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소재한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龍尾里磨崖二佛立像)은 거대한 천연 바위벽을 이용하여 몸체를 새기고 그 위에 목머리갓을 따로 얹어놓은 2구의 토속적인 느낌의 불상(佛像)이다.

 

석불 입상은 장지산(長芝山) 자락의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므로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바위의 제약으로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면도 있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상(圓苙佛像)은 남상(男像)으로 사각형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어 안동 마애석불과 비슷하다고 하며, 두 손으로 연꽃 가지 같은 것을 잡고 원형의 갓을 쓰고 있다.

 

원립불(圓苙佛)은 당당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지만 바위의 제약으로 목과 가슴이 혼연일체 되지 못하고 있으며, 몸체는 법의로 감싸고 있으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은 세로선 길이로 무늬를 나타내었다.






오른쪽 사각형의 갓을 쓴 방립불상(方笠佛像)은 합장한 손 모양만 다를 뿐 신체 다른 부위의 조각수법은 왼쪽 불상과 비슷하며, 구전에 의하면 왼쪽의 원립불은 남상(男像)이고 방립불은 여상(女像)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의 세속적인 특색이 잘 나타난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추정된다고 하나, 불상 옆쪽 벽면의 200여 자의 희미한 명문(銘文)에는 1465(세조 11)에 세조와 정희왕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하였다는 설도 있다.

 

마애이불입상의 높이는17.4m이며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불상으로 평가된다고 하며 보물 제93호이다.







전설에 의하면,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고려시대 선종(宣宗)의 원신궁주(元信宮主)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장지산(長芝山)의 두 도승이 나타나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 하여 이를 이상히 여긴 왕이 장지산에 사람을 보내니 그 곳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즉시 이 바위에 승려를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더니 그해 한산후(漢山侯)가 탄생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이곳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