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생 영국/유럽 탈출기

April 21, 2010

 

경희대 교수인 내동생이 영국 맨체스터 근처의 리드라는곳에서 학회를 마치고 돌아오기전날

아이슬랜드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마그마가 분출되고 화산재가 온 북부와 중부 유럽을 뒤덮었다.

동생은 지속적으로 BBC방송의 업데이트를 보고, 난 미국에서 뉴스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주었다.

동생의 1차 탈출 시도는 지난 토요일 런던을 거쳐 파리, 그리고 스위스 취리히로 갈 예정을 잡았는데,

취리히 공항도 폐쇄가 되는 바람에 유로레일 티켓 예약을 취소했다.

 

동생의 2차 탈출 시도는 월요일 아침 리드에서 3시간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유로스타로 파리로 가는것이었다.

일단, 유로스타의 표를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기에 동생은 파리로 갔으나,

케임브리지로 가셨던 동생의 스승인 지교수님은 표를 확보하지 못해서 다시 런던에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파리로 가자마자 동생은 두번 갔었던 한국인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유로 버스로 달려갔는데, 가장 빠른 것이 금요일이라 포기하고,

유로레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모든 표는 매진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사이에서 줄에서 기다리면서 좌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웬 프랑스 사람과 미국인이 말하는데

무슨 deal (거래)를 하는것 같은데 마드리드를 차로 가면 몇천유로... 이런것 같아서

바로 그 거래에 끼어들어서 사람을 모아서 가자고 합의가 이뤄졌다.

그래서 거기서 네명이 만들어져서 50만원씩 내기로 하고 (그 운전사 이김에 호강: 뉴스에서 나도 봤는데, 580만원이라고 했는데 이사람은 그래도 양심적.) 200만원 내기로 했다.

그 네명은 미국인, 스페인인, 중동인, 내동생.

그래서 신나서 그 차를 타고 내동생 호텔로 가서 짐을 싣고 장장 12시간 드라이브끝에 마드리드에 도착.

 

두명은 바로 그날 비행기 타고 떠나고, 한명 스페인사람은 집으로 가고

내동생은 호텔에서 하루묵고 다음날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그리고 카사블랑카에서 하루 숙박하고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금요일에 도착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 되면, 결국 월요일 아침에 영국을 떠나 금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는것이다. 

 

다음날 마드리드에서 카사블랑카에 무사히 가는줄 알았는데,

거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마드리드의 전산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비행기 수속이 지연되기 시작했고,

이미 비행기에 탔던 사람도 다시 내려서 확인하는둥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다들 어렵게 파리등에서 이쪽으로 온 사람들이라

다들 긴장 상태에 돌입했고,

내 동생은 이젠 스페인어가 마치 한국말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환청현상까지.

그래서 몇번이나 한국인이 뒤에 있나 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니곤 했다고.

그런데 마지막에 또 한국인 목소리가 들려서 왜이리 환청이 자꾸 들리나 돌아봤는데,

진짜 뒤에 한국인 두명이 서있더라고.

한국군 간호장교 부부가 신혼여행을 왔다가 이 난리 북새통으로

그들도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4 시간 걸려서 마드리드로 도착.

셋이서 갑자기 동지애를 느끼면서 비행기에서도 셋이서 같이 앉고,

"마지막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자..."고 굳은 의지.

 

그들은 카타르를 거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카사블랑카에서 서로 안녕을 하고,

동생은 다시 하루 묵을 호텔을 찾아야했다.

인터넷에서 익힌 호텔로 택시를 타고 갔지만 혹시 방이 없으면 어쩔까 걱정했지만,

이제 이 혼란에 익숙해지면서 머리 회전이 아주 빠르게 된 동생은

담담하게 "어제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은 했는데 ..." 라고 살짝 뻥을 치면서

방이 있어야 할텐데... 했단다. 다행히 방을 지정해줘서 동생은 역시 내가 기지가 있어 하고 즐거워했는데

알고 보니, 호텔이 텅텅비워서 예약도 필요없는 곳이었다고. 그리고 가격도 인터넷상보다 더 싸고.

 

내동생은 아직 카사블랑카에 있고,

내일 두바이를 거쳐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길 기원하면서,

이렇게 동생의 탈출기를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