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문학관을 찾아서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나는 채만식문학에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원광대학교교육대학원 졸업논문을 썼는데, 제목은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풍자성(諷刺性)에 관한 연구’ 였다. 큰 제목이라 쓰기가 힘들었다. 교수님들의 참고자료 제공과 지도를 받아가며 논문을 완성했을 때는 하늘을 날듯 기뻤다. 그 논문은 지금도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학생들이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소설가 채만식은 내가 동행하고 싶은 분이다. 언젠가 군산에 있는 채만식문학관에 가보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문학작가회에서  가을철 문학기행 코스에 채만식문학관 관람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1124, 문학기행에 나섰다.


 


  먼저 문학관에 가길 바랐는데, 전주에서 출발해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 진리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에는 너른 갯벌이 펼쳐지고 그 뒤로 멀리 진안 마이산을 닮은 망주봉(望主峰)이 높이 솟아 있었다. 우산을 쓰고 망주봉을 바라보며 해수욕장으로 갔다. 낯선 문우들과 비를 맞으며 장자도와 대장도 그리고 진월리를 전경으로 사진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군산으로 달려가다 얼큰한 꽃게탕으로 점심을 먹고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아갔다. 1930년대의 시간여행’이라 쓴 빨간 꼬마열차가 어린 아들딸과 아빠엄마를 태우고 철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가 된 옛 군산의 모습을 관람하라고 안내를 한 것 같았다. 골목에는 채만식 소설 ≪탁류(濁流)≫에 나오는 인물인 정 주사, 초봉, 계봉, 고태수 동상이 작품 속의 활동을 알렸다. 곁에는 ≪탁류≫를 소개하고 줄거리도 이야기하며 군산이 채만식의 고향임을 자랑한 게 아닌가?


 


  박물관을 관람하면서도 마음은 채만식문학관에 가 있었다. 소설가 채만식이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전후 근대 군산을 살피며 해양물류역사관, 기증자 전시실, 독립영웅관, 근대생활관 등을 관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東國寺)도 한참 걸어가서 보고 채만식문학관으로 찾아갔다.


 


  드디어 채만식문학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귀를 곤두세우고 해설사의 자상한 해설을 들으니 채만식 문학에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문학관은 소설 ≪탁류≫의 배경지인 금강 주변에 200131일에 개관했다. 문학광장의 부지가 9,887㎡이고, 문학관은 2층 건물로 연면적이 533㎡이다. 건물형태는 군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를 형상화한 거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한 척의 배와 같다. 1층은 전시실과 자료보관실, 2층은 영상실과 세미나실이 있었다.  


 


  연보()를 보았다. 채만식 소설가는 1902년 군산시 임피면 읍내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당시 임피현은 군산에서 20㎞ 떨어진 곳으로 향교도 있었다. 보통학교에 입학 전부터 시작한 한학을 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했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갔다. 동경 와세다대학 문과에 입학해 2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귀국해 작품 활동을 했다. 대학은 중단했지만 부유한 환경에서 교육을 잘 받아 상상력이 풍부해 다작(多作)의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장·단편 소설 200여 편에다 동화나 수필 등 여러 문학 장르의 글을 더하면 1,000여 편이 넘는다. 6.25전쟁이 일어난 다음해에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 고향에 묻혔다. 오래 살며 작품 활동을 해 혼란한 시대를 바로 잡아주는 횃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긴 진열장에는 채만식 소설가가 출간한 빛바랜 대표작인 단편, 중편, 장편소설들이 전시됐다. 7, 80년 전 문학 활동의 개척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제목만 차근차근 읽어가다 1949년에 출간한 장편소설《탁류》상하 두 권을 보았다. 193738년 조선일보에 198회에 걸쳐 연재된 대표작이다. 고향인 군산을 배경으로 암울한 한민족의 삶과 세태를 풍자적으로 토박이말을 써가며 묘사했다는 게 생각났다. 내 석사학위 논문 참고문헌이라 더 자세히 살펴보고 사진도 찍었다.

 

  정면 자그마한 글방에는 채만식 소설가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책상 왼쪽에는 원고지가 수북이 쌓였고 오른 쪽엔 책이 놓였다. 긴 칼라 하얀 와이셔츠에 파란색 양복을 입고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펜으로 잉크병의 잉크를 찍어 글을 쓰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양복과 외투 한두 벌씩 걸렸다. 뒤쪽 서상에는 본인이 쓴 작품집이 꽂혔다. 열어놓은 뒷문 밖으로는 토담 지붕과 파란 하늘에 별이 반짝인 걸로 보아, 깊은 밤까지 글과 씨름했으리라.  

 

  2층으로 올라갔다. 채만식 문학 연구의 석·박사 학위 논문이 몇 백 권이나 있었다. 혹시 내 논문도 있을까 눈이 휘둥그레져서 찾아보았다. 베란다에 있는 전망대에서 채만식 소설가처럼 금강을 바라보았다. 그 때의 탁류를 볼 수 없어 서운했다.

 

  문학관이 일찍 개관되어 관람하고 졸업논문을 썼더라면 좀 더 알찬 논문이 되었을 게다. 채만식 문학을 많이 읽고 상상력과 문장 표현력을 본받고 싶다. 또 작품 창작활동의 강한 집념을 수필 쓰기에 길라잡이로 삼아야겠다. 군산 임피에 있는 생가 터와 도서관에도 가보고 싶다.       ,

                                                     (201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