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알고자하는 욕망이 있으며
무엇을 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자랑한다.
아는 것 곧 정보는 힘이다란 말까지 한다.

젊을 때부터 나라는 것에 대한 의문은 화두처럼 따라다녔지만
생각해 볼수록 더 깊은 의문에 빠지곤했다.

나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영원히 나인가...
나는 나를 벗어버릴 수 없는가...
나는 영원히 나안에 갇혀있는 것인가...
나의 온 목적은 무엇이며
나의 가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무엇이 가장 최선의 목적인가...

사람이 가장 가까히 소유하며 친근하며 보호하며 사랑하는 나...
그런데 정작 나라는 것의 의미를 알수 없다는 것은
의문중의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나도 모르는데...무엇을 안다고 할수 있겠는가...

나라는 의미는 전체속에서의 목적과 위치를 알때에 풀리기 시작한다.
비행기나 차 어떤 기계를 놓고본다면...
거기에는 수십만 또는 수만의 부속들로 이루어져있다.
그 부속 하나만 놓고 본다면 그 의미와 위치를 찾을 수 없다.

나의 가치와 위치와 역할은 전체속에서 풀리게 된다.
전체가운데 사용되는 목적과 위치를 알고 그 역할을 하게될 때에
만족하며 안식하게 된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목적가운데 인생을 지으신 최종목적
거기에 도달하여 그 위치를 누리며 안식할 때에
나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지은 목적은 지은 자의 목적안에 있다.
그 목적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안식 할수 없다.
그 목적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가치를 누릴 수 없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궤도를 벗어나 유리하는 끝없는 방황일 뿐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못한 잃어버린 부속품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멀리 떠난 인생이
영이요 생명이신 그 말씀의 품안에서 회복되기 전에는
진정 나의 의미를 알수 없고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말씀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이를 수 없다.
그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주님으로만 이를 수있다.

말씀으로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은
말씀이신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셨기에
말씀으로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신다.

아버지께서 오셔서 피흘리고 죽으셨다.
아버지께서 오셔서 자신의 피를 부어 낳으셨다.

우리가 그 생명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품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알수 없다.

전체안에서 나는 있으되 없고 하나이며 한 생명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사9:6)

토기장이가 지은 목적대로 쓰여지는 것이
곧 나의 정체성(본래의 바른 모습 또는 성품)을 되찾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3:3-5)

거듭남으로 가는 길은 회개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회개는 생명의 길로 들어가는 좁은 문입니다.
빛비춤으로 회개될 때에 자신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고" 타락한....
정녕 죽어야 할 자신을 보게됩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보이고.. 바라보게 됩니다.
바라보게 될 때에 믿어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믿음이 시작됩니다.

주님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죄사함 받고
죄의 몸이 처리되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낳게 됩니다.

 


2008. 7. 14  저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