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에 다녀오는 길에 희방사와 희방폭포에 들렀다.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맥의 최고 봉우리인 비로봉(1,439m)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데, 높이 28m로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다. 우거지 수목과 시원한 폭포가 어우러진 희방폭포는 1등 피서지가 되고 있으며, 폭포를 위로 하고 한구비 오르면 고요한
정적 속에 희방사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주변에 부석사, 소수서원 등이 있어 소백산 등산길엔 꼭 거쳐 가볼만한다. 희방사는 희방역에서 동북쪽으로 4km나 되는 소백산 중턱 해발 850m 높이에 있으며,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두운대사가 세웠다. 법당과 훈민정음의 원판과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으나 6.25전란으로 소실되었다. 

그 후 1953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은은한 종소리로 유명한 희방사 동종(도 유형문화재 제226호)이 보관되어 있다. 절 입구는 자연림이 우거져 햇빛을 가리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다. 643년(선덕여왕12)에 두운(杜雲)이 창건하였으며, 호랑이에 얽힌 창건설화가 전하고 있다두운은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던 중,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였다.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었으므로 뽑아주었다.

그 뒤의 어느 날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鷄林)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 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호장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 도를 닦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江月)이 중창하였으나 6·25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되어오던 『월인석보』권1과 권2의 판본(版本)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러나 주존불(主尊佛)만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3년에 주지 안대근(安大根)이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인 동종(銅鍾)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높이 1.5m와 1.3m의 부도 2기가 있다. 동종은 1742년(영조 18)에 제작되었는데, 특히 은은한 종소리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