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는 삶이 전해주는 풍경,

거제 공곶이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긴 동백의 터널이 있는 곳,

지금쯤이면 봄꽃,

수선화가 활짝 피었을 것입니다.

지난 2월말에 다녀오고,

지금쯤이면 더욱 좋겠다.‘ 싶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거제도의 어느 한구석, 한 자락에서 전해주는 삶의 또 다른 법,

푸른 바다에 옹기종기 모인 펜션과 민박집들을 뒤로 하고 고개 하나를 넘습니다. 꼴깍 숨이 멎을까 무서워 침 한번 삼키고 나니 어느덧 야트막한 공동묘지의 언덕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묘지들 사이에는 끝도 없는 동백의 터널이 아래로, 아래로 길게 이어집니다.

동백의 숲은 어둡고 가파르고 깁니다. 그늘지어진 어두운 터널은 아무렇게나 생긴 돌들로 만들어 진 계단입니다.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공간, 여행자의 걸음은 그만큼 느리게 옮겨집니다. 한편으로는 여길 다시 올라와야겠지?’ 라는 생각이 여행자를 옭아맵니다. 그러니 걸음은 생각과 달리 다시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여태, 바쁘게만 살아왔던 지난날입니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조차 그 바쁨은 흔적을 쫓는 그림자처럼 여전하게 여행자를 따라 다닙니다. 투덜대는 그림자를 붙잡는 것은 이 동백터널의 끝에서 살아가고 있을 어르신이 만들어 놓으신 풍경의 그리움입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풍경이면서도 언젠가 한번은 보았을 듯한 풍경 일 것이라는 막연한 그리움, 뭐 그러한 허망한 작은 소원입니다.

 

전쟁과도 같은 일상,

빠름의 속도전에 익숙한 여행자의 생활은 늘 상 여행하는 그 곳에서 늘어지곤 합니다. 콘크리트의 회색빛을 대신하여 바다의 푸르름이 있습니다. 고개 들어 본 적 없던 그 곳과 달리 여행지에서는 수시로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행자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훌훌 털어 꽉 들어찬 욕심들 조금은 비워내고 싶은 또 다른 욕심입니다.

설령,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이유라 할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다른 풍경에, 다른 사람의 삶에 녹아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고 나면 어느새 꽉 찬 여행자의 마음은 어느새 조금은 비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욕심의 소음 속에 머물다 불안한 흔들림 안고 떠나는 여행,

그러나 여행지는 늘 이러한 낮선 여행자를 반겨 줍니다. 맑은 하늘, 때로는 시원스런 빗줄기, 마음 알겠다는 회색 먹구름이 반깁니다. 마음속 빈자리로 한 걸음 옮기고 나면, 자연은 벌써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제도 남녘의 작은 마을 와현리,

일운면사무소를 지나 14번 지방도로를 따라 갑니다. 와현 해변을 향해 핸들을 돌리고 그 마을에서도 다시 해안가를 따르다가 더 이상 길 없을 것만 같은 끄트머리를 향해 구불구불 길을 재촉합니다. 망산(300m)이 서쪽으로 능선을 늘어트리며 바다에 코를 박은 그 지점, 마침내 길이 끓어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끄트머리에서 근처 아무 곳에나 차를 두고 작은 언덕을 향해 걷습니다. 풍경 좋은 터에 지어진 잘 생긴 펜션을 지나고 다시 언덕을 향합니다.

정상이라고 생각 한 그 자리에 공곶이라는 표시판이 여행자를 반깁니다.

 

공동묘지의 둔턱 사이로 공곶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른바 '동백터널', 1km에 이르는 돌계단 길이 길게 이어진 동백숲 입니다.

 

진주 문산이 고향이신 공곶이 주인장 강명식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맞선 한 달 만에 결혼을 올립니다.

그리고 아침에 예식을 마치고 오후에 신혼부부가 향한 곳이 지금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흐르고 할아버지는 다시 공곶이를 찾았습니다. 19694, 결혼이후 모은 돈으로 전답 2천여 평과 임야 9천여 평을 사들이고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농장을 생각하였던 할아버지는 종려나무와 수선화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으며, 해마다 일운면에 수선화를 기증해 오고 있기도 하십니다.

지금도 농사를 짓는 땅을 제외하면 천여 평이 빈 공간으로 남습니다.

여전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공간에 아름다움을 다듬고 계신 것이지요.

 

 

 

 

 

 

이게 요 앞에서 걷은 거예요.”

하시며 할머니는 김발을 말리고 계십니다. 할아버지는 오시자마자 다시 또 갯바위로 나가십니다.

“(바다에서) 밀려온 미역 줄거리 걷어야지.”

화려한 동백 숲을 지나 왔던 풍경과는 다른 소박한 삶의 풍경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 어디 있겠으나, 바다를 마주한 땅 끝에 자리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은 그렇게도 소박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욕심을 부릴만한 풍경이 주위에 없습니다.

오는 길이 많이 험하네요.”

그러게..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있다가 올낀데, 그 냥반들 고생시러워서 워쩌나 싶어요.”

아마도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새 냉장고를 구입하신 모양입니다. 어쩔까? 싶은데 모노레일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닌데,

조 앞서부터 얘까진 또 어쩐대..작년까지는 앞에 배를 댈 수 있었는데, 저번 바람에 다 날라가 버렸어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십니다.

여긴 눈도 안 내리는 곳인데 웬 바람이 그리 세게 부는지 원...”

 

아직은 이른 아침, 조반 드시기도 전이었던 시간입니다.

잠깐동안의 인사를 여쭙고 공곶이 바다로 나가 봅니다. 바다는 평화롭습니다. 바로 앞에는 내도가 이웃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섬이라기보다는 마치 UFO가 바다에 반 쯤 잠긴 모습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 하고 날아갈 것만 같더군요.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시간도 자연의 이치고, 해 올라 맑게 빛나는 시간도 자연의 섭리입니다.

아직은 바람이 찬 늦은 2월의 끝자락, 수선화는 푸르른 새싹의 모습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공곶이는 수선화 활짝 핀 봄일 것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봄을 즐길 것 이구요.

    

 

 

 

 

 

불편함이 삶의 활력이 되는 공간,

과연 여행자라면? 어르신의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두 어르신의 살아가는 모습은 더욱 마음 깊이 다가 옵니다. 문명의 이기보다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낮선 여행자이만 스스럼없이 대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늘 상 있어 왔던 생활의 일부분인 것처럼 여행자를 편히 대하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러합니다.

 

들어설 때 보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빈틈없는 도시 속에 살아왔던 시간에서는 좀체 느낄 수 없는 허무를 공부합니다. 여행자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는 두 어르신께 건강의 인사를 올립니다.

    

 

 

 

 

 

 

 

 

 

 

 

 

 

 

 

 

 

 

 

 

글,사진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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