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미

 

백제 때 바다는 어떠했을까? 고시조를 살피면 대천 앞 바다에는 파도가 자심했던 모양이다.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돛대도 잃고 배도 부서지고 바람 불고 물결치고, 갈 길은 천리만리이나 사면은 어둑하고 저물어 깜깜한 데 까치놀까지 뜨고 게다가 수적(해적)까지 만난 도사공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노래하고 있다. 까치놀은 삼각파도일 터이다.

 

백제어로 바다는 어찌 일컬었을까? 관련 연구들을 살피면 ‘나미’가 백제어로 바다라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는 듯하다. 서산시 해미(海美)의 앞선 땅이름에 여미(餘美)가 있다. 땅이름 餘美(남을 여, 아름다울 미)로부터 ‘나미’가 백제어로 바다를 이른다고 결론낸 듯하다. 일본어 ‘나미’(波)가 있으니 그럴 듯하다. 조선왕조가 들어서고 태종 때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쳤다. 정해의 ‘해’와 여미의 ‘미’를 따 ‘해미’라 한 것이 해미의 유래이다. 아쉽지만 백제어 ‘나미’를 복원하려던 노력은 어긋난 듯하다. 전남 화순은 백제 때 仍利阿․海濱(잉리아․해빈), 경덕왕 때 汝湄(여미)로 고쳤다. 仍(인할 잉)은 조선 때 이두로 /너/를 적으므로 백제 때 화순(너리고) 지역에서 백제때 바다는 ‘너리’인 셈이다. 파도를 이르는 말에 ‘너울’과 ‘놀’이 있는데 ‘너리’와 닮아있다.

알타이어에서는 바다와 호수가 같은 뜻으로 섞여 쓰이고 있다. 몽골어 ‘나우르/노오르’는 호수를 이르며 한국어 너울․놀과 닮아있다. 바다나 호수를 이르는 퉁구스어 ‘라무/나무‘는 해주의 땅이름을 살필 때 고구려어로 ’노모‘(연못)에 해당된다. 일본어 ’누마‘(沼=소) 또는 ’나미‘(파도) 또한 같은 계통의 말인 듯하다. 해미라는 땅이름에서 학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바다는 해미 아닌 화순이나 해주에서 찾아진 셈이다.

 

당진단층을 공부하면서 서산시 운산면에서 자주 묵곤 하였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도 있고 동으로 당진, 북으로 고대․석문, 남으로 해미, 서쪽으로 서산을 넘나들기 좋다. 게다가 여름에는 당진단층을 따라 머무는 바람으로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운산면에는 여미리라는 마을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에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임을 살필 때 해미의 앞선 고장인 여미현이 바로 운산면인 모양이다.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쳐 해미현으로 하였음에도 짐작컨대 어느 땐가부터 여미현이었던 운산면이 해미현에서 갈라져 나온 모양이다. 결국 해미읍에는 옛 정해현만 남은 셈이다.

 

태안마애석불과 함께 서산마애삼존불의 조성에 대해 많은 설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 세력을 이룬 이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다. 운산면 용현리 산자락에 모셔진 세 부처는 석가모니부처․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이라고 한다. 법화 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손꼽기도 한다. 삶은 고통의 바다, 고해라고도 한다. 백제의 바다에서도 까치놀과 해적을 이기면서 방편(方便)이 아닌 정도(正道)로 배를 앞으로 이끌어가던 도사공이 있었을 터이다.

 

최범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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