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그 길고도 긴 나날들

김 학


평소에는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 월요일인가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금요일이 돌아온다. 토요일이 휴일이 되면서 일주일은 더 짧아졌다.

홀수해인 올해는 내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해다. 지난해부터 임플란트 치료를 하느라 치과병원에 드나들면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지도 모른 채 아름다운 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6월 25일, 아침식사를 거른 채 단골 병원을 찾아가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오전 9시가 되자 검진이 시작되었다. 소변을 받고, 혈액채취를 하며, 엑스레이를 찍었다. 위내시경도 했다. 힘들게 위내시경을 끝내고 나자, 담당의사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하니 1주일 뒤 오후 2시쯤 다시 병원으로 나오라고 했다.

조직검사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는데, 그 동안 내게 위암이 생겼다는 이야기일까? 그 일주일이 그렇게 힘들고 불안할 줄 몰랐다. 무슨 음식이나 잘 먹고 소화도 잘 시켰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불안감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만약 이 의사가

“위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진찰해 보시오!”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면 어느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고, 또 언제 수술을 해야 할 것인가? 아내와 아들딸들이 걱정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온갖 잡념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는데 배고픈 줄도 몰랐다. 보호자로 나를 따라온 아내는 슬슬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닫고 있었다. 겁을 먹은 것 같아 오히려 안쓰러웠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몹시도 힘들었다. 신문이나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아도 재미가 없었다. 몇 군데 모임에 참석해서는 내가 이 모임에 다시 참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괜히 쓸쓸하고 서글퍼졌다. 하지만 내가 건강검진 결과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겁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일요일 저녁 친손자와 외손자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이번 통화가 마지막이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먼 훗날 이 손자들이 할아버지인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내랑 둘이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 외식을 해도 예전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하구나 싶었다.

다음 날 아내와 함께 한국주택금융공사 전북지사에 가서 우리 부부가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을 신청했다. 다음 달부터 매달 평생 주택연금을 준다고 했다. 주택연금을 신청했으면 가능한 한 오래 살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내가 만일 위암이라면 어떡하나? 설령 그렇더라도 아내가 오래 살면 될 테니까,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자위했다.

나는 매주 안골노인복지관과 신아문예대학에서 수필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시간에도 건강검진 결과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여섯 번째 수필집 『지구촌 여행기』를 출간하고자 수필과 비평사에 유에스비에 담긴 원고를 넘겼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2019년 상반기 원로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으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활동할 수 있을 때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15번째 수필집『하루살이의 꿈』을 출간했는데, 두어 달 만에 또 수필집을 출간하게 된 셈이다.

문득 처녀수필집을 출간한 L수필가의 인사말이 떠올랐기에 더 서둘렀다.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는 L수필가는 건강에 자신이 없기에 서둘러 처녀수필집을 출간했다지 않던가?

나는 불안과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을 하고, 컴퓨터로 문하생들의 수필 첨삭작업을 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늘 개운치가 않았다. 드디어 조직검사 결과를 알아볼 날이 다가왔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담당의사에게 불리어 갔다. 그 의사는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괜찮다며, 처방을 해 줄 테니 약을 한 달 복용하라고 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한 달이 아니라 석 달인들 무엇이 힘들 것인가? 의사는 내시경이 일상적인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놈의 조직검사 때문에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불안해하고 걱정스러워 했던가?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잘 나가는 어느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검진이 끝나자 검진과목마다 터무니없이 많은 약을 처방해주었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그 병원을 찾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두 그렇게 처방해 주더라고 했다. 환자를 위한 처방이 아니라 병원약국의 매상을 올리려는 것 같아 찜찜했다. 그 뒤로 나는 그 병원을 찾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병원 가기가 두렵다. 기계도 오래 사용하면 낡아서 고장이 잦듯이 사람의 몸도 나이가 들면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두렵게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병원이 엎디면 코닿을 곳에 있는 안골에 살고 있다.

(2019.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