(忠州)‘로 개칭했다는 해설을 곁들였다. 8C 9C 초에 세워진 충주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은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탑 중 가장 높고 크다. ‘중앙탑’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탑은 높직한 토단(土壇), 2층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우뚝 서 있어 마치 하늘로 치솟은 첨탑처럼 보인다. 탑 전체의 길이는 12.95m,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하늘로 치솟은 느낌을 받아 안정감보다 상승감을 더 나타낸다.


 수안보 온천은 단골이 되었으며,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뱀에게 잡혀먹힐 위기에 처한 새끼를 구해준 까치의 보은전설을 따라간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목숨을 바쳐 싸웠던 탄금대, 우륵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彈琴臺)라 불리는 곳, 충주호 유람선, 고수동굴, 소백산 희방사 12일 등반 등을 안내하는 나는 충청도가 고향인지 진짜 전라도가 내 고향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어느 날, 우리는 가을 감자를 캐러 소백산 자락에 갔었다. 우리 일행이 다다른 곳은 소백산 중턱 넓은 산밭이었다. 우리 전라도에서는 볼 수 없는, 지렁이처럼 꼬불꼬불한 밭이랑이 길게 늘어져 있는 그냥 돌너덜밭이었다. 이 속에 뭐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군청 직원은 돌이 오줌을 싸서 농사가 더 잘된다고 했다. 24절기 중, 하지를 중심해 수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하지감자를, 이곳은 하지가 지나 감자 싹이 다 마르고 나면, 곧바로 고랭지채소의 씨앗을 심는다. 여름배추를 재배하여 수확한 다음 가을에 들어 비로소 감자를 수확한다. 여름동안 땅속에 그대로 보관해둬 맛좋고 질 좋은 감자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가 가까워오니 옛날 사카린 넣고 쪄주던 그 감자가 생각난다. 너무 바빠 뒤돌아볼 틈이 없는 요즘, 산세 좋고 인심 좋은 ‘청풍명월의 고장’을 찾아 유유자적 즐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