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역사] 국제태권도연맹 창설 배경




1966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최홍희는 그해 3월 22일 자신과 가까운 군(軍) 출신 정치인들과 지인들을 규합해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했다. 사진은 ITF 현판식 모습이다.

최홍희는 당시 실력가였던 김종필을 국제태권도연맹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자신이 총재를 맡았다. 처음에는 정일권을 명예총재로 위촉하려 했으나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모략을 받을 우려가 있어 김종필로 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이종우는 ITF 창설에 대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에서 불미스럽게 퇴진한 후) 서울 한남동 최홍희씨 집에 찾아가 권위와 돈, 명예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자 그는 명예를 선택했다. 당시 나는 최홍희씨가 하도 안돼 보여서 국내에서 골치 아프게 활동할 것이 아니라 국제조직을 만들어보라고 한 것인데, 그것이 결국 국제태권도연맹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최홍희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언젠가는 태권도 관련 국제기구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사퇴함으로써 그 계획이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또 ITF는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상백 IOC위원으로부터 올림픽에 관한 책 2권을 빌려 혼자 ITF 규약을 만들었고, ITF 깃발과 유단자 배지도 스스로 도안했다”고 밝혔다.

최홍희의 주장을 보자. (최홍희著 ‘태권도와 나’ 참조)
“내 집에서 법률의 권위자인 김완용 장군과 대한태권도협회 간사들로 구성된 발기인 대회를 가지고 규약 통과와 임원 구성을 완료했다. 나는 대한태권도협회 후임 회장에 노병직 송무관 관장을 내정하고 66년 3월 22일 조선호텔 비즈룸에서 내외 귀빈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9개국 협회로 구성된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처음 갖게 된 국제기구의 본부였다. 내가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한 목적은 태권도를 온 천하에 뻗치자는데 있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연구한 기술을 외국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국제사범을 길러야 했다.”


최홍희는 역사상 최초로 태권도 국제기구본부가 창설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이었다. 응당 정부의 대우를 받을 줄 알았지만 대한체육회 빌딩은 고사하고 석탄창고로 쓰던 5평도 안 되는 곳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런 실상에 대해 최홍희는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띤 우리 연맹이건만 불행히도 정권이 박정희 손아귀에 있다 보니 출범 첫날부터 재정적으로 곤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처지가 너무나 한심스러워) 이상희 부총재를 매일 같이 들볶았더니 그는 마지못해 빈약한 소파와 책상 두 개를 기증해 왔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맹의 틀을 하나씩 잡아나가야 했으니 한차교나 김종찬 사범은 물론 행정을 보는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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