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자신을 맡기는 것

 

등록일 : 2007-09-20

 

 

 

 


 

1858년 6월 30일. 나이아가라 폭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300미터가 넘는 길이의 줄을

팽팽하게 매어 놓고 세계적인 줄타기 선수 찰스 브론딘(Chares Blondin)이 줄을 타려고 했다.

특별 열차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토론토와 버펄로로부터 모여 들었다.

드디어 찰스 브론딘은 10m 가량 되는 긴 장대를 손에 들고 균형을 잡으면서 줄을 타기 시작하였으며,

다 건너갈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양쪽에서 숨을 죽이고 조용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찰스 브론딘은 여유있고 노련하게 건넜고, 발을 땅에 내디딜 때 감탄한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격앙된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찰스 브론딘은 입을 열었다.

‘어깨 위에 사람을 태우고 되돌아 건너가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가 저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탈까?’ 하고 수군거리며 흥분했다.


“여러분, 내가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놓고 건너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예, 당신은 사람을 올려 놓고도 능히 건너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서 대답했다.

찰스 브론딘은 그 중 한 사람에게, “당신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타시겠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손을 내저으면서 뒷걸음질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했지만 질겁하며 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때 자기 친구인 헨리 콜코드(Henry Colcord)에게 물었다. 콜코드는 “나는 믿네.

전혀 의심하지 않네.” 하면서 브론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손에 땀을 쥐고 침을 삼키며,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급격히 흘러내리는 폭포 위에서 줄 위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거운 침묵과 무서운 긴장 속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디딤으로 줄타기가 끝났다. 흥분된 군중들은 대환성을 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얻어 먹고, 여러 가지 이적 행하심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구경꾼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 의하여 결박되어 총독 앞에 서서

고소를 당할 때에나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도 여전히 구경꾼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함께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면서 희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더 신뢰했다.

그들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뜻없이 따라다녔고,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열심을 내는 것이나

아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찰스 브론딘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하여도 그에게 자신을 맡길 수 없다면

온전한 믿음이 아닌 것과 같다.


예수님은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하러 오셨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것과 병도 짊어지러 오셨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예수님에게 자신의 죄악을 담당케 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한 것과 병을 짊어지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경꾼으로 있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을 문둥병자나 중풍병자로 묘사하고 있다.

문둥병자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죄인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면,

중풍병자는 행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죄인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 연약함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한지 모른다.

죄인은 너무 무능하여 아무것도 책임을 질 수 없다.

죄인이 살길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


헨리 콜코드가 찰스 브론딘의 어깨 위에 올라탔을 때, 콜코드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브론딘과 하나가 되었다. 그가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쓰기라도 했다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둘 다 줄 위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콜코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만 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콜코드가 브론딘에게 자기를 맡긴 것과 같다.

예수님에게 모두를 맡기고 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신 것은 일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일을 마치시고

더 하실 일이 없어서 쉬셨던 것처럼 쉬는 것이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re:

 

아멘 입니다.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개혁 한글)

 

I tell you that he will avenge them speedily.

Nevertheless when the Son of man cometh, sha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KJV)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표준 새번역)

 

 

누가복음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마태복음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주님이 보실때에

우리 믿음이 얼마나 없는 것인가...

 

있다한들 얼마나 작은 것인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신다.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라하는 것은

계시된 믿음, 인쳐진 믿음, 믿어진 믿음을 말합니다.

 

이를 산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다만 귀로듣고 읽어서 아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찾고 찾아 구하는 자에게 계시되는 믿음은

살리는 믿음, 사는 믿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들어와 싹트고 자라면 큰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약속입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은 폐해지지 않고 변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약속한 말씀은 참입니다.

말씀은 권세가 있습니다.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잡고 가는 자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잡고 믿고 구한 것을 의심치 아니하면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시행하십니다.

 

맡기는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에 100% 아멘하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믿고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맡긴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회개도 - 죄사함도 - 거듭남도 - 삶도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됩니다.

 

은혜를 받는 열쇠가 말씀이요

믿음으로 은혜의 문을 엽니다.

 

모든 말씀은 약속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 참되신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믿고 의심치 아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구한 것을 받은 줄 알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008.02.18  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