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충
열은 어려서부터 매일처럼 배가 아팠다.
열이 할머니는 불교와 토속신을 함께 믿었다.
열은 배가 아플때마다 엄살이 심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나 죽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엄살을 부렸다.
꼭 엄살만은 아니였다.
회충배는 마치 꾀병처럼 갑자기 아파오는것이였다.
배안에서 송곳으로 콕콕 찔러대듯이 아팠다.
열이 할머니는 열이 작은집 작은 할머니를 급히 불러왔다.
어이 동생 자네가 삼일면 자라터끼지 다녀와야 하겟네
쌀을 한말 싸주면서 부탁하였다.
열이 작은 할머니도 열이보다 한달
늦게 태어난 아들이 있지만
그 아들을 형들에게 보라고 하고는
두말없이 성님의 말에 복종하였다.
남편들끼리 친형제일뿐만 아니라 양식이
귀한때에 성님집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할때가 많았다.
열이 작은 할머니의 남편 즉 열이 작은 할아버지는
머슴살이를 갔기 때문이다.
공자의 후손으로서 양반이지만 장래를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만 하였다.
열이 친할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돈벌러 가셔서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보상금으로 밭 10마지기를 사서
자가농으로서 괜찮게 사는 형편이였다.
아직 식구가 많치 않아서 양식이 남아돌았다.
그러나 열이 작은 할아버지네는 그렇지 못하였다.
하지만 머슴살이를 해서 번 돈으로 농토를
계속 사모으는 중이였다.
열이 작은 할머니가 30리 길 왕복 60리길을
걸어서 점장이에게 점을 쳐보니
귀신이 들었다고 해서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였다.
회충배는 꾀병처럼 아프다가 안아프다가 해서
푸닥거리를 하면 안아프다고
하는것 같아서 효과를 본것이라고 믿었다.
열이 배속에는 회충이 가득하였다.
아이 손가락만한 두깨와 20-30cm의 길이
회충이 아이의 창자속에서 영양분을
다 빨아먹고 찔러내니 안아플수가 있을것인가?
산토닌 과자가 나오기 전이였다.
고롱골 나무 뿌리를 캐서 돌로 빻아서 그 하얀 뜨물같은것을
바가치로 마시게 하였다.
엄청 썼다.
독하게해서 회충을 죽이려는것이다.
열이 할머니가 믿고 있는 귀신은 바로 회충귀신이였다.
이 사실을 알아낸것은 열이 아버지가 군대에서 돌아오면서
그 사실을 알아왔던것이다.
회충배가 아프면 어김없이
열이 아버지지는 열이 엄마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네년이 먹을것을 많이 주어서 그런다.
이 미련한년아 또 자식을 죽일라고 그러냐? 엉
당시는 콩 조각도 열이서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시절이였다.
비록 배고픈 시절이고
양식이 귀한 시절이였지만 제사를 지내면 제사상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나누어서 이웃집과 일가집에는 자정 지나가
새벽 3시쯤 제사 음식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어른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 얻어먹는다는 말이 생겨났다.
제사 음식이 오면 제일 먼저 열이에게 주었다.
열이는 욕심이 많았다.
배부르게 먹고나서 배가 아프다고 울며불며 야단이다.
음식이 들어가니까 회충들도
밥을 먹느라고 활동하면서 창자를
찔러내었기 때문이였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열이 작은집에
고모가 시집가는 날이였다.
친척집에서 장가가고 시집가면 온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다.
전도 부치고 떡방아도 찧고 돼지도 잡고 부자집에는 소도 잡았다.
이 날도 열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이 날에는 회충약을 먹었다.
열이 아버지가 어디서 구해왔던것이다.
열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6살때였다.
열이 작은 집 변소(화장실)은 말 그대로 재래식이였다.
커다란 독 넓이 가로 세로 2미터는 되었다.
그 큰 독위로 소나무 널판지 두개만을 길다랗게 늘어놓고 그 위에서
두 다리를 밟고 바지를 내리고 쪼그리고 않아서 큰일을 보았다.
그런데 열은 그 일을 보다가 그만 변소에서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 엄마 아이구 엄마 -
아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서 열이 엄마가 음식을 장만하다가
변소(화장실)로 뛰어왔다.
열이 할머니도 뛰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뛰어왔다.
열이가 비명을 질러댄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커다란 회충덩어리가
어른 손목만큼 대변과? 함께 90프로 이상이 회충이였다.
그 회충이 산토닌 과자를 먹고서 빠져나오는 중이였다.
산토닌 과자를 발견해 낸 사람은
에디슨만큼이나 열에게 고마운 사람이였다.
산토닌 과자란 구충제를 달콤하게 과자처럼 만든것이다.
쓰지않기에 아이들도 잘 먹고 회충도 잘 먹었던것이다.
♥활동 사진
활동사진
1960년도 초봄이였다.
열이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였다.
보리마당에서 선교사들이 활동 사진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보리마당은 보리타작할때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은 운당장 같은 땅이다.
보리마당에서는 죽림 저수지가 호수처럼 아름다웁게 보였다.
죽림 저수지 위에는 하금 마을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 뒤로 하욱산이 하품을 하면서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마을 사람들은 부지런하지를 않다.
마을앞 마을 죽림 사거리 주막으로 와서 술을 먹고
농사하는 일에 등한시하는것이
마을 이름과 마을 뒷산의 이름에서 영향을 받은것이라고
풍수지리를 좀 아는 사람이 말하였다.
풍수 지리도 무시못한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것이다.
하금에서 바라보는 죽림 저수지는 그렇게 아름다웁지를 못하지만
죽림 보리마당에서 바라보는 죽림 저수지는 호수이다.
은빛날개를 퍼덕이면서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학처럼 보인다.
저녁 노을이 질때면 하늘의 태양이라도 죽림 호수에 빠진듯이 보인다.
보리마당 바로 앞에 죽림 예배당을 지었다.
18평짜리 흙별돌로 마을 청년들이 찍어서
방한칸 부억 한칸으로 만들고 예배실로 나누었다.
지붕은 양철로 덮었다.
예배당안에는 마루를 깔았다.
아주 훌륭한 예배당이였다.
이 예배당은 은주 사촌 오빠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미국 선교사들의 지원을 받아서 자신의 마을에 지은것이다.
이젠 4키로나 걸어가야하는 관기교회까지 안가도 되었다.
가까운 보릿마당 죽림교회로 가면 되는것이였다.
흙별돌 교회를 지을동안에는 군대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는데
열이도 은주도 그 예배당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나 열이와 은주는 서로를 남 보는데서는 아는체를 못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보리마당에서 활동사진을 보여주는 날 밤에 아무도
몰래 두 어린이가 일생에 잊지못할 추억의 테이트를 가지게 되었다.
전기불이 발전기를 통하여 환하게 보리마당을 밝혀주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고서 호롱불을 켜들고서
사방 마을에서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발전기 소리가 시끄러웁게 통통거리는
횟수만큼 전기불의 밝기도 비레하였다.
아이들도 엄청 몰려왔었다.
활동사진은 예수님의 수난당하시는 내용이였다.
예수님을 로마병사들이 째찍으로 무지막지하게 때린후에
빌라도 총독앞으로 끌고가서 심문하고 죌르 발견치못한
빌라도가 죄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치는 유대인들의 집단 강요를 피하려는 의미로 세숫대야에 물을 채워
가져오게하여 손을 씼는 장면에서 열은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으러 못자리처럼
빽빽한 군중들 틈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화장실은
커다란 세면트 탕크에
나무를 길다락게 가로질로 놓고 그 아래는 물을
채워두어서 어린 열이로서는
그곳에서 볼일 보려다가는 열이 친구 똥개처럼
똥통에 빠져죽을것만
같아서 볼일 을 보지못하고 아픈 배를
부등켜안고서 보리마당 한쪽에
외로히 서있는 사작나무에 기대어서 서있을때였다.
열이의 눈에 하얀 드래스를 입은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천사같은 소녀가
나비처럼 나폴나폴 날아오며 하얀 치아를 보여주면서
기쁨에 넘치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은채로 달려왔다.
은주였다.
초등학교 입학식후 줄넘기하며
아랫종아리를 보여주던 그 은주였다.
순이는 군중들 틈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채로 밖에서 서성거리던중
자신도 그리워하던 열이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토끼처럼
열이에게로 자신도 모르게 뛰어간것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활동사진에 취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3미터 간격을 두고 뛰어오던 발검을을 멈추고 말을 걸었다.
"너도 활동사진 보러왔니?"
열은 야무지게 은주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였다.
"응"
은주는 즐거움에 취하여서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물었다.
"너는 어느 마을에 사니?"
열은 "차동에 산다."
은주는 이어서 열이를 귀여운듯이 기쁨에 넘쳐서 물었다.
"너도 이제부터 교회에 잘 나오너라 "
열은 똑똑한 음성으로
"알았다. 너도 잘 나오너라"
이때였다.
활동사진이 끝나고 사람들이 부채살처럼
흩어져 나오며 웅성거렸다.
이때에 은주는 활들짝 놀래는 얼굴을 하더니 급히 말하였다.
"열아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순식간에 군중들 속으로
사라지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다.
열은 아픈배를 그제서야 다시 만지면서 한참동안 사작나무
기둥에 기대어 있었는데 입속으로 커다란 회충이 기어나왔다.
열은 그 회충을 손으로 뽑아내었다.
이 회충은 산토닌 과자 즉 회충약이 나오기전까지 열이를
괴롭히고 수많은 열이 선배님들을 괴롭히던 악한이였다.
회충을 손으로 뽑아내어서 패대기를 치면서 열은 말하였다.
"이 더러운 회충아 내 몸에서 사라져라."
어려서부터 열은 회충배가 아팠다.
불교와 토속종교를 반반으로 믿는 열이 할머니는 열이가 배가
아프다하면 귀신이 들렸다면서 열이 작은 할머니를 시켜서 쌀을
싸들고 40리가 넘는 삼일면 자랏터에 사는
점장이에게로 물어보러 가게하였다.
또 회충배가 아픈것을 아편(마약)을 많이 먹여서
잠에서 하루종일
잠에서 깨어나지않고 그 밤 새벽까지도
깨어나지않아서 죽은줄로 알고
열이 엄마는 두다리를 뻗고 머리를 풀고
어이 어이 어이 하며 울었다.
열이 형은 머리부스름에 열이 할머니가
아편을 많이 먹여서 잠이 들어서
영원히 깨어나지않고 가버렸다.
열이 형은 삼일이 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않다가
죽은것을 확인하고
진달래 피던 봄에 피눈물속에서 뒷산에 묻어주었다.
다행스럽게 열이가 형이 죽은지
꼭 일년만에 도로 태어났다.
도로 태어났다면서 도자를 쓰고 사실은 길도자인데 할머니는
언문식으로 도로 도자로 해석하였다.
열자는 맵고 짜게 죽지말고 크라면서
매울열자를 써서 도열이라고
이름 지어서 호적에 올렸다.
열이 형은 꼭 일년을 세상에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열이 형은 열이보다도 훨씬 잘생겻다고
열이 누나는 늘 말해주었다.
이러한 비극은 열이 할머니만이 아니라 집집마다
비일비재한 시대였던것이다.
열은 그 밤에 혼자서 조금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1킬로쯤 되는
자신의 마을인 차동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