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한 지실마을의 넉넉함을 품은 매화,

지실 와룡매(芝室 臥龍梅)’

 


지곡리 지실마을

계당매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 지실의 마을길을 걸어본다.

한적한 마을의 길은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낮은 돌담이 연이어져있다. 대문도 없는 집근처에 이르자 매향이 코끝을 어지럽힌다.

마당 안 와룡매의 주위로는 사진작가들이 진을 쳤다. 과거 한국가사문학관 관장을 지낸 정태수 선생의 마당에 멋을 한껏 앞세운 와룡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틈바구니에 조심스럽게 섞여본다.

 




지실 와룡매(芝室 臥龍梅)’

수령 120, 수고 4.5m, 수폭 9m에 이르는 와룡매다.

제 마음껏 자라고 제 마음껏 휘어졌다. 굴곡 없는 세상사 없다는 듯이 오르내리고 갈팡질팡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며 휘어졌다. 아래둥지에서부터 네 가지로 갈라져 무릎 높이에서 땅바닥 가까이 퍼져 나갔고, 머리 꼭대기에서는 양옆으로 늘씬하게 퍼졌다. 기괴함이 상당할수록 매화나무의 수형은 아름답다고 했다. 꼭 정해진 틀이 아니더라도, 지실마을의 와룡매는 확실히 아름답게 보인다. 미천한 자의 썩은 눈에도 그리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마치 일부러 그려 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운 수형을 갖췄다. 죄 지은 놈은 절대 오밤중에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의 당당함이 깃들었다. 너른 마음으로 그 어느 불편함도 포용해줄 것만 같다.

 


나는 탐매를 떠나는 이유가 있다.

아름다움의 향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고매의 품격을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 과거 선비들이 풍류를 따라서 즐기고자 매화를 찾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들의 사상이나 기질을 따라가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머릿속의 양반 내지 선비란 게으르면서 입이 바르고, 몸이 약하면서 호통만 강한 사람들일뿐이다. 다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공경하고 귀감을 삼는다. 훗날 자신들의 유유자적함을 자랑질 하는 정자 하나 짓는 것도 자신들의 손은 도우지 않았다. 오로지 민초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질책하고 추궁했으리라, 그러나 그 자리에 그 모양으로 정자를 생각했던 그 아이디어만큼은 존경스럽다.

그러니 입방정 떨어 선비를 깎아 내리고 싶지도 않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이들과 말싸움 붙기도 싫다. 보이는 그대로가 좋다면 그만이다. 사군자의 정신에 빗댄 선비정신을 조롱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신이 우리를 만들어 왔고, 이끌어 갈 것이다. 다만, 글 읽고 자신의 마음에만 풍족함을 담고 스스로만 위안을 삼는다는 것은 배움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를 든 무리들이여!

아름다움을 알고 있으면서 감추는 것도 결례이며, 아름다움을 느꼈음에도 자신만의 것으로 착각하여 훼손하는 것도 이기적인 추태다. 동호회로 몰려다니면서 DSL카메라에 덩치 큰 렌즈를 조합했다 해서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겉멋에 빠진 착각이다. 그 착각은 오만함이며, 큰 실례이며, 증명된 어리석음이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든 자들의 추태를 보았다. 나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의 무지, 생각없음은 자랑이 아니다.

배려를 권리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름다운 와룡매를 만났건만, 무리와 섞여 똥이 되어버렸다.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 삭히고 돌아섰으니 나도 무리들과 다를 바 없다. 대문 없이 누구나의 방문을 환영해준 주인장께 미안한 마음뿐이다. 결국 당일의 탐매는 지실마을의 와룡매로 마무리를 했다.

 

,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www.한국기행.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