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 Concerto in D minor, D.45

Giuseppe Tartini(1692~1770) 

Giuseppe Tartini Statue


1악장 (Allegro)


2악장 (Grave)


3악장 (Presto)

작품 배경 및 개요

주세페 타르티니(Tartini, Giuseppe 1692~1770)는 오늘날 가장 널리 연주되는 작품의 작곡가이면서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모차르트 독살설”이 끊임없이 살리

에리 재평가를 방해하고 있듯이, "악마”의 검은 휘장은 타르티니의 다른 뛰어난 소나타 들을 망각의 어둠 속에 붙잡아 놓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연애 사건과 “악마의 트릴” 덕분에 타르티니는 마치 자유롭고

광기가 넘치는 예술가의 전형처럼 알려졌지만, 실상은 매우 다릅니다. 타르티니는 음악적인 혁신자였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기술을 정리하고 가르치는 데에도 뛰어났습니다. 기교만 뛰어났던 동시대의 다른

연주자와 비교해보면 타르티니의 아카데믹한 측면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안드레아스 모저를 비롯한 바이올린 음악사가들은 타르티니를 주요 유파인 파도바 악파의 첫 머리에 두는 것입니

다. 타르티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었으며 또한 음악이론가로 유명해 졌습니다. 그는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였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파도바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틈틈이 대학

에서 바이올린을 연마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었습니다. 바올린 제자였던 E.프레마초레와 열애 끝에 비밀리에 결혼을 하였으나, 1713년 그녀의 보호자였던 코르나로 추기경의 체포령으로 파도바를 떠나

각지를 돌아다니다 아시지의 수도원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바이올린 주법을 연구하고, 음악상의 연구에 근거한 악기구조의 개량이나 새로운 이론의 전개를 시도하였고, 그곳의 예배당 악장이었던 B.체르노호

르스키에게서 작곡을 배웠습니다. 이시기의 작곡으로는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이 있습니다. 이후 1721년 파도바에 있는 안토니오 교회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있었고, 1723년 프라하를 방문하여 1726

년까지 킨스키 백작과 로프코비츠 후작의 궁정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728년 파도바로 돌아와 바이올린 학교를 창설하여 교육하는 한편 이론연구와 작곡활동을 하였습니다. 창작활동은 1712~60년에 이르는 동

안에 소나타, 협주곡, 신포니아 등의 기악곡을 중심으로 약 350곡의 작품을 작곡하였습니다. 소나타와 협주곡은 형식이나 양식면에서 새로운 시도는 보이지 않으나, 초기 작품은 바이올린의 명인답게 화려한 기교

를 내세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점차 표정적인 선율미가 우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론가로서는 차음 (差音)의 발생을 실천적으로 발견하였을 뿐 아니라 1754년 '화성론' 1767년 '온음계적 화성의 여러 원리' 등

을 저술하였습니다. 제자로는 나르디니, 그라운, 나우만, 만프레디 등이 있습니다. 대표작품으로 '악마의 트릴' 외에 150여 협주곡과 100여곡의 소나타 및 '미제레레의 기도' '노예 레지나' 등의 종교음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