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頂 스님의 '무 소유'를 비판한다 ***


 

 

 

법정 스님이 무소유했다? 이를 비판한다!

법정 스님은 어느 승려가 따를 수 없는 有所有 행복을 누렸다!

이법철 스님
작금의 한국사회는 2010년 11일 길상사에서 입적(入寂)하여 동월 13일 송광사에서 다비식(화장)을 치룬 박법정(朴法頂) 스님을 추모하는 일부 고해 대중들이 다투어 추모사를 하고, 눈물짓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임기 내내 자신이 목숨 바쳐 보위(保衛)해야 할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안보정서는 아랑곳없이 대북 퍼주기로만 임기를 마치다시피하고 죽은 DJ, 노무현에게 보였든 인정 넘치는 굿판 같다. 법정 스님을 향한 추모사는 신화로 변할 지경에 이르렀다. 왜 이러한 현상이 오는 것일까?

고해대중의 일평생 자나 깨나 화두는 돈이다. 고해대중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론(論)에 감격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양반이 되고 천민이 되고, 성공과 실패자가 되고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되고, 남자는 지조를 꺾고, 여자는 정조방매(貞操放賣)까지 하는데, 무소유론에 심취하여 책을 하려고 다퉈 경쟁하고, 소장하여 두고두고 독서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마음대로 돈을 벌지 못하거나, 돈은 많지만, 보시하기는 싫고, 마음으로라도 무소유사상속에 '버리고 떠나며', '맑고 향기롭게' 관념적으로 살아보겠다는 심산(心算)인가? 아니면 돈에 대한 집착을 떠나 보시를 시작하려는 것인가?

▲ 필자 법철스님
글은 진짜 그 사람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작가는 돈을 위해 국화빵, 붕어빵적 글을 써 낙양의 지가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작가의 자유다. 작가의 의도대로 고해대중이 정신없이 돈에 대한 화두를 내던지고 무소유를 연호하고, 감격하여 훌쩍이며 합창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가산(家産)과 가족(家族)을 정리하고 자연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 결론인가? 아니면 고달픈 인생에 관념적으로 한번 해보는 것인가?

60년 중반, 필자는 해인사에서 법정 스님을 처음 해후했다. 그는 해인사 해우소(解憂所) 가는 길 옆 건물의 끝 방에 기거하면서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글쓰기는, 첫째, 사찰환경과 자연에 대한 찬미였다. 둘째, 무소유, “내 호주머니는 먼지뿐일세”식의 글을 썼다. 그다음, “버리고 떠나기”, “맑고 향기롭게”를 연속 발표했다. 그는 마침내 신조어(新造語)의 글쓰기로 대성공했다. 명성과 돈이 따랐다. 돈 많은 여신도들이 후원인이 되려했다. 예나 지금이나 승속(僧俗)간에 유명인사에게는 일부 여성들이 설치는 것 아니든가? 해인사 밑 숙대 재학생인 미스 유가 정성을 다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노래에 감동받은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에게 1200억 상당의 대원각(大苑閣)의 부동산을 바치는 요정주인이 등장했다. 15세 동기(童妓)출신이다. 그녀는 70년대 일인(日人)들을 위한 한국 제일의 기생관광의 대모인 대원각 주인 김영한씨이다. 그녀는 대원각에서 가난한 한국의 딸들에게 일인들을 위해 가무(歌舞)하게 하고 술 따르게 하고 몸 팔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을 만나 업보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갈 수 있다는 법어에 일평생, 술 팔고, 몸 팔아서 번 돈을 일순에 바치는 결심을 했다고 전한다. 여성은 종교적으로 겁을 주면 큰돈을 내 놀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법정 스님에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가 후원회장으로 등장했다. 불교계는 물론 세간에 부러움의 화제가 일어났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전 삼성병원에서 입원가료를 받아왔는데, 병원비 6천2백만원을 홍라희 여사가 전액 지불했다는 언론보도는 또 한번 세인을 경탄케 했다.

어느 정부 고급 공무원 부인은 무소유를 보고는 감동하여 남편의 3개월치 월급의 돈을 남편 모르게 법정 스님에게 송금했노라는 자랑을 하며, “돈이 없는 분이라서 보냈는데 잘했지요?”라고 필자에게 문의해왔다. 남편은 뼈골이 빠지게 돈 벌어 가정에 내노니 부인은 괴상한 내조를 하는 것이다. 승려의 “호주머니에 먼지뿐일세”가 돈 많은 여신도들의 송금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필자는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 호주머니에는 먼지뿐일세”의 무소유 노래는 급기야 불교계를 뒤흔들었다. 부지기수의 승려들이 여신도들을 상대로 무소유 노래를 부르는 전성기를 일으킨 것이다. 법정 스님처럼 1000억이 넘는 보시를 받을 수 있고, 재벌회장 부인을 후원회장으로 만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사행심이었다. 어쨌든 “호주머니에 먼지뿐일세”의 노래는, 인정 많은 보살님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신통한 주술의 힘을 보였다. 그러나 기가 찬 것은 백화점을 소유한 모 승려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신도들에게 자신의 무소유사상을 강변하며 신도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는 소식이다. 사기협잡이요, 추태가 아닌가? 진짜 무소유를 실천하는 승려들은 무소유를 말하지 않는다.

▲ 법정스님.
법정 스님은 진짜 무소유한 일생을 살았을까? 모두 버리고 떠나서 그의 호주머니에는 먼지뿐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불교계의 어느 승려가 따를 수 없는 유소유(有所有)의 행복을 누렸다. 무소유, 그의 희망사항을 노래했다고 보면 될까? 그는 세계 여행에 자주 나섰다. 그는 출판사에 연락, 인세(印稅)를 챙겼다. 많은 액수의 인세와 신도들의 보시금, 사찰 방문 때의 보시금, 길상사에서 회주스님께 드리는 약값조의 보시금 등으로 어렵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신화 같은 전설을 만들어 우상화하여 이득을 보려는 출판사나, 일부 승려들이 낡은 옷 한 벌을 세상에 보여주며, “이것이 그분의 전 재산이라오” 라는 홍보는 불교계에서 늘 써먹는 진부하고 고전적인 홍보로 고해대중은 식상해 한지 오래이다. 인정 속에 눈물로 석별하는 고해 대중에게 진실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돈은 어디로 갔을까? 신화 같은 찬사의 절정은 법정 스님의 수십억 돈은 수혜자를 알 수 없는 불우한 학생들에게 학자금 보조로 지금 되었다고 한다. 불우한 학생 학자금 보조를 해주었다는데 이빨 가는 자가 있을까? 언제나 법정 스님의 보시는 익명이었고, 수혜자도 이름이 없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을 떠나 맑고 향기롭게 모두 지원하고, 법정 스님은 누더기 옷 한 벌 남기고 떠났다는 측근들의 주장이다. 법정 스님에 관한 영화라도 제작해야 할 기막힌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눈물 많고 인정 많은 고해대중은 훌쩍이며, 성자(聖者)의 무소유행에 찬가를 부르며 신화적인 이야기를 입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
법정 스님은 불교 이외에 어떠한 사상을 가진 분일까? 그는 목포상고의 선배인 DJ를 추종했다. 자신의 입으로 DJ에게 송금을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자유대한을 사랑하고 보위하는 글은 없다. 세습독재체제 속에 수백만이 비민주, 무인권속에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환히 알면서, 김일성, 김정일의 폭압정치에 대해서는 꾸짖기는 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박정희를 독재자로 미워했다. 그는 진보적 승려들이 부안방폐장, 새만금, 천성산, 사패산 등 국책사업의 저지할 때, 배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패산 농성에는 현장에 나타나 대정부 투쟁을 은근히 독려(?)하기도 했다. 버리고 떠난다면서 왜 그리 집착했을까?

법정 스님은 불교계 내부에도 정치필봉을 들어 선전선동에 나섰다. 1994년, ‘4,10 승려대회’ 때 자신이 지원하는 승려들이 종권을 잡게 하기 위해 투쟁적으로 나섰다. 결과는 어떤가? 당시 송서암 종정을 내쫓고, 당시 서의현 원장을 멸빈케 되었으며, 임원두 종정 사서실장을 멸빈 시키는 등 많은 승려들이 중징계의 화를 입었다. 비민주 무인권적인 보복정치인 중징계를 받은 승려들을 사면 받게 하기 위해 필자는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법정 스님은 단 한 줄의 사면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은 냉혹한 처신을 했다. 부모형제를 떠나서 부처님께 귀의한 같은 승려들을 무슨 권한으로 멸빈을 시키는 것인가? 청춘을 산사에서 보내고 난후 다 늙어 조계종에서 내쫓으면 늙은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할까? 법정 스님은 냉혹했다.

고해대중은 법정 스님의 신조어,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 ‘맑고 향기롭게’, 로 감동받아 찬사 가득한 추모사가 충천해지고 있다. 명작소설 ‘성녀 아도라타’가 생각난다. 창녀를 땅에 묻고 비석에는 ‘성녀 아도라타’가 묻혀 있다고 주장을 하니 추모객이 장사진을 이뤘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법정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통도사 극락전의 조실 김경봉(金鏡峰)대선사의 입적 직전 법어가 생각난다. 경봉 대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다. 나는 중(僧) 역할 잘하고 간다. 그대들은 사바세계(인간세상)를 무대로 멋지게 연기하기 바란다.”

필자는 경봉대선사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모(李某), 처자 있는 승려가 비구승인척 연기를 하고, 삼보정재를 훔쳐 수백억씩을 착복하여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주머니에는 먼지뿐일세”의 구차한 노래로 여신도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연기이다. 무식한 자가 깨친 것처럼 헛소리 하는 연기도 재미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덕에 풍요롭게 행복하게 살면서, 빨갱이 노릇하는 연기는 통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고해대중은 어떤 수행자를 존경해야 할까? 자기 참마음이 부처(是心是佛)다는 것을 알면 된다. 그러나 굳이 마음속에 스님의 상을 존경하고자 한다면, 사명대사와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기를 권한다. 그는 유생들의 핍박 속에도 임난(壬亂)이 나자 불교가 존재하는 조국 조선과 민족을 구하고자 신명을 바쳤다. 선조 37년 6월, 사명대사는 일본에 건너가 전쟁이 없는 강화조약을 맺고 귀국길에 일본군에 강제 끌려간 포로 3천6백여명을 데리고 귀환했다. 불귀의 객이 될 줄 알았든 포로들은 얼마나 환희용약 했겠는가? 당시 조선은 사명대사의 능력에 경탄했다.

오늘날 불교의 호국론(護國論)은 불교가 존재하고 중흥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보위다. 예나 지금이나 위국헌신(爲國獻身)하는 불제자들이 참된 불제자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것이다. 미사여구(美辭麗句), 언어
문자(言語文字)를 내세워 세상을 현혹하고, 이중인생(二重人生)의 연기를 잘하는 자에 박장대호(拍掌大呼)하고, 울며 돈 바치며, 추종할 것은 없다.

끝으로, 저승길에는, 부처도 갔고, 조사도 갔다. 일세를 빼어난 글쓰기로 명망을 떨쳤든 법정 스님도 갔다. 필자도 갈 것이다. 죽어 한줌 재로 화하여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정 많은 고해대중의 찬사 속에 법정 스님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고해대중이 찬사 속에 오열하며 석별의 정을 표하는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을까? 법정 스님이 이 땅에 다시 온다면, 자유대한을 사랑하고 보위하며, 불교중흥 속에 자비를 실천하는 문장가로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