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 15 -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


< UAE+그리스 전체 여정 >

2019.1.8.(화) 00:15 인천 출발~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두바이~아부다비(1박)

~그리스 아테네(1박)~산토리니(1박)~코린트(코린토스, 고린도)~올림피아(1박)~델피(델포이)

~메테오라(1박)~아테네(1박)~아부다비 경유~기내(1박)~1.16.(수) 11:45 인천 도착



올림피아의 고대 올림픽 경기장(스타디온, 스타디움)

(2019.1.13.일)


올림피아 헤라 신전

앞쪽으로 줄 둘러진 곳이 성화 채화지

(2019.1.13.일)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과는 달리 날씨가 화창하다.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스에 와서 처음으로 날씨가 화창한 듯~

기분이 한껏 상쾌해진다.


아침 7시, 식사를 하고...


숙소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공공 주차장이 있다.

바로 가까이 언덕 위에는 고대 올림픽 경기 역사 박물관도 보이고...

우리가 묵은 호텔과 시청 사이 코너에는

날개를 뻗치고 선 Pyrsos 동상이 있다.


올림피아 유적지로 향하는 길에 만난 오렌지 나무,

건너편으로 올림피아 시청


이어서 고대 올림픽 경기 역사 박물관을 만난다.


고대 올림피아 이야기

현재의 올림피아와 고대 유적지 안내,

수상자들에게 씌워지는 올리브관,

헤라 신전에서 성화 채화하는 모습 등...


고대 올림픽 경기 역사 박물관 앞을 지나고...


사이프러스 나무 늘어선 길을 따라 올림피아 고대 유적지 가는 길...


작은 하천 클라데우스(클라데오스)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매표를 하고, 우리는 직진하여 유적지로...

위 왼쪽 숲길은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가는 길...

아래 사진들은 수돗가 등 주변 모습.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에 온 것을 환영하는 글...

이곳에서 제우스 신을 숭배했으며

고대 올림픽 게임이 시작되었다.

제우스 신전의 신상 안치소에는

금과 상아로 된 신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곳에서 올림픽 성화 채화식을 한다

~는 내용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 안내도

체육장, 헤라 신전, 제우스 신전, 스타디온(스타디움) 등이 있는 구조이다.

올림피아 고대 유적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 배치도


제우스 신전의 복원 추정도

그림 오른쪽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은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태우는 제단으로 추정된단다.

제단 전체의 높이는 6.7m에 달했다는...

아래에 안내판의 설명을 옮겨본다.


올림피아 성역(알티스, Altis)

알피오스 강과 클라데오스 강이 만나는 지점의

크로노스(크로니오스) 언덕의 남쪽면에서부터 발전되었다.

일찌기 BC 3000년에 성역이 있었고,

미케네문명 시기(BC 1600-1100)에

이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제우스 신에게 봉헌된 성역은

 BC 10-9세기에 형태가 갖추어졌고,

최초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은  BC 7-6세기에 세워졌다.

성역은 BC 5-4세기에 절정에 달했고,

BC 4세기 말에 구역이 최종 형태를 이루었다.

올림픽 제전이 BC 776년에 시작되었고,

AD 393년까지 이루어졌다.

알티스(Altis)라는 성역은 경계 벽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3개(서쪽2, 남쪽1)의 문이 있었다.

성역에는 제우스 신전, 헤라 신전 등이 있었고,

경계 벽 밖으로 김나지움, 팔라이스트라, 목욕장, 호스텔 등이 있었다.

알티스 제전(올림피아 제전, 고대 올림픽)은

AD 393년에 금지 칙령으로 제한되었다.

AD 426년에 로마(동로마) 황제 칙령으로 유적이 파괴되었고,

AD 6세기에 지진으로 황폐화되었다.


올림피아 유적지 가는 길...

 오른쪽에 체력단련장인 김나지움과

레슬링과 격투기 연습장인 팔라이스트라가 이어져 있다.

왼쪽으로는 크로니온 목욕장과 프리타네이온 건물터다.


크로니온 목욕장


입장해서 왼쪽의 유적들

김나시온 맞은편의 크로니온 목욕장 터,

더 안(아래)으로는 프리타네이온 터 


크로니온 목욕장 설명

BC 2세기-AD 5세기.

여러 건축상과 기능을 가진 큰 복합 건물.

헬레니스틱 시기의 중앙 코트와 목욕장 위에

로마 시기에는 인상적인 모자이크가 놓인 방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3세기 말 지진으로 부서졌다.

마지막 수리 시기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기에 목욕장은 농업 활동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안내판 아래 왼쪽은 크로니온 목욕장 모자이크 바닥.


크로니온 목욕장


김나시온(김나시움, 김나지움) 안내도


체육장 김나시온(김나지움)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체육시설이다.


체육장 김나시온



고대 올림픽 이야기

선수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자유 시민들...

 개인 경비로 장비를 마련하고 참여.

참가 전 10개월 동안 각 폴리스에서 훈련을 받았고,

대회 한 달 전에 올림피아에서 가장 가까운 폴리스인

엘리스에 모였다고 한다.

엘리스에서 한 달 훈련 후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본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고,

자격 심사 통과 선수들은

경기 이틀 전까지 올림피아로 걸어서 갔다고 한다.

올림픽 진행요원을 헬라노디카라고 했으며,

그 중에서 심판을 뽑았다고 한다.

그들은 엘리스 시민 중에서 뽑았다고 한다.

고대 올림피아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제전을 치렀으며

황소가 제우스 신에게 바쳐졌다.

올림피아 제전(고대 올림픽) 개최는 BC 776-AD 393.


김나시온


김나시온 유적지

걸어온 쪽을 바라보며...


김나시온을 지나면 이어서

팔라이스트라(팔라에스트라, 팔레스트라) 유적이다.

열주가 있는 곳은 회랑이 있었던 곳이고,

가운데는 안뜰.


팔라이스트라 유적 안내도


팔라이스트라(Palaistra, Palestra, 팔라에스트라, 팔레스트라)

BC 3세기 때 모습 모형.

정방형 건물(66.35*66.75m)

전천후 실내 체육관 역할을 했다.

레슬링, 복싱, 점핑 훈련장이었다.

탈의실, 오일실, 목욕장 등을 갖추었다.

토론방도 있어서

철학자, 웅변가, 시인들도 이용했다.


열주 사이 안 공간인 이 잔디밭이 팔라이스트라의 안뜰이려니...


팔라이스트라에서 바라본 필리페이온(세 개의 기둥이 보이는 곳)

경계 벽이 알티스 성역과 구분짓고 있다.


팔라이스트라 실내 경기장 주랑


팔라이스트라 유적


팔라이스트라 유적

팔라이스트라를 지나면 페이디아스의 작업장과 

선수촌과 영빈관 역할을 한 레오니다이온 유적지를 만나게 된다.


페이디아스의 작업장과 레오니다이온 유적지


페이디아스(피디아스)

BC 460-430년경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파르테논의 페디멘트, 메토프, 프리즈 등의 조각을 제작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황금 상아상은 BC 438년에 완성했다.

아테네에서의 큰 활약은 모함으로 이어져 실각한 후 올림피아로 가서 

BC 435년경에 제우스 신전에 놓을 황금 상아 제우스 좌상을 완성했다.

  1950년대의 발굴로 제우스 신전의 서쪽에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 확인되었고,

여기서 제우스 상의 옷자락의 자형, 공구,

페이디아스의 이름이 있는 작은 병 등이 나와

작품의 연대도 알게 되었단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본존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황금 상아상,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제우스 신상.


처음 들어온 방향을 바라보며...

왼쪽이 김나시온과 팔라이스트라 구역이고,

오른쪽이 필리페이온과 펠로피온 유적지이다.


신들의 숲, 올림피아 성역(알티스)은

경기장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성역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위한 신전이 건립되었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여신을 모신 헤라리온(Heraion)과

키벨라 여신을 모신 메트룬(Metroon) 신전도 있었다.

사진 오른쪽이 알티스 구역인 셈.


팔라이스트라 앞 성역에 올림피아 제전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펠롭스(Pelops)의 무덤인 펠로피온(Pelopion)이 있다.


펠로피(Pelopion) 유적 안내


펠롭스 성소 펠로피(Pelopion)

알티스 성역 가운데에 있는 낮은 봉분은

펠롭스를 추모하는 공간, 무덤.

고대에 만들어졌다.

남서쪽 코너에 기념문(프로필론)이 있는

오각형의 울타리는

그리스 고전기에 추가되었다.


펠롭스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펠로피온 유적지가 안쪽으로 있다.

펠롭스는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서

올림피아 제전 경기를 창설하였다고 한다.


올림피아 제전 펠롭스

올림피아 제전의 기원은

제우스의 손자이자 탄탈로스의 아들인 펠롭스에 기인한다.

고대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에게는

히포다메이아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오이노마오스는 사위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듣게 되어

딸이 결혼하지 못하게 막으려 애썼다.

왕은 자기와의 전차 경주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공주의 짝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펠롭스가 출전하는 구혼 전차 경기에서

히포다메이아 공주가 펠롭스의 옆자리에 탔는데,

공주는 그를 보고 바로 사랑에 빠졌다.

공주를 전차에 태운 펠롭스 역시

그녀의 사랑에 힘을 얻어 더 힘차게 달렸다.

왕의 전차가 가까워져 추월당할 것 같은 찰나에

갑자기 왕의 전차 바퀴가 빠지며 전복되었다.

펠롭스가 왕의 마부를 매수했었던 것...

혼 전차 경주에서 승리한 펠롭스는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되었고,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서 올림피아 제전을 창설하였다.


제우스 신전 안내

제우스 신전 북서 코너의 기둥은

2004 올림픽을 기념하여 독일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재건되었다.

뒷문 현관의 재건은

2011-2012년에 역시 독일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재 재건된 제우스 신전 기둥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신에게 헌정되었던 제우스 신전은

신들의 숲 알티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정면으로 6개의 기둥과 양옆으로 13개의 기둥을 가진 구조. 

기원전 470년경부터 기원전 457년경 사이에 건설되었다.

신전 내부에는 아테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품인

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제우스 상이 있었다.

기원후 426년, 로마(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올림피아 성지 파괴 명령이 있었고,

이후 6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제우스 신전을 장식했던 많은 조각들은

현재 올림피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우스 신전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제우스 신상

금과 상아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상을 조각한

페이디아스(피디아스)에 의해 조각되었다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인 BC 2세기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제우스 조각상~

그것이 안치된 장소였던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신전 주위로 줄을 쳐 놓아서 못 올라가고...



올리브관, 월계관 이야기

올림피아 제전 당시에 우승자에게

신전 뒤의 올리브 나무 잎 달린 가지를 잘라

올리브관을 만들어 씌워 줬다고 한다.

시 낭송 분야에서 우승한 자에게는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 주었고...

로마의 네로 황제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다네.

제 211회 AD 67년 대회 때 시 낭송에 참가하여 우승,

로마에서 성대한 개선 행사를 치르지만

AD 68년에 반란이 일어나며 자살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월계관은 시인이나 영웅들에게 영광의 상징이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후로도 확산이 되었다 한다.

영국 왕실 영국 가장예로운 시인에게 내리는 칭호인 계관시인은

고대 그리스에서 훌륭한 시인이나 영웅에게

월계관 씌워 주었던 유래했다고 한다.


제우스 신전을 나와 헤라 신전쪽으로 이동한다.


헤라 신전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모신 신전


헤라 신전(헤라이온)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인 헤라 여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알티스 성역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올림피아의 가장 오래된 신전,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경배받는 신전 중 하나.

기원전 59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지진으로 파괴되어 일부 유적만 남아 있다.

초창기 도리아(도리스) 양식 신전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페립테로스식 신전.

제우스 신이 인간 세상의 질서와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다면

헤라 여신은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신전 지붕 마루에는 대개 승리를 상징하는 아크로터를 설치하는데,

 헤라 신전에는 원형의 조형물이 얹혀졌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당시에 첫 성화 봉송 채화 장소가 된 후

모든 올림픽 성화가 이곳에서 채화되고 있다.


*페립테로스: 대 그리스 신전의 건축 양식으로

한 줄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조.


헤라 신전 앞 제단 성화 채화의 모습

헤라 신전 앞 제단은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당시

첫 성화 봉송을 진행하면서 채화 장소의 역할을 하였고,

이후 모든 올림픽 성화는 이곳에서 채화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도 이곳에서 채화되어

우리나라로 봉송되었다.


헤라 신전과 신전 앞 성화 채화 장소

관광객이 성화 채화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은 안 된다기에 그냥 서서...


현지에서 유적지를 살피는 분이 주신 올리브 가지를 두르고...

오른쪽 언덕에 보이는 곳은 님파이움.



헤라 신전 이모저모


필리페이온(Philippeion)

2005년, 독일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일부 복구되었다.

건축물 중 일부는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돌려받은 것도 있다.

이 사업은 A.G. Leventis 재단의 큰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


필리페이온(Philippeion)

필리포스 2세를 기리기 위한 건축물로

신들의 성역에 들어선 인간을 기리는 건축물.

기둥은 우아한 이오니아식 구조를 보인다.

원래 18개의 기둥을 가진 둥근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온전한 기둥 3개가 남아있다.

헤라 신전 바로 옆 서쪽에 위치.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패하고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에 대한 지배권을 다진다.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한 후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필리페이온

이 앞에서 경기 우승자에게 올리브관을 씌워주는 식을 했단다.



필리페이온 옆에서 바라본 모습

필리리페이온과 뒤로 보이는 헤라 신전


행정관리동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

BC 5세기 모습 모형.

필리페이온 바로 옆에 위치.


행정 관리동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


헤라 신전님파이움(님파이온)


님파이움(Nymphaeum, 님파이온 nymphaion)


님파이움(님파이온) 유적지와 유물 안내

AD 2세기 건축

기념 분수는 헤로데스 아티쿠스에 의해 헌정되었다.

반원형의 벽감 구조, 2층으로 이루어졌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그들의 가족,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가족 상들이 세워졌다.

모두 22개의 상이 안치되었다.

이 조각상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남아있는 일부만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위쪽 수조의 대리석 방죽 중앙에 설치되었던 대리석 황소조각이 남아있다.



님파이움(님파이온)

반원형의 건물 기단과 기념물의 기단만 남아있다.


님파이움(Nymphaeum, 님파이온 nymphaion)

그리스의 대부호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봉헌한 기념물로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아름다운 급수시설.

엘리스 사람들은 이 급수대에 님프(물의 요정)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했다.  

님파이온에는 조각상이 안치된 반원형의 화려한 건축물이 들어섰고, 

두 개의 계단식 수조와 수십 개의 급수구가 있었으며,

위쪽 수조 입구에는 대리석 황소 조각상이 있었다.

이 황소 조각상은 올림피아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거금을 희사하여

리스 여러 곳에 그리스 유적을 복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신축하여 봉헌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조성된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신축,

 델포이 스타디온의 관중석 시설 등이 그의 기부로 이루어졌다. 


헤라 신전님파이움 앞쪽의 다양한 토기가 나온 곳 안내.

기원전 건물터 유적(BC 2150-2000)이다.


님파이움(님파이온) 터와 오른쪽으로 계단 위 각국이 봉헌한 보물창고들 터


메트룬(Metroon)

기원전 4세기.

정면에 6개의 기둥, 측면에 11개의 기둥을 가진 구조로

도리아식 신전(10.62*20.27m).

레아(Rhea) 혹은 키벨레(Kybele)라는 대모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스타디온으로 들어가는 왼쪽으로 각국에서 봉헌한 보물창고들 앞쪽에 있었다.


대모신전 메트룬(Metroon)


보물창고와 제우스 청동상이 놓인 자네스의 기단

메트룬 뒤 계단 위로는 각국의 보물창고들이 줄지어 있었고,

메트룬을 지나 스타디온으로 가는 길에는 제우스 신상이 놓여 었었다.


자네스의 기단(Bases of Zanes)

BC 4-1세기 추정

스타디온으로 입장하는 문 앞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다.

선수들의 페어플레이를 강조하고 부정 행위를 징벌하는 차원에서

부정 선수들에게 제우스 청동상을 세우도록 했단다.

올림피아 제전 동안 16개가 세워졌다 한다.

모든 선수들에게 경고하는 의미.


자네스의 기단(사진 왼쪽)

기단만 남아있다.

안쪽으로 스타디온으로 통하는 통로(크립트)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에코스토아와 그 앞쪽으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 기념물이 있었단다.


에코 스토아


에코 스토아(Echo Stoa )

스타디온 서쪽 스탠드 바로 뒤에 있던 긴 회랑식 건물.
관중의 함성 소리를 메아리치게 만든

특별한 기능의 건축물이란다.

경기장 출발선 서쪽 언덕 너머에서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소리치며 응원을 하면

그 소리가 벽에 부딪쳐 메아리치며 크게 울렸다고 한다.

그리스의 폴리스들 중 올림피아에만 에코 스토아를 갖추었다 한다.

에코 스토아 건물과 등을 맞대고 앞쪽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아르시노에의 기념물이 있었단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아르시노에의 기념물이 있던 자리


스타디움(Stadium, 스타디온 Stadion)

기원전 5세기 중반 모습.

스타디움은 출발선에서 도착선까지 192.27m,

폭 28.50m.

45,000명 수용.

스타디움 남쪽 가운데에 심판(헬라노디케, Hellanodikae)석을 두었다.

심판석 외에 돌로 된 의자(관중석)는 두지 않았다.

북쪽에는 데메테르 여신의 제단이 보인다.

후기 헬레니즘 시기에

스타디움 서쪽으로 크립트(크립테)라는 기념문을 세웠다.


신들의 영역에서 스타디온으로 가는 길...

가운데 통로가 크립트(크립테).

선수와 심판만이 이 통로를 통해 스타디온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곳은 에코 스토아가 이어지는 곳...


스타디온(스타디움)으로 가는 통로, 크립트(Crypt, Krypte)

알티스 성역과 스타디온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통로의 지붕 일부만 남아있다.


스타디온에 들어와서 알티스 성역 입구쪽을 바라보며...


올림피아 스타디온(스타디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장인 올림피아 스타디온이다.

앞쪽의 운동장 바닥에 깔린 대리석 선이 출발선이고,

안쪽으로도 대리석 선이 놓여 있다.

그 길이가 192.27m.

운동장 바깥으로는 얕은 언덕의 관람석이 둘러싸여 있다.

남북쪽의 가운데 왼쪽(북)에는 데메테르(땅의 어머니) 여신의 제단이 놓여 있고,

오른쪽(남)에는 심판(헬라노디케)이 앉는 자리가 놓여 있다.

당시에 헬라노디케는 올림피아 제전을 준비하고 집행했다고 한다.

이 고장 엘리스의 귀족들 가운데 12명이 엄선되었고

BC 348년부터 10명의 심판진으로 고정되었단다.



고대 올림픽( Ancient Olympic Games)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신을 기려

4년에 개최한 경기.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계속되었다.

경기에는 남자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으며,

모든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로 경기를 벌였다고 한다.

여자는 관전도 할 수 없었다는데,

어느 도시국가의 선수 어머니가 몰래 경기장에 입장했다가

들통나서 사형에 처해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미혼녀의 관전은 허락되기도 했단다.

 제우스 신에 대한 기념제와 감사제 올리기,

3일간에 걸쳐 경기 실시.

전체 기간은 5일간.

각 종목별 우승자에게는 올리브관 수여, 보상금.

우승자에 대한 큰 보상은

올림픽 경기에 대한 타락을 자초하였고,

고대 올림픽 후반에는 선수나 국왕까지도 뇌물과 반칙을 썼다 한다.

처음에는 단거리 달리기만 실시하다가

차츰 중거리 달리기와 장거리 달리기가 추가되었고,

복싱, 레슬링,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전차 경주 등이 추가되었다.

BC 431년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주최국인 엘리스의 정치적 중립이 흔들리면서

올림픽 조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AD 392년에 로마 제국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이교도의 신인 제우스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신들의 영역은 도외시되었고 올림픽 경기도 금지되었다.

그AD 392년의 제 293회 대회는

이듬해인 AD 393년에 열렸고,

고대 올림픽 마지막 대회가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신전 파괴령으로

고대 올림픽 경기장이 파괴되었으며

기록도 지워졌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고대 올림픽은

369년에 열린 287회 고대 올림픽이며

그 해의 우승자만 기록되어 있다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근대 올림픽을 제창함으로써

 올림픽이 부활하게 된다.


남쪽 언덕쪽

언덕 너머가 에코 스토아이다.

오른쪽 끝(서쪽)으로 보이는 곳이 입구 문.


대리석으로 된 출발선


고대 올림픽 스타디움

출발선에서 도착선까지 192.27m의 길이,

폭 28.5m의 다져진 흙바닥.

사방으로 비스듬한 언덕,

45,000명 수용.

물이 잘 흘러가게 스타디움 둘레에 수로를 두었다.

현재의 올림피아 스타디온은 BC 5세기 중반경의 형태.

오른쪽(남) 언덕 가운데가 심판(헬라노디케)석.

반대편에는 데메테르(땅의 어머니) 여신의 제단.

저 언덕 너머로 근거리에 쿠베르탱 남작 기념비가 있을 텐데,

거기까지 가 보지는 못 하겠네...

살짝 아쉬움......


올림피아 스타디온


제1회 올림피아 제전이 열린 BC 776년부터 제13회 제전까지는

 1스타디온(192.27m) 달리기 경주만 했단다.

고대 그리스에서 거리를 재는 단위인 스타디온(Stadion)은

도시국가마다 그 거리가 조금씩 달랐단다.

보통 185m 내외의 거리였다고 한다. 

이 거리(스타디온)를 달렸기에 경기 이름이 스타디온이라 불렸는데,

이후 운동장, 트랙, 관중석을 갖춘 경기장을 뜻하는

스타디움(Stadium)의 유래가 되었다.  


BC 724년 제14회 올림피아 제전 때부터

 1스타디온 거리를 왕복으로 달리는 디아울로스(diaulos) 경기가 열렸고,

그 이후 장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 등

5종 경기가 추가되었단다.

또 복싱과 4두 전차 경기가 추가되고,

BC 648년 제33회 경기부터는

경마와 판크라티온(Pankration, 격투기)이 추가되었단다.

전차 경기장은 스타디온에서 더 동쪽 저 너머에 있었을 것이란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올리브관을 써 보나~~~ ㅎㅎ...

나 여기 올림피아 스타디온에 왔노라~!!


그리스 올림피아 고대 올림픽 경기장(스타디온)에서...


인류 최초의 스포츠 제전이었던 올림피아 제전~

 1896년 쿠베르탱 남작의 주창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후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고대 올림픽의 자취가 화려하게 부활했네...  

이제는 신으로부터 인간에게로......


2019.1.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