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선거다. 누구를 지도자로 뽑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 만일 미국 대통령으로 부시가 아닌 고어가 당선됐다면 9. 11테러와 이라크 공격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까?

대통령, 국회의원, 반장 선거 등 모든 투표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게 ‘다수결’이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특히 후보가 난립했을 때는 다수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역설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슬아슬했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녹색당 랠프 네이더 후보는 플로리다 주에서 9만5천 표를 얻어 승부를 갈랐다. 대부분의 네이더 추종자들은 차순위로 부시보다는 고어를 지지했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에서 네이더가 고어의 표를 깎아 먹는 바람에 부시를 당선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역설적 결과가 나올 확률이 적고 투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결선투표제’ ‘보다산출법’ ‘찬성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투표 방식은 프랑스 혁명 직후 콩도세, 보다 등 수학자가 제안한 것이다.

똑같이 투표를 했는데도 어떤 표결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15명이 후보 3명을 놓고 반장 선거를 했다 치자. 6명은 똘이―순이―영희 순서로, 5명은 영희―순이―똘이, 4명은 순이―영희―똘이 순으로 꼽았다. 다수결로 하면 가장 많은 6명이 1순위로 꼽은 똘이가 반장이다. 하지만 결선투표를 하면 각각 6표와 5표를 얻은 똘이와 영희가 결선에서 맞붙게 된다. 1차 투표에서 순이를 1순위로 밀었던 4명은 결선 투표에서는 차순위로 지지한 영희를 밀기 때문에 영희 9표, 똘이 6표를 얻어 이번에는 영희가 결국 최종 승자가 된다.

이렇게 하지 않고 1순위에 2점, 2순위 1점, 3순위에 0점을 주는 보다산출법을 적용하면 어떨까? 똘이는 12점, 영희는 14점, 순이는 19점을 얻어 이번에는 순이가 1등이 된다. 이렇게 세 가지 투표 방법에 따라 반장이 되는 사람도 제각각 달라진다. 당신은 누가 진정한 반장이라고 생각하는가?

대개 수학자들은 순이가 진짜 민의를 반영한 반장이라고 믿는다. 순이는 가장 고르게 지지표를 얻었고, 특히 중요한 사실은 15명 가운데 순이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반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바로 순이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다수결로 뽑을 경우 순이는 가장 인기 없는 후보가 되게 된다. 이런 역설적 결과가 단순 투표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를 ‘콩도세의 역설’이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투표는 출마자가 3명일 경우다. 후보가 많아질수록 경우의 수가 많아져 계산은 복잡해진다. 캘리포니아 대학 수학자 도널드 사리 교수는 후보가 6명이라고 가정하고 이를 카오스 이론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순이’의 경우처럼 단순 다수결이 역설적 결과를 낳을 확률은 보다산출법에 비해 무려 1천50배나 높았다. 따라서 가장 좋은 투표법인 보다산출법은 가장 공정한 평가가 필요한 대학, 스포츠 팀 랭킹 평가나 수상자 선정 때 많이 쓰인다.

보다산출법만큼이나 좋은 투표 방식은 찬성투표제이다. 찬성투표제는 이미 13세기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에서 40명의 평의회 의원을 뽑는 데 쓰였다. 시민들은 의원 개개인에 대해 모두 찬성 또는 반대 표를 던졌다. 찬성투표제는 1987년부터 미국 과학기술계에 다시 도입됐다. 찬성투표제는 투표가 간단하고 한번에 선거를 끝낼 수 있어 전기전자공학회(IEEE), 미국수학회, 미국통계협회 회원 60만 명이 회장을 뽑을 때 쓴다.

유엔 사무총장도 찬성투표제로 뽑는다. 유엔 회원국은 사무총장 후보가 5명이 나오면 5명 모두에게 찬성표를 던질 수도 있고, 만일 한 명만 마음에 들면 한 명만 찍어도 된다. 그냥 보기에는 한 사람이 몇 명을 찍어도 좋은 찬성투표제가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매우 합리적인 제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러 사람이 마음에 드는데 한 명을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일 수 있다.

수학자들은 보다산출법이나 찬성투표제가 가장 좋은 투표 방식이라고 믿지만 보다산출법이나 찬성투표제는 검표 작업이 복잡하고 익숙하지가 않다. 하지만 향후 10년 뒤쯤 가정에서 직접 투표를 할 수 있는 온라인 투표가 도입될 경우 찬성투표제나 보다산출법을 쉽게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찬성투표제나 보다산출법을 바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차선책으로 결선투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 러시아 등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적어도 50%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순 다수결로 대통령이 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씨는 36∼42%의 낮은 득표율로 당선된 ‘절름발이 대통령’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특정 지역의 맹주가 돼 다수결로 이기기만 하면 국민의 절반 이상의 지지가 없이도 권좌에 오를 수 있는 다수결이 바람직한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몽준,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지난번 대선에서도 정몽준 후보와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다. 1차 투표와 결선 투표가 불가능하니까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로 후보를 단일화하고 투표 전날 지지를 철회하는 세계 초유의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결선투표제에서는 인물도 중요하지만 정당 간의 연대에 성공해야 대통령이 되므로 상대방 헐뜯기보다 정책 대결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연임제 도입에는 개헌이 필요하지만, 결선투표제 도입은 선거법만 바꾸면 된다. 다음 번 대통령은 결선투표제로 뽑자. 그리고 반장이나 단체의 대표를 뽑을 때 찬성투표제나 보다산출법으로 해보면 예전보다 훨씬 좋은 대표를 뽑았다는 생각이 금세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