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의 쾌변독설] 태권도계는 지금 '배신의 계절'

서울 밝은 달에 밤 깊도록 노닐다가 / 들어와서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신라시대의 처용가이다. 처용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아내의 배신에 화가 치밀었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라며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처용처럼 외도한 아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남자는 아내의 배신(변절)에 치를 떨며 현장에서 작살냈을 것이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태권도계에도 우정과 신의를 저버린 배신과 배반이 횡행하고 있다. 원칙과 명분이 없는 이합집산과 철새 태권도인들의 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눈 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식과 염치, 그리고 그 동안 유지해온 신의마저 저버리는 태권도인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해 연말에 끝난 시도태권도협회 및 연맹체 회장 선거와 그 이후 새 집행부 구성 과정에서 ‘한 식구’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자리다툼으로 등을 돌린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후문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선거 후 정치적으로 팽(烹)을 당했다는 사람들은 치를 떨고 있다.

 

단순한 현상만 가지고 누가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을 했는지 진위(眞僞)와 선악(善惡)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가 순간의 탐욕으로 신의를 저버렸는지 알 수 있다.

도덕(道德)에는 법이라는 공식적 규범 이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의(信義)라는 비공식적 규범도 있다. 신의는 법과 함께 사회 운영의 기초다.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영달을 추구한 사람은 훗날 자신도 배신을 당한다는 속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언론인 정영무 씨는 “사람의 등은 무방비 상태다. 등을 치거나 찌르는 배신은 ‘심리적 퍽치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심리적 퍽치기’를 당하는 태권도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2009-02-20 PM 02:13)  

 

<서성원 기자-www.moosin.com>

 

[기사제공 : 무신미디어 / WWW.MOOS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