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교감
이시은
겨우내 앙상한 가지를 내밀고 있는 정원수를 바라보며 봄을 기다린다. 번잡한 일상에서 부대끼다 보면 자연이 그립다. 개울물이 흐르는 산과 스쳐가는 바람결에 일렁이는 들판이 그립고, 파도 넘실대는 바다와 붉게 타는 석양빛을 뿌리며 지는 노을이 그리워진다. 그리움을 알기라도 하듯, 사계절 자연은 넉넉한 품을 열고 기다린다.
자연의 품이 그리울 때는, 사람이나 하는 일에 힘이 들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하는 일을 접어두고 훌쩍 떠나고 싶다. 그러나 다행히 떠나서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고 마음 다스리고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찾아 즐긴다. 창 밖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와 밤하늘에 별과 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을 나눈다.
한없이 수다를 떨며 하소연을 해도 묵묵히 들어주며,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한껏 안겨주는 눈 맞춤은 즐겁고 행복하다. 내밀한 가슴속을 쏟아내어도, 말을 옮겨 시비나 낭패스러움을 당하게 하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해도 그만이다. 누구에게 가슴을 털어놓고 돌아설 때의 허허로움이나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만한 대상이 또 있을까.
매서운 한파를 지나고 겨울이 물러나면, 나뭇가지는 어느새 물기를 자아올려 꽃을 피워 다가선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나던 나뭇가지에 어떻게 그 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꽃들이 피어 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움츠리고 있는 동안 소리 없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일을 하고 있나 보다.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꽃눈을 틔운 봄꽃은 잎새도 없는 가지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목련꽃과 살구꽃이 창가에 찾아들면 덧창을 한껏 열어젖히고 만난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창밖 나무들과의 교감은 싱그러운 여름 녹음을 거쳐 단풍으로 물들어 낙엽이 질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찬바람에 죽은 듯이 겨울을 나고 있는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를 기다린다. 연약한 새순이 겨울을 이기고 돋아나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 기다림을 알기라도 하듯이 나무들은 간간이 눈옷을 입고 즐거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봄꽃을 따라 움튼 새눈은 날이 다르게 연록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싱싱한 녹음을 만들어 더위를 쉬어가게 하고는, 연이어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을을 펼쳐 놓는다.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젖어들고, 눈 내리는 날이면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는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따라 즐거움을 찾으며 행복하고자 노력하며 산다.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기를 소망할 것이다. 각자의 즐거움이나 행복의 가치는 다를 것이다. 연일 이어지는 일들이 많겠지만, 나는 특별한 일에서 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고자 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에서 새로움과 행복을 찾는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영향이 미치지 않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며 자연과의 교감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이나 부담이 없어 더욱 좋다.
자연은 변화를 가져오면서도 때가되면 서서히 준비하여 어김없이 계절을 바꾸어 놓는다. 새로운 모습과 신선함이 있는 계절 닮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사람도 변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변덕스럽지 않고, 무던하면서도 내면을 잘 가꾸어 깊은 사고를 하여 지혜가 있고 현명하며,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간간이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하고, 변함없이 찾아주며, 믿음을 가지고 마음 나눌 수 있는, 자연처럼 넉넉한 사람을 가슴 속에 그려본다.
자연이 내게 준 여유와 아름다움을 나는 누구에게 전해주었던가. 내가 그리는 사람처럼 나를 그리워 해 줄 사람은 있는가. 창밖에는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이 세찬 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이 내게 그러했듯이 삭막한 가지 위에 따뜻한 가슴으로 옷을 입히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 듯 봄을 기다린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