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급여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은행을 찾았습니다. 급여이체가 아닌 현찰로 주기 때문에 돈을 찾아와야 했거든요. 원래는 토요일에 갔었는데, 하루 종일 은행 전산망이 다운되면서 불안정한 터라 자금 인출이 쉽지 않아 이미 하루 지연된 상황이었습니다. 아침 9시쯤 은행에 도착해보니 은행입구에서 줄을 서고 있는 대열이 보이더군요.

 

 

예전에 은행들은 보통 아침 8시~12시에 열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4~8시 사이 두 차례로 나눠서 영업을 했는데, 요즘은 오전 9시 반~오후 4시 반까지 영업합니다. 두 차례로 나눠서 할 때는 쌀라 시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영업하지만, 지금은 중간에 쌀라 때문에 두번에 걸쳐 약 1시간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짧은 겨울도 끝나고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만든 줄을 잘 지키고 서 있는데, 한 사우디 남자가 줄을 무시하고 문 근처에 있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향해 언성을 높이면서 어수선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뻔뻔스런 그 인간은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더군요.

 

 

영업시간이 되어 문을 열자 사람들이 들어가는데 그 뻔뻔한 인간도 자연스레 묻어 들어갑니다만, 이미 그 남자 때문에 열받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은행 안에서 잡아죽일 기세로 멱살잡고 언성높이며 소란이 한바탕 벌어집니다. 은행의 매니저들과 보안요원들이 총출동해서 사태가 커지는 걸 막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더군요. 

 

 

아무튼 그런 소동 속에 전 세번째 번호표를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돈을 찾아서 돌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제 차례가 왔을 때 끝나고 말았습니다. 들고 간 수표의 서명이 다르다며 인출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 서명이라는게 한자로 된 서명인지라 얘네들이 한자도 모를텐데 어떻게 서명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걸까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한자로 썼으니 그들의 눈엔 그려진 모양새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텐데 말이죠. 같은 사람이 쓴 서명이고 모양새도 거의 비슷해 보일텐데 왜 틀리지???

 

 

다른 일을 할 것이 있어서 담당 매니저에게 갔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뭐가 문제가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 매니저는 친절하게 등록된 서명의 스캔 이미지를 자신의 모니터를 통해 친절하게 보여주더군요. 사인이 문제가 된 것은...

 

 

"등록된 서명은 글자와 글자간 간격을 상당히 좁혀서 한 반면에, 수표의 사인은 글자나 공간모두 넓적하게 썼으니 다른거지....!"

 

라는군요..... 쿨럭;;;;

 

 

설명을 듣고는 매니저에게 같은 사람이 쓴 서명이고 조금 넓은 것 뿐인데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매니저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그 담당자에게 가보라곤 합니다.

 

 

그 다른 매니저는 업무볼 때마다 자주 보기 때문에 안면도 있고, 잘 도와주기에 금방 해결될줄 알았습니다....만 그러한 기대 역시 어김없이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회사 계좌를 알기에 잘 도와줄 수 있다는 수표의 서명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담당자가 그날따라 휴가라는 겁니다!!!! 털썩;;;;

 

담당자가 휴가로 비운 자리를 대신하는 임시 담당자는 가부 여부를 알려주지도 않고 질질 끕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선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되었을 때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수표로는 절대 안돼! 이런 답을 준 것도 아니고 승인도 없이 시간만 끕니다.

 

그리고는 가부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의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답을 독촉하는 전화를 걸면 받지를 않거나 딴 소리를 하고, 요청하지도 않은 승인이나 해주면서 시간을 죽이더니 3시쯤에나 돌아올 거라면서 11시 반쯤엔 아예 밥 먹으러 자리를 비워버렸다는군요;;;;; 되면 된다, 안되면 안된다는 답을 주면 머라도 할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잠시 다른 길을 모색하러 다른 지점을 찾으러 가보려고 시도했습니다만... 이런 젠장!!! 공항쪽으로 향하는 매디나 로드의 초입은 이미 심각한 정체상황입니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뭐가 터지기라도 했는지 일부 도로가 물에 침수되었더군요;;;;;; 그 날은 비 따위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날씨였으니 예상치 않은 침수로 인한 교통체증은 사람을 더욱 힘빠지게 만듭니다. 평소 몇 분, 정체되어야 20분 정도면 빠져나올 수 있는 그 길을 40분 넘게 허비해서야 겨우 빠져나옵니다.

 

막혀있는 도로 위에서 다른 지점의 상황을 체크해 봤는데, 거기까지 가느니 다시 원래갔던 곳으로 돌아가는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더군요;;;;; 설령 3시에 담당자로부터 승인을 받아도 돈을 찾으려면 번호표를 받아둬야 하길래 간단히 햄버거로 허기를 면하고 두 시쯤 다시 처음 갔던 지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번호표를 다시 받았는데..... 한숨만 나오더군요. 제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만 수십명;;;; 업무처리 절차가 워낙 늦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드디어 그 담당자가 온다는 오후 3시! 타지점을 가기 위해 시도했던 1시간 외에 은행에서 죽치기 시작한지 6시간 째.

절 도와주던 직원에게 다시 전화를 재촉하여 겨우 최종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네... 분명히 다른 서명이니 그 수표로는 인출이 안된다는 겁니다;;;;;;

글자와 자간 간격폭이 다른 건 모양이나 필체가 같아도 다른 사인이라는 군요;;;;; 이 답을 확실하게 받는데 공연히 5시간을 버린 셈이 되었죠.... 미리 확답을 주었음 이러지도 않았을텐데....

 

이미 하루 늦춰진거 또 늦추기도 그러니 걍 오늘 찾자는 직속 상사의 의견에 따라 사무실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전 은행에서 번호표 잡고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에서 새로운 수표를 만들어 가지고 오는 것이죠. 아무 일도 한 거 없이 은행에서 지쳐버린 저는 사무실에서 오길 기다리며 은행에 앉아서 잠깐의 낮잠을 청합니다. 사무실에서 온다 한들 쌀라 브레이크 때 도착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 쌀라가 끝날 때까진 번호표를 챙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거든요.

 

잠깐 선잠을 깨고 보니 드디어 은행문을 닫고 아스르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녁 먹으러 갔다가 쌀라에 걸려 불꺼진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은행 안에서 쌀라를 맞이하는 건 4년이 넘는 사우디 생활 중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네요... 문을 닫는다고 아예 일을 않하는건 아니고 예배 드릴 사람은 예배 드리고,  일 할 사람은 일 합니다. 예배시간에 문을 여는게 잘못일 뿐이죠. 보통 작은 지점은 손님들 다 내보내고 예배드리거나 쉬는데, 이곳은 본점이라 그런지 일할 사람은 일하고 있더군요.

 

(은행 안에서 아스르 예배를 드리는 은행직원들...)

 

 

아스르 예배가 끝나고 마지막 영업시간에는 몇 명의 고객 밖에 없었습니다. 번호표 상으로는 제 앞에 대략 70명 이상의 손님이 있어야 했는데, 기다리다 지쳐서 다 가버린 탓이죠. 새로운 수표를 받아 겨우겨우 제 차례가 왔을 때는 이미 은행의 정상영업 시간이 종료된 다음이었습니다. 제 일을 마치고 보니 시간은 이미 다섯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돈 한번 찾자고 9시에 도착해서 모양은 같아 보이는데 글자폭과 자간 간격이 다르다면서 정작 사용가능 여부를 늦게 알려준 땜빵 담당자 때문에 5시까지 8시간을 허비해버린 황당했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안되는 일은 멀해도 안된다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도 퇴근시간과 맞물려 교통체증과 함께했던... 그런 하루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