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수퍼 댓글족'이 여론 흐름 입맛대로 조종
[중앙일보   2006-03-08 10:40:33] 


[중앙일보 정강현] 지난달 12일 오후 6시, 한 인터넷 동호회에 '리니지에 명의 도용'이란 글 하나가 올랐다. 이 글은 1~2시간 만에 각종 포털사이트로 급속히 퍼졌다. "내 주민번호도 도용됐다"는 댓글이 붙기 시작했다. 이튿날 오후 중앙일보 인터넷 사이트와 주요 포털에 관련 뉴스가 처음 게재됐다.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올랐다. 14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16일에는 정보통신부가 인터넷의 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 댓글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인터넷 여론을 생산하는 '댓글문화'가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떠올랐다. 현재 인터넷에서 생산되는 댓글은 하루 평균 50만~100만 건으로 추산된다. 청와대 국정브리핑에서 인터넷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댓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곳이 거의 없다시피 됐다.

그러나 댓글을 대량으로 쏟아내는 '수퍼-댓글족(族)'이 댓글문화를 주도하면서 인터넷 여론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지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협조를 얻어 '댓글족'의 실체를 해부했다. 분석 대상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30일 동안 네이버 뉴스사이트에 달린 댓글이다.




◆ 소수에 의한 인터넷 여론=이 기간의 뉴스사이트 방문자 수는 4194만4832명. 이 중 한 건이라도 댓글을 남긴 댓글족은 전체의 0.84%인 35만545명이었다. 하나의 뉴스를 100명이 볼 때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1명도 안 된다는 의미다. 한 달 평균 70건 이상의 댓글을 작성하는 수퍼-댓글족 1만1878명이 전체 댓글 437만3306건 중 절반이 넘는 221만2813건(50.6%)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퍼-댓글족은 3.4%에 불과했지만 인터넷 여론 생산의 '허브(hub.중심축)'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과) 교수는 "댓글이 소수 네티즌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 여론에 대표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댓글의 작성자는 남성(76.7%)이 여성(23.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황 교수는 "공격적 성향이 강한 남성이 댓글을 집중적으로 달고 있기 때문에 댓글 내용도 일방적이고 전투적인 경우가 많다"고 풀이했다.

연령별로는 인터넷 이용률이 높은 30세 이하가 작성한 댓글이 61.1%(267만1749건)를 차지했다. 뉴스 영역별로는 연평균 기준으로 사회(25%).연예(20%).정치(15%).스포츠(12%) 순으로 댓글이 많이 달렸다. 사회 이슈에 민감한 댓글문화의 특성 때문이다. 조사기간으로 국한할 경우 과학(29.4%)이 1위였다. 이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과학 분야로 분류한 때문이다.

분석 결과 월평균 1000건 이상의 댓글을 작성하는 '울트라-댓글족'은 137명이었다. 이들은 조사기간 중 21만8203건(전체의 5.0%)의 댓글을 양산했다. 한 달에 7000여 건의 댓글을 단 네티즌도 있었다. 경희사이버대 민경배(NGO학과) 교수는 "극소수의 네티즌이 무의미하게 배설한 댓글이 인터넷 공간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 수퍼 댓글족=일반 네티즌의 평균보다 월등히 많은 댓글을 생산해 사이버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소수의 네티즌들. 네이버 뉴스 댓글 분석에선 한 달에 70건 이상의 댓글을 올리는 그룹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강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pdjeong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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