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

해가 뜬다!




 언니들이 일어나 서두르니 씻을 순서를 기다리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데...

하늘에 노란빛이 빼꼼 내미는 듯하더니 갑자기 붉은빛으로 휩싸여 베란다로 나가 구경하였다.

바다까지는 걸어 15분이라 일출을 보고 싶었으나 엄두를 못 냈다.

이때가 아침 6시 16분 52초!




 강릉에 왔다고 초당순두부로 아침(6시 55분)을 먹고...

물과 에너지바 두 개씩 가방에 챙겼다.




 갑자기 근육을 늘리는 것도 좋지 않다며 발가락과 허리를 가볍게 돌리고 9시에 걷기 시작했다.

속으로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근육이 놀래서 아플 때가 있으니 말이다.

버스가 시작 지점까지 데려다주고 필요한 물건만 넣어서 다니니 호강이었다.




 강원도는 앞산이라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보현산 보현사 앞이었는데 올라가며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답게 소나무가 멋스러웠다.

한동안 계속 올라갔는데 내리막길보다야 자신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




 넓은 임도가 나타나 한차례 쉬었고...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니 고향 사람을 만났다며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네 자매, 3대가 오신 분, 세 자매, 퇴직 부부 여러 쌍, 직장인들, 엄마와 아들, 혼자서 온 사람 등등...




 걸은지 한 시간 만에 '어명정'에 도착하였다.

광화문 복원에 사용된 금강소나무를 벌채(2007년 11월 29일) 하기에 앞서 처음으로 교지를 받은 후,

도끼질하기 전에 山神과 소나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어명을 받으라!' 소리치고 베었다 한다.





 정자 바닥에 당시 베었던 (크기 90cm) 그루터기가 남아있었다.




 교지를 받은 나무는 떨리면서도 커다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 금강 소나무가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멋스러운 소나무가 가도 가도 나타났다.




 소나무 두 그루가 밑동은 멀리 있었으나 위에서는 꽉 껴안은 연리지도 보였다.

길에서 키가 큰 연인들을 보면 예쁘기보다 멋있던데... ^^

깊은 산중에서 외로웠을까 그 심정 이해가 가며 청춘을 불태우는 듯 아름다웠다.




 지도를 참고하니 해발 약 800m로 높은 곳임에도 연못처럼 습지가 나타났다.

이곳은 일명 '멧돼지 쉼터'라 불리었으며 동물들에게 고마운 장소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란 소나무일까, 누가 심었던 것일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일제강점기에 송진 채취와 소나무를 베어 가고 어린 나무를 심어 1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란다.

소나무 줄기가 이렇게 붉은빛을 띠면 육송(陸松)이며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 발달하여...

눈의 압력으로 인한 오랜 세월의 도태로 줄기가 곧게 되고 가지는 가늘고 짧게 자란다나?




 오전 12.5km의 걷기가 끝날 무렵으로 태풍의 영향으로 길이 많이 파였었다.

배는 고프진 않았지만 지루함이 느껴지고 스틱 안 챙겨온 것을 후회한 곳이다.

왼쪽 모퉁이로 돌자니...


 


 명주군 왕릉이 나타나며 점심시간이었다.

신발을 벗고 다리를 움직여보며 명동에서 같이 버스를 탔던 그녀를 기다렸다.

다리가 차르르 떨리기도 하고 발가락이 힘들다고 맥박이 벌떡벌떡 뛰었다. 


 


 명주군 왕릉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6세손이며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였다.

신라 선덕왕 64년에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김주원을 추대하였으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넘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그 사이 상대등 김경신이 왕궁을 점거하여 왕위에 올라 원성왕이 되었다.


 비가 그친 뒤 김주원이 입궐하자 원성왕은 왕위를 내놓으려 했으나 '나의 입궐은 선왕의 돌아가심에

조의를 표하기 위함이요, 왕위 다툼에 있지 않다. 이미 정해진 일에 재차 무슨 말을 하리오!'라며 극구 사양하고

국상을 마친 후 지금의 강릉인 명주로 물러가 다시는 조정에 나타나지 않았음에...

원성왕은 김주원의 덕을 기리는 뜻에서 그로부터 2년 뒤 그를 명주군왕으로 추봉하였단다.

 '그래서 명주군 왕릉이구나!'


 

 이렇듯 대관령에서 강릉 방향으로 직선으로 걷지 않는다.

산길 12.5km를 보통은 5~6시간 걸린다는데 4시간 30분 정도에 걸었으니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못 걷겠다는 사람이 몇 명 있어서 남기고 떠나야만 했다.

그 바람에 스틱을 하나 빌렸고 점심을 먹으며 좀 쉬었더니 걸을만했다.



 

 해발고도가 낮으면...




 싸리꽃이나...



 

 들국화가 있어 옆에 앉아 쉬었다.




 분홍빛 국화도 있었다...^^

꽃이 있는 곳은 마을과 가까워 콘크리트로 덮은 길이라 지루할 즈음,




 마을 뒷산으로 보이는 곳에서 밤이 떨어져 줍느라 멈칫멈칫했었다.

네 자매가 온 분들은 넷이서 모으니 한번 쪄 먹을 분량이 되어 지난밤에도 간식으로 드셨단다.

나도 생밤 하나 주워 걸어가며 맛봤다.^^




 멧돼지가 헤집어 놓은 길이 한동안 이어졌던 곳이다.

소나무가 많으니 송이버섯 채취하면 절대 안 된다고 산에 줄을 치고 당부 당부하였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줄쳐진 바로 옆이라 저쪽은 송이가 있고 이쪽은 없을까 싶어 

소나무 밑동을 유심히 보고 가다 여러 번 넘어질 뻔했다.^^



 이름 없는 산을 오르며 줄기가 회색빛이 나는 소나무를 발견했는데...

줄기가 붉은 赤松보다는 낯설고 써늘해 보여서 다른 나라에서 왔나 찾아보니 海松이란다.

점점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릉 쪽 산마루에 전망대가 있어서 잠시 쉬며 땀 닦고...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 불어오니~~~ 음악시간도 가졌는데...





 요번 걷기에서 가장 어려운 곳을 만났다.

오전에 낙오자들이 있었을 만큼 많이 걸은 여파도 있겠지만 몇 m나 되었을지(주황색 땡땡 부분) 

지도를 찾아보니 약 400m였으나 계속 내리막길에 경사가 심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을 만큼

밀려 내려갔었다. 스틱이 큰 힘을 주었고 집에 와서 이 틀이 지나니 엄지발톱이 보랏빛으로 변하던데,

아마 이곳을 걸을 때 멍이 든 것 같다. 내려가며 북한산보다도 더 어려운 곳이라 하니,

어떤 남자분이 북한산이 훨씬 쉽지요, 했다.




 휴~~~

심 스테파노마을, 山 밑자락에 발이 닿으니 평화가 찾아왔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삼 일째 숙소는 휘닉스 파크라 돌아오는 동안 버스 안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물러주며,

애썼다, 잘 견뎌주었다, 내일 하루 더 걷자며 말을 건네고 어루만져 주었다.

땀을 흠뻑 쏟아 후다닥 씻고 밥 먹으러 갔더니 반찬이 떨어져 달랑달랑 했으나

맛있게 먹고 가방 정리한 후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걸은 거리는 산길 19km 정도로 8시간 가까이 걸렸을 것이다.

힘든 구간이 있었지만 소나무를 실컷 보며 깊은 산속을 걸어본 좋은 경험이었다.

잠자리도 적응이 되어 편안해지고 있었다.






   2019년  10월  18일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