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밥 누룽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내가 네 살쯤 되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흉년이 들어 조가 많이 섞인 밥을 차리고 계실 때면, 나는 방안에서 문턱에 몸을 의지한 채

 “아버지 밥, 어머니 밥, 내 밥!

하며 중얼거렸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건 어머니께서 지은 밥을 다 차리고 난 뒤, 달챙이 숟갈로 긁어모아 주시는 깜밥 누룽지를 기다리며 하던 중얼거림이었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깜밥 누룽지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어머니가 밥을 차릴 때면 그런 중얼거림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당시에는 전란 뒤로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던 시절이라 그만한 간식거리도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어떤 이는 ‘누룽지’라고 말한다. 턱없는 소리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소하고 맛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요리는 아니라고 말이다. 맛이라는 것이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세상의 산해진미는 모두 맛보았을 청나라 황제가 말했다고 하니, 그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믿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청나라 전성기의 황제인 건륭제가 신분을 숨기고,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 부근을 시찰했더란다. 미처 음식이 준비되지 않았고 식사 때가 지나 인근 농가를 찾아가 한 끼 식사를 청했는데, 방금 밥을 먹고 난 주인이 남은 밥이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그런데 변복을 한 황제가 불쌍해 보였던지, 집주인이 누룽지와 채솟국물을 데워 내왔다.

 황제가 뜨거운 누룽지에 국물을 부으니 ‘타다닥’ 소리가 나며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시장했던 건륭제가 맛있게 누룽지탕을 먹고는 종이에 ‘한바탕 천둥소리 울리니, 천하제일 요리가 나왔네.’라고 써서 집주인에게 답례로 주었다고 전한다. 이것이 중국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게 된 누룽지탕의 유래고, 누룽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된 연유라고 한다. 아무리 황제라도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 싶다.

 누룽지는 맛이 고소하여 간식거리로 먹기도 하고, 물을 부어 숭늉으로 끓여서 먹기도 한다. 속칭 누룽갱이· 가마치· 깜밥· 눌은밥이라고도 부른다. 간식거리가 귀했던 시절에는 밥을 지을 때 일부러 밥을 많이 눌려서 생긴 누룽지를 기름에 튀겨서 과자처럼 먹기도 했다.


 


  요즘은 전기밥솥이나 압력솥, 작은 냄비에다 밥을 지으니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도 누룽지에 대한 기호도가 여전히 높기에 누룽지를 만드는 공장이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심지어 누룽지 만드는 기계를 사다가 만들어 먹는 가정도 적지 않다고 한다.

 누룽지는 얼핏 중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쌀로 밥을 지어 먹는 나라에는 모두 누룽지가 있다. 중국에는 궈바(鍋巴), 일본에는 오코게(おこげ), 베트남에도 꼼짜이(Com chay)라는 누룽지가 있다. 아시아 사람의 주식은 쌀이니까 당연히 누룽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실은 유럽에도 누룽지가 있다. 유럽 중에서 쌀 음식이 발달한 스페인 사람들도 누룽지를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스페인 누룽지는 볶음밥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는 파에야(Paella)를 만들 때 생기는데 소카라트라고 한다. 이 소카라트가 요즘 미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파에야 전문 식당에서 일부러 파에야가 눋도록 만든 뒤, 소카라트를 먹을 수 있도록 개발했는데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요즘 건강에 좋다고 하여 아내는 누룽지를 애용하고 있다. 그래서 인근 깜밥 누룽지를 만드는 가게에서 사다 먹는다. 조그마한 가게인데 하루에 팔려나가는 양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누룽지가 건강에 좋은 식품이란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인터넷을 보니 건강에 이만한 식품이 없다 할 정도로 누룽지는 놀라운 효능을 가지고 있다. 그 효능을 보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주어 두뇌 발달에 좋고, 탄소 성분이 다량 들어 있어서 면역력을 강화해주며, 아미노산이 풍부해 간 기능이 좋아지고, 섬유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장 기능이 향상되며, 칼로리가 낮아 체중을 조절해준다고 한다. 이밖에도 숙취 해소, 위장기능 향상, 항암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누룽지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보리 누룽지라고 한다. 보리 누룽지의 효과와 기능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란다. 보리 누룽지는 쌀 누룽지보다는 백 배, 보리밥보다는 열 배는 더 좋다고 한다. 심지어 보리 누룽지를 최고의 불로장생 식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보리 누룽지를 먹으면 몸속에 있는 온갖 종류의 기름때, 콜레스테롤 같은 것들이 분해되어 모두 빠져나가 혈액이 깨끗해진다고 한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고지혈증 같은 것들이 씻은 듯 낫고, 몸이 따뜻해지고, 중성 지방이 빠져나가 몸매가 날씬해진단다. 그래서 가게에 보리 누룽지를 부탁했더니 만들기가 쉽지 않은지 어렵다고 한다. 기회가 닿으면 직접 보리 누룽지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예전에 우리는 누룽지를 주로 숭늉으로 만들어 먹거나 군것질거리로 먹었다. 옛날에는 먼 길 떠날 때 먹는 비상식량으로 누룽지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누룽지가 지금은 세계인의 별미로 발전했다니 놀랍다. 그것도 군것질거리가 아닌 값비싼 요리로 식도락가의 입맛을 끌고 있다. 중국의 누룽지탕, 베트남의 꼼짜이, 일본의 오코게, 여기에 스페인의 소카라트까지 이제는 누룽지마저 글로벌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누룽지 백숙을 비롯해 다양한 누룽지 음식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천하제일 요리’라고 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은 것 같다. 많은 연구와 노력으로 우리 깜밥 누룽지가 세계 최고의 식품으로 그 반열에 오를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2019. 4. 6.)

 

*깜밥 누룽지는 우리가 애용하는 누룽지 가게에서 만드는 누룽지 제품의 상표다. 왠지 내게는 더 정감이 느껴져 이 글의 제목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