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죽자

사람의 연령(年齡)에는 자연(自然)연령, 건강(健康)연령,정신(精神)연령, 영적(靈的)연령등이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成長)하면서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을 승화(昇化)시키며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자연연령과 건강연령을 채워 보낸다고 하였다.

 


성장하면서 보내든 늙어가면서 보내든, 인생길은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돌아보면 허망(虛妄)하다. 어느 시인(詩人)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번의 인생의 길'이라고 말했다.

'가고 싶은 길도 있고 가기 싫은 길도 있지만, 가서는 안 되는 길도 있다. 내 뜻대로 안되는게 인생의 길인 것을 이 만큼 와서야 뼈저리게 느낀다.'고  한탄(恨歎)하기도 했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죽는 것이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도 아주 멋지게 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잘 준비(準備)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最善)을 다하여 열정(熱情)을 쏟아 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어떻게 늙고 죽어야 할까?

첫째: 사람답게 늙고 = 웰에이징(Wellaging)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품격(品格)을 지녀야 한다. 노년의 품격은 풍부(豊富)한 경륜(經綸)을 바탕으로 노숙(老熟)함과 노련(老鍊)함을 갖추는 일이다.

 


노년의 삶을 불안(不安)해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存在感)을 잃어가기 때문이지만, 오히려 노년은 지성(智性)과 영혼(靈魂)이 최절정(最絶頂)의 경지(境地)에 이르는 황금기(黃金期)임을 인식(認識)해야 한다.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武將)하여  노익장(老益壯)을 과시(誇示)하라! 산행(山行)과 명상(瞑想), 클래식 음악(音樂)과 독서(讀書)와 같은 영성(靈性: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 생활(生活)의 여유(餘裕)를 온 몸으로 즐겨라.

 


최고(最高)의 노후(老後)는  우리가 무엇을 꿈꾸느냐에 달려 있다. 노년은 24시간 자유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나만의 자발적(自發的) 시간이다.

 


여유작작(餘裕綽綽:빠듯하지 않고 넉넉함)하고 여유만만(餘裕滿滿) 한 여생의 시작을 위해 팡파르를 울려야 할 때다.

웰에이징(Wellaging)을 위해 노년 특유(特有)의 열정(熱情)을 가져야 한다. 노년의 열정은 경륜과 품격이 따른다.  노련함과 달관(達觀)이 살아 숨쉬는  풍요한 열정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러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흔히 노년사고(老年 四苦)라는 말이있다.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 (無爲苦), 병고(病苦)가 그것이다.

 


가난과 외로움과 할 일 없음의 괴로움은 노년에 가장 큰 골칫거리 이며, 이와 함께 노후의 병고만큼 힘든 일은 없다. 그래서 노년은 점점 의욕(意欲)과 열정을 잃어가는 시기라고 속단(速斷)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노년사고(老年 四苦)는 열정을  상실(喪失)한 대가(代價)임을 알아야 한다. 열정을 잃지않고 사는 노년 노후는  빈고, 고독고, 무위고, 병고가 감히 끼어들 틈조차 없다.

 


노년기에 열정을 가지면 오히려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을 남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世界) 역사상 (歷史上)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成就)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것은 80세 때였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完成)한 것은 80이 넘어서였다.

‘다니엘 드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을 발표(發表)하였으며,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大成殿)의 돔을 70세에 완성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 등도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어 불후(不朽)의 명곡(名曲)을 작곡(作曲)하였다.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또한  인간관계(人間關係)가 매우 중요(重要)하다

. 나이가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對人關係)를 잘 하여야 한다. 즉 인간관계를 ‘나’ 중심(中心)이아니라 타인(他人)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

 


미국(美國) ‘카네기멜론 대학(大學)’에서 인생에 실패(失敗)한 이유에 대하여 조사(調査)를 했는데, 전문적(專門的)인 기술(技術)이나 지식(智識)이 부족(不足)했다는 이유는 15%에 불과(不過)하였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에 있다는 결과(結果)가 나왔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部分)을 차지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들면서 사람은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성향(性向)이 강(强)해진다. 노욕(老慾)이 생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폭군(暴君)노릇을 하고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몰입(沒入)하는 나르시즘(narcissism:자기도취증)에 빠질 수 있다.

 


또는 염세적(厭世的)이고 운명론적(運命論的)인 생각이 지배(支配)하는 페이탈리즘(fatalism:운명론)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의 대인관계는 결국 초라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관계는 중심축(中心軸)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물질(物質)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초라해 지고, 일 중심이나 ‘나’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도 역시 외로움에 휘말리게된다.

 


그러나 타인(他人)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따르는 사람도 많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타인 중심의 인간 관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사람답게 살고 = 웰빙(wellbeing).

 

사랑과 은혜(恩惠)로 충만(充滿)한 노년을 우리는 웰빙(well-being)이라고 한다. 웰빙은 육체(肉體)뿐 아니라 정신(精神)과 인품(人品)이 건강(健康)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웰빙은 육체적인 강건(强健)함 보다 정신적인 풍요와 여유에 더 중점(重點)을 두어야한다. 인자(仁慈)함과 포근함이 묻어나는 한, 그리하여 사랑과 용서(容恕)의 미덕(美德)으로 넘쳐나는 한, 노년 노후는 일빙(ill-being:심신을 혹사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웰빙(well-being)의 시기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만으로는 웰빙이 될 수 없다.

정신과 인품이 무르익어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봉(最高峰)이자 웰빙의 최적기(最適期)다. 노년의 녹색지수(綠色指數)는 무한대(無限大)다.

 


노년의 삶은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며, 생각은 달관하듯 관대(寬大)하다. 소탈(疏脫)한 식사(食事)가 천하(天下)의 맛이며, 세상을 온몸으로 감싼다. 노년의 삶은 자연과 하나다.

 

그래서 노년은 청춘(靑春)보다 꽃보다 푸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은 삭막(索寞)하고 고독(孤獨)한 시기로 생각한다. 절망과 슬픔을 떠올린다. 사실 젊음을 구가(謳歌)하던 때와 비교 (比較)하면 노년의 외모(外貌)는 형편없다.

- 삼단복부, 이중턱, 구부정해지는 허리 등.

 


그리고 흰머리, 빛나는 대머리, 또 거칠고 늘어진 피부, 자꾸 자꾸 처지는 눈꺼풀 등..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말년을 앞에 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香氣)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풍요와 경륜으로 쌓아올린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노년의 주름살속에 아름답게 풍겨나는 인자스러움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쌓이며 승화(昇化)되는  화석(火石)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온 노인은 이렇듯 향기(香氣) 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덕(德)이 있는 사람, 지혜(智惠)가 풍부하고

마음이 인자(仁慈)하고 욕심(慾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사(世上事)애꿎어 실생활(實生活)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대부분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고집(固執)이 세고  인색(吝嗇)하고 마음이 좁은 노인들을 더 자주 만난다.

 

왜 그런가? 노년의 그런 추함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과 용서(容恕)의 삶에 인색했거나 은혜의 삶을 잠시 망각(忘却)했기 때문이다

노년은 용서하는 시기이다. 용서의 근간(根幹)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인간을 구제(驅除)하는 희망(希望)이다.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노년을 보내는 사람,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웰빙(wellbeing)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웰빙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인품이 건강해야 함도 잊지 말자!

 

셋째: 사람답게 죽자 = 웰다이잉(welldying).

노년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당장 지금 죽어도 여한 (餘恨)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경박(輕薄)한 듯한 태도(態度)는 더욱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소노 아야꼬’는 ‘죽음이 오늘이라도 찾아오면 힘을 다해 열심히 죽을 것’이라고했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경건(敬虔)하게 생각한 것이다.

“병에 걸리면 도를 닦듯 열심히 투병(鬪病)을 할 것. 투병과 동시에 죽을 준비도 다해 놓고 언제고 부름을 받으면 “네”하고 떠날 준비를 할 것“

 


죽되 추(醜)하게 죽지 않도록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 ‘완전(完全)한 죽음’을 강조(强調)하고 있다.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는 죽음을 관조(觀照)하면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 한 밤을 채찍 맞으며, 감방(監房)으로 끌려가는 채석장(採石場)의 노예(奴隸)처럼 가지 말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떳떳하게 위로(慰勞) 받고 무덤 향해 가거라.

 


침상(寢牀)에 담요들어 몸에 감으며 달콤한 꿈나라 로 가려고 눕는 그런 사람처럼…”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고차원(高次元)의  인생관(人生觀)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이 인생관의 존재 여부가 삶의 질을 확연(確然)하게 바꾸어 놓는다.

이제까지는 세상이 정(定)해 놓은 길, 주변(周邊)에서 원(願)하는 길을 따라 걸어왔다면, 이제부터 남은 삶은 어떤 길을 택(擇)하고 어떻게 걸어갈지 오로지 내가 선택(選擇)하고 책임(責任)지며 살아야 한다.

이런 의미(意味)에서 노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어야한다.

성실(誠實)하게 살면 이해(理解)도,지식(智識)도, 사리 분별력(事理 分別力)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인다. 그런 것 들이 쌓여 후덕(厚德)한 인품이 완성(完成)된다.

 


노년이란 신(神)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思考)가 급속이 자리 잡게되고 그에 대한 심오(深奧)한 깨달음을 얻기위해 부단(不斷)히 노력(努力)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젊은날의 만용(蠻勇)조차 둥글 둥글해지고 인간을 보는 눈은 따스해진다. 이러한 덕목(德目)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게 엄격(嚴格)해야 한다. 자신에게 견고(堅固)한 자갈을 물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시간은 인간에게 성실할 것을 요구(要求)한다.  잉여시간(剩餘時間)은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 없이는 시간을 차지할 수 없다.

그래서 노년에게 시간은 두렵고 잔혹(殘酷)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을 비워야 한다. 미완성(未完成)에 감사(感謝)해야 한다. 사람답게 죽기(welldying)위해 '진격(進擊)'보다는'철수(撤收)'를 준비(準備)해야 한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念頭)에 두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자리와 삶에 대한 두터운 욕심에 연연(戀戀)해서는 안된다. 집착(執着)이란 보이지 않는 일종(一種)의 병(病)이다.

그래서 자신(自身)과 관계(關係)있는 조직(組織)에, 일에 너무 애착(愛着)을 갖지 말라고 충고(忠告)한다.  애착은 곧 권력(權力)과 재화(財貨)의 유혹(誘惑)에 빠지게 하고 그 힘을 주위(周圍)에 과시(誇示)하려 하게 되며  마침내 추(醜)한 완고(完固)함의 덫에 걸려들게 만든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

 


따라서 비움’과 ‘내려놓기’를 준비하라. 그것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수(純粹)하게 잃어버림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주변의 사람도, 재물(財物)도, 그리고 의욕(意欲)도, 어느 틈엔가 자신도 모른 사이에 떠나간다. 이것이 노년의 숙명(宿命)이다.

인간은 조금씩 비우다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세상을 뜨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들수록 인간을 의지(依持)하기 보다는 신(神)에 의지해야 한다.  신과 가까이 하면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은 더욱 신선(神仙)해진다.

 


이것이 웰다잉(welldying)의 깊은 뜻이다. 후반전(後半戰)의 인생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후반생(後半生)이다. 인생의 주기(週期)로보면 내리막길 같지만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향해 새 인생이 시작되는 때다.

 

행복(幸福)한 노년(老年)은 무엇인가?

사람답게 늙고(wellbeing) 인생이 결국(結局) 사람답게 살다 (wellaging)가 사람답게 죽는 것(welldying)으로 마치는 삶이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