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공주고 출신 청주양씨 3형제>

국립공원 계룡산아래 넓게 펼쳐진 마을인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출신 <양씨 3형제>가 유명하다.

3형제중 큰 형인 양순직(1925~2008년)은 공주고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해군소위로 임관 1961년 해군중령으로 예편했다. 서울신문사장을 거쳐 중앙정보부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다선의 공화당.신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0년대에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함께 평민당 창당을 주도했다.동생인 양봉직은 1928년생으로 공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법대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6기 출신으로 6.25전쟁때 <다부동전투>의 중대장으로 유명한 전투 일화를 남겼으며, 논산훈련소장을 거쳐 1군단장으로 재직 중 진종채.이희성 등의 견제로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였고,반야심경을 발췌독서하고 불교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제1묘역)에 안장되어 있다.양순직의 또 다른 동생인 양인직도 공주고를 거쳐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경천중학교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이들 3형제는 5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시기에 각 분야에서 주름잡던 인물들로 유명하다.특히 이들 3형제 출신 마을 지경리는 1970년대초 <새마을운동>이 한참 진행중일때 전국 최초로 <새마을운동 모범마을>에 선정되기도 했다.

 

<제1군단장 양봉직 중장 축출 음모 사건>

박정희와 군부(軍部)를 논할때 부정적으로 크게 인식된 사건이 "윤필용 사건",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정치군인 사건", 전두환 등 하나회 사조직에 의한 1979년 12월12일의 "12.12 군사반란 사건" 등을 말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양봉직 제1군단장 축출사건"이다.

1976년 수도권 북방 방위책임을 맡고 있던 제1군단은 양봉직 중장이 군단장이었다. 당시 군단장의 친형이 양순직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는데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반대하고 나서자 박정희의 눈 밖에 났다. 이에 착안한 진종채 보안사령관은 제1군단장 양봉직 축출을 구상했다. 당시 육사 8기생 군단장은 충청도 출신의 이재전과 강원도 출신의 이범준이었기 때문에 영남권 8기생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군단장은 군사령관과 참모총장으로 이어지는 군권을 장악할 수 있는 요직인데, 충청도 출신으로 강직하고 청렴한 양봉직 장군이 있는 한 8기생 영남 출신은 자칫 전멸할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따라서 진종채와 이희성의 음모가 시작되었다. 양봉직 제1군단장을 축출하고 그 자리에 이희성이 가고 진종채는 사단급인 보안사령부를 군단급으로 격상하면 영남권 두 군단장급이 만들어진다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강직하고 그 낌새를 알고 있던 양봉직 장군이 약점을 노출할 리가 없었다. 그러자 진종채는 최후 방책으로 양봉직 군단장이 방위성금을 착복했다고 박정희에 허위보고해 단 하루 만에 제1군단장을 교체했다. 진종채는 보안사령부를 육?해?공군을 통합해 군단급으로 격상시켜 중장이 되었고, 이희성은 제1군단장에 취임함으로써 두 명의 8기생 군단장을 탄생시켰다. 이 사건은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들의 후원과 격려로 전두환 등에 의한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여 군사정권이 만들어졌고,이희성은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

불과 200여명의 정치군인들이 대한민국 국군에 흙탕물을 끼얹고 있었을지라도 거의 모든 장병들은 그 굴욕을 참으면서 임무수행을 했다. 현재는 이런 정치군인이 없다고 보아진다.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왜냐하면 하나회와 같은 사리사욕 집단은 전근대적 조직이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세기에 있어서 원시적 사조직이 필요할 까닭이 없다. 군부의 오욕을 훨훨 털고 새 세기를 향하고 있는 오늘의 군부에게 애정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박정희 시대 군부의 오점은 역사적 교훈으로 항상 잊지 않고 있을 때 그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예비역 육군 준장, 한국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시인(詩人) 글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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