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의 혁명' 강의를 듣고...


 

역사 강의를 많이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흥미를 느끼며 관심을 깊이 가졌던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물론 지난 학기에 장진태 교수님의 '영국 문화 산책'을 수강하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에 대한 역사를 살짝 접하기는 했으나, 역시나 셀틱 문화에 대한 공부였지 역사 공부는 아니었다.

 

근대 유럽에선 유럽사에 획을 그은 굵직한 혁명들이 일어났는데, 종교개 (1517), 명예 혁명(1688), 독립혁명 (1793~1791) 그리고 프랑스혁명(1789~1799)이 그것들이다.

 

그렇다면 혁명과 개혁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혁명이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며, 사전에서는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을 뜻한다..

혁명과 개혁의 차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늘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표현들이 었는데 이런 차이가 있는 줄을 오늘에야 알았다.

 

1. 종교개혁 (Refomation)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만의 개혁이 아니라 근대의 문을 연 거대하고도 포괄적인 사회개혁 운동이었다. 그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가교였다.> - 김덕영 (카셀 대학 사회학 교수)

 

종교개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썩어있는 카톨릭 교회에 대항을 함으로 시작되었는데, 물론 처음부터 강력한 개혁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고 교황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환경이 그렇게 흘러갔고, 결국 점점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반항의 물결이 거세졌다.

 

독일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남과 더불어, 스위스에서는 프랑스인인 칼뱅이 제네바에서 종교를 일으키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칼뱅파 기독교인들을 위그노라고 불렀는데, 그 위그노들을 핍박하며 일어난 것이 바로 위그노 전쟁이다. 칼뱅파 기독교 신자들은 영국으로 흘러가 청교도가 된다. 청교도는 나중에 올리버 크롬웰을 수장으로 청교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데, 혁명에 실패하게 된다. 수장인 올리버 크롬웰은 처형 당하고, 청교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바로 그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청교로서의 문화를 이

어나가게 된다.

 

김덕영 교수에 의하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면죄부로 인해 일어난 개혁이 아니라는 게다. 면죄부가 아니어도 카톨릭 자체내에서 개혁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

<종교개혁의 원인은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중세 말기의 구조적 모순에서 찿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당시 인간 삶의 다른 영역을 근대로 내달리고 있었다. 예컨대 국민국가, 자본주의와 화폐경제, 인문주의 등이 등장해 발전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근대적 개인중의가 나타났다.(중략) 이 도도한 근대의 물줄기와 동떨어진 채 종교라는 삶의 영역은 여전히 중세적 틀에 갇혀 있었다. 누군가 이것을 허물고 근대의 물꼬를 터야만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이자 요청이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종교 밖의 힘이 아니라 종교 안의 힘이었다. 중세는 종교가 모든 종교 바깥 영역을 포괄하고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회적 문화적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종교 내부의 힘이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고 말하고 있다.

 

훨씬 포용력있고 믿음이 가는 설명이다. 단순히 면죄부 때문에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껴졌었던 나의 의문에 시원한 대답이 되어주었다.

 

2. 명예 혁명 (Glorious Revolution)

영국의 명예 혁명은 청교도 혁명을 일으켰던 올리버 크롬웰이 지독한 독재정치로 국민의 반감을 사고 교수형에 처하면서, 망명 중이던 찰스 2세를 받아들이며 왕정으로 복귀하나, 찰스 2세가 카톨릭을 옹호하고 전제 정치를 행하자, 의회는 왕을 옹호하는 토리당과 의회를 존중하는 휘그당이 생겨 대립하기 시작하는데, 찰스 2세를 계승한 제임스 2세는 전제 정치를 강화하게 된다. 이에 의회는 1688년 제임스 2세를 폐위하고 딸인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윌리엄 3세를 공동 왕으로 추대하게 되는데.. 제임스 2세가 망명하자 메리와 윌리엄 3세는 1689년 의회가 제정한 권리장전을 승인하고 왕위에 올랐는데 유혈사태 없이 정권 교체를 이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왕정을 없애고 혁명을 성사시켜, 이를 명예혁명이라 한다.

 

*OBS:

이 메리 여왕이 바로 많은 피를 흘리게 했던 그 메리 여왕인가? 해서 Bloody Mary라는 별명이 붙고 심지어는 칵테일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그 메리여왕.. 알고보니 그 메리 여왕은 메리1세였다. 명예혁명 때의 메리 여왕은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2세다. 이름이 모두 비슷하고 숫자로 나뉘어지니 쉽게 혼동이 된다.

 

3. 독립혁명 (American Revolution - 1779. 7. 4)

미국의 독립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쟁이었던 동시에 세계 최초로 왕정을 폐지하고 현대적인 공화국을 만든 혁명이었다. 혁명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이라 할 때, 미국의 그런 혁명의 전형에 해당한다. 영국의 군주제를 거부하고 공화국을 만들고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사실은 커다른 의미를 가즌ㄴ다. 미국은 영국의 군주제를 모방하여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최고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다는 건 당시로선 놀라운 생각이었다. (...) 미국혁명은 많은 나라에게 민주주의 혁명의 이상과 영감을 주었다고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전한다.

 

4. 프랑스혁명 (French Revolution)

1789 7 14일부터 1794 7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 (두산백과)

 

<19세기 세계의 경제가 주로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면,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주로 프랑스 혁명에 의해 형성되었다, (중략) 프랑스는 19세기 세계의 혁명들을 만들어냈으며 이 혁명들에 이념을 부여하여 몇 가지 삼색시가 사실상 형성돼가는 모든 국민들의 상징이 될 정도였다. 1789년과 1917년 사이에 유럽의 (또는 실로 세계의) 정치는 주로 1789년의 원칙들 또는 보다 선동적인 1793년의 원칙들에 대한 찬반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 에릭 홉스봄 -

 

프랑스혁명이 현대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영국의 명에 혁명이 왕권을 무너뜨린 의회 중심의 혁명이었고, 미국의 독립 혁명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을 독립시킨 혁명이었다면, 프랑스혁명은 모든 시민을 억압했던 것들, 즉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그 모든 것에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혁명으로 현대 모든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프랑스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역사가들도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혁명은 200여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났고 현대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연 머뭇거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나라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이다. 시민을 위한 정치는 커녕 왜려 퇴보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 한국도 브라질도 말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그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늘 그렇게 살아간다.

따라서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면

사회적 차별을 둘 수 없다."

                                  - 프랑스 혁명 인권선언 -

 

 

프랑스 국가 La Marseillaise..
Mireille Mathieu의 목소리로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