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인간관과 사회 질서의 문제

 

홍 승 표

 

 

 

I. 문제 제기

II. 한비자의 인간관

III. 한비자의 사회 질서관

IV. 현대 사회학의 인간관과 사회 질서관

V. 논의

 

 

 

 

I. 문제 제기


  사회 질서의 문제는 사회학의 근본 과제의 하나이다. 사회 질서의 문제는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에 의해서 제기된 이후에,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과 탈코트 파아슨스(Talcott Parsons)를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들이 사회 질서의 기초를 밝히고자 하였다. 물론 사회학이 출현하기 이전에도 사회 질서의 문제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동양 사상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춘추 전국 시대의 다양한 사회 사상들은 사회 질서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춘추 전국 시대란 동주(東周) 시대의 시작인 B.C. 770년부터 진(秦)이 중국을 통일하는 B.C. 221년까지를 지칭한다. 이 시기는 역사의 급격한 변동기로 서주(西周)의 예(禮)에 바탕한 윤리적 질서가 붕괴되고, 전쟁이 격화된 혼란의 시대였다. 춘추 시대를 통해 전쟁이 일어난 횟수는 1,200회가 넘고, 춘추 초기의 100여 국이 춘추 말기에는 13개 국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가히 이 시대의 혼란상을 짐작할 수 있다(이춘식, 1986:101). 군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국력을 강화시켜야 했고, 국력 강화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민중을 보다 효율적으로 착취함으로써만 가능하였다(이성구, 1989:108). 따라서 농경지의 황폐화, 사상자의 속출, 빈번한 징발과 과다한 세금으로 민중의 생활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비자(韓非子 上, 八說:152)는 “옛날 사람은 도덕과 의리를 소중하게 여겨 이를 먼저 해야할 일이라 서둘렀지만 중세(中世)에 와서는 슬기와 꾀로서 서로 다투었고, 지금은 무력으로 힘을 견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윤리적 질서가 붕괴된 전국 말기의 시대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은, 이렇듯 혼란한 시대 상황에 직면하여, ‘어떻게 사회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고,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였다. 이렇듯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가들은 사회학의 중요한 관심사인 사회 질서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들이 제시한 해답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사회학자들의 설명과 비교될 수 있고, 사회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한비자(韓非子)의 사상 역시 이러한 각도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비자는 전국 말기의 사상가로 사회 혼란을 종식시키고, 민중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엄격한 법의 제정과 공정한 집행을 제시하였다.

 

  본고는, 첫째로, 한비자의 인간관을 살펴 보고, 인간관과의 연관에서 그의 사회 질서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이 사회 질서 형성 방안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둘째로, 현대 사회학자들의 이기적 인간관과 사회 질서관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한비자와 현대 사회학의 인간관과 사회 질서관을 비교하면서, 이들 논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II. 한비자의 인간관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하였다. 인간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을 최초로 체계화한 학자는 한비자의 스승이기도 한 순자(荀子)이다. 순자는 인간은 원래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감정을 타고나며, 이것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荀子, 榮辱:105). 인간의 욕심은 그칠 줄 모르는 것이다(荀子, 榮辱:108). 인간의 선천적 본성은 악이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荀子, 性惡:507). 그래서 이러한 악한 본성이 방치되었을 때에는, 서로 다투고 빼앗는 격심한 사회 혼란이 야기되어, 무법(無法) 사회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荀子, 性惡:507).

 

  한비자는 순자의 성악설을 계승하였으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변형시켰다. 한비자는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임금은 천하를 얻기를 바라고, 신하는 부귀를 구하며, 보통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도 생활이 넉넉하여 자기 한 몸의 편안함과 집안의 이익을 희구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을 순화시키는 방법으로 순자는 예를 내세웠음에 비해서, 한비자는 엄격한 법률의 제정과 집행을 주장함으로써,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심각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한비자의 인간에 대한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타고나는 성정을 관찰해 보면 어진 사람은 적고, 못된 사람이 많다1).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하고, 해로운 것을 회피하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모든 인간은 이익이 되는 일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며2), 형벌을 겁내고 포상을 바라며3), 귀한 것을 좋아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며4),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위태로운 것을 싫어하며5), 혼란을 좋아하고 그 법을 사랑하려 들지 않으며(韓非子 下, 心度:445), 노동을 싫어하고 나태하게 지내기를 좋아한다(韓非子 下, 心度:447). 사람들은 이로움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마치 들판에 노니는 사슴과 같아서, 사슴이 무성한 풀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 듯이, 상이 두터운 곳으로 모여 든다.6) “이로움이 있는 곳에는 민중들이 모여들게 마련이고, 이름을 빛낼 수 있는 일이라면 선비는 목숨을 건다”(韓非子 下, 外儲說左上:14). “뱀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배추벌레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놀라고, 배추벌레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고기잡이는 뱀장어를 만지고 부인들은 누에를 만진다. 이익이 있는 일에는 누구나 싫은 것을 잊고 모두가 맹분(孟賁)과 전저(專諸)처럼 용감해진다”(韓非子 上, 內儲說上: 476).

 

  한비자는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여서,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이기적 동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韓非子 下, 外儲說左上:37). 그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고자 하였다. 위(魏)나라 오기(吳起) 장군이 부하의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것은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건강을 회복한 부하가 전투에서 열심히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고(韓非子 下, 外儲說左上:12),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함이며(韓非子 上, 備內:205), 왕랑(王良)이 말을 아낀 것은 타고 달리기 위함이며(韓非子 上, 備內:205), 관(棺) 만드는 사람이 사람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것은 관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자 함이며, 수레 만드는 사람이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원함은 수레를 팔기 위함이며(韓非子 上, 備內:205), 주인이 머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많은 품삯과 용돈을 주는 것과 머슴이 힘을 내 열심히 김을 매고, 밭갈이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서로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쓰고자 함이라는 것이다(韓非子 下, 外儲說左上:37).

 

  이렇듯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사람들은 상대를 위해 일을 하게 되면 보답을 바라게 되고, 적절한 보답이 없으면 상대를 원망하게 된다(韓非子 下, 外儲說上:12). 이러한 관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자식간에도 해당된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 부모의 보살핌이 허술했다면 그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원망한다. 자식이 장성하여 성인이 된 후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는 화가 나 그 자식을 책망하게 된다. 자식과 부모 사이는 원래 가장 친밀한 관계인데도 혹은 책망하고 혹은 원망하게 되는 것은 서로가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 바램을 상대가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7)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을 믿을 수 없다. 한비자는 아내나 자식처럼 가까운 사이의 사람을 포함해서,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믿어서는 안된다고 하여, 인간에 대해서 철저히 불신해야함을 주장한다(韓非子 上, 14편 備內:204). 인간 관계를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 형성시키려해서는 안되며, 상대방의 이해(利害)에 호소해서, 자신이 상대방에 원하는 행동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 인간간에는 언제나 서로의 이해 관계가 반목하게 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간의 이해도 서로 다르고(韓非子 上, 五?:56), 공적인 이익과 사적인 이익도 일치하지 않으며(韓非子 上, 五?:56), 임금과 신하의 이해 관계도 언제나 상반되게 된다(韓非子 上, 八經:167). 이렇듯 각자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모두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며, “자기의 몸을 해쳐가면서까지 나라를 위하는 신하는 없으며, 나라를 해치면서까지 신하의 이익을 꾀하는 일을 임금은 하지 않는다. 신하의 일반적인 性情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면 이로움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임금의 일반적인 성정은 나라를 헤치게 되면 친근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긴다. 임금과 신하는 이렇듯 서로의 이익을 헤아리는 관계를 맺게되는 것이다.”8) 그러므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진실한 충신이란 없으며(韓非子 上, 29편, 內儲說下:491), 신하들은 임금의 위세에 얽매여 부득이 섬기고 있을 뿐이다(韓非子 上, 14편, 備內:203).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결코 신뢰나 사랑의 바탕 위에서 관계를 맺고자 하지 않으며, 마치 까마귀를 길들이는 방법과 같이 상대편을 길들이고자 하는 것이다(韓非子 下, 32편, 外儲說右上:107).

 

  한비자는 또한 의로움을 따르기 보다는,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였다(韓非子 上, 五?:49). 사람들은 사랑으로 대했을 때에는 쉽게 교만?방종하고, 위세로 대했을 때에는 순종한다(韓非子 上, 五?:51). 이것은 어짊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고, 의로움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韓非子 上, 五?:49). 그러므로 권력만 있으면 사람들을 복종시키기란 쉬운 일이며(韓非子 上, 五?:49), 사랑이나 의로움에 호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III. 한비자의 사회 질서관


  상술하였듯이 한비자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기적 본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어떻게 사회 질서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한비자와 현대 사회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문이다. 인간이 각자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한다면, 사회에는 상호 반목과 다툼이 팽배하게 될 것이고, 극단적인 무질서 상태에 빠져들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적절히 통제해서, 그들로 하여금 규범 동조적으로 행위하게끔 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이 뒤따르게 된다. 여기에 대한 한비자의 대답은 인간이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좋아하고, 손해가 되는 일을 싫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악한 본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익과 손해에 호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규범 동조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상을 주어서 그러한 행위를 수행함이 자신에게 이익이 됨을 분명히 하여 이러한 유형의 행위를 촉발시키고, 규범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벌을 줌으로써 그러한 행위가 자신에게 손해가 됨을 분명히 하여 이러한 유형의 행위를 회피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은 규범 동조적 행위를 하게되고 사회에는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질서 수립에 대한 이와같은 한비자의 전략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주창자인 스키너(B. F. Skinner)의 인간 행동의 수정을 위한 방안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한비자는 “옛날에는 인의(仁義)가 소용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9)고 하면서, 전국 시대말의 극심한 사회 혼란기에 직면해서, 인의에 바탕한 사회 질서의 수립이란 공허하며, 비현실적인 구호일 뿐이고, 오로지 권력에 바탕해서만 사회 질서 수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방임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사악한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게 되어, 각자 사사로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韓非子 上, 姦劫弑臣:237),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인들의 욕망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권력이란 이런 의미에서 사회 질서의 기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권력은 질서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하면, 혼란의 원천도 될 수 있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권세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편리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데도 쓰일 수 있다.”10) “무릇 권세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은 이를 이용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진 사람이 이를 사용하면 세상은 곧 다스려지고, 못된 사람이 이를 사용하면 세상은 곧 어지러워지는 것이다.”11)

 

  그러므로 한비자는 사회 질서가 수립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하여 법을 제정하고, 법에 따른 상벌을 공정히 시행하여야만한다고 주장하였다.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도덕심에 호소하여서는 사회 질서가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짊이나 포악은 다같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12)고 하여, 권력자의 포악함 뿐만 아니라 어짊도 사회 혼란을 불러 온다고 하였다. 특히 군주의 어짊(仁)은 유가 사상가들이 사회의 도덕적 질서 형성의 근원으로 파악한 것인데, 한비자는 이를 오히려 혼란의 원천으로 파악한 점이 특이하다. “어진 사람이 임금 자리에 있으면 신하들이 제멋대로 금령과 법률을 쉽사리 범하게 되고, 구차하게 요행만을 임금에게 바라게 되므로,”13)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규범에 따른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나 도덕심에 호소해서는 안되며, 형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민중이 법률에 따라 못하게 금할 뿐, 염치심에 호소하여 못하도록 하지는 않는다”14)고 하였으며, 또한 “위세로 난폭한 것을 다스릴 수 있으나 후덕한 은정으로서는 혼란을 막을 수가 없다”15)고 하였다. 심지어 개인이 갖고 있는 나쁜 버릇이나 습관을 고치는데 있어서 조차도, 부모?스승?마을 어른들의 훈화나 꾸중보다는, 그런 버릇을 가진 사람을 색출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韓非子 上, 五?:51).

 

  사악한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데 있어서, 한비자는 법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법은 “임금의 과오를 바로잡아 주고, 백성들의 악함을 꾸짖어 주며,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그릇됨을 결단해 주며, 지나침을 견제하고, 옳지 못함을 가즈런히 해 준다. 백성들을 통일하는 방법으로는 법보다 좋은 게 없다.”16) 또한 사람들의 행동을 바로 잡는데 있어서 법에 따른 처벌이 가장 효과적이다. “관리들을 엄히 단속하고, 백성들을 위압하며, 지나친 행동과 위태로운 행동을 물리치고, 사기치고 속이는 일을 멎게 하는 데에는 형벌보다 좋은 게 없다.”17)

 

  한비자에 따르면, 사회 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행위에 관한 규범이 무엇인지를 행위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인식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의 제정과 공포이다. 일단 이러한 작업이 완수되고 나면,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해서, 법에 따른 상벌의 시행을 엄격하게 함으로써, 사회는 질서를 이루고 부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이론에서 상벌은 규범적 행위를 이끌어내는 유력한 도구인데, 상벌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그의 인간관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비자는 인간은 이기적 존재여서,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구하고, 해로운 것을 회피한다고 보았다. 그러하기에 인간으로 하여금 규범 동조적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즉, 규범에 따르는 행위에는 상을 주어서 그러한 행위의 수행이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고, 규범을 어기는 행위에는 벌을 주어서 그러한 행위의 수행이 당사자에게 해가 되도록 함으로써, 인간은 규범에 따르는 행위를 하게 되고, 사회는 질서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다음 두 구절을 통해서 이러한 견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무릇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반드시 사람의 성정을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성정에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두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두 마음을 이용해 상과 벌을 쓸 수 있다.”18) “밝은 임금이 신하를 인도하고 통제하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을 따름이다. 두가지 방법이란 형벌과 은덕을 말한다. 형벌과 은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형벌이라 하고, 상을 주는 것을 은덕이라 한다.”19)

 

  상벌의 시행이 질서 확립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상벌 시행의 원칙이 있음을 한비자는 강조한다. 상벌 시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법에 따른 공평한 집행이다. 법을 무시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의거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중용하거나, 청탁에 따라서 사람을 등용한다거나, 친족을 등용하거나, 공적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거나, 개인적 감정으로 공로가 있어도 상을 주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상벌을 시행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법령을 마련하는 것은 사사로움을 폐하기 위한 것이다. 법령이 잘 시행되면 사사로운 방법은 적용되지 않고 폐지된다. 사사로움은 법령을 어지럽히는 까닭이 된다.”20) 상벌 시행의 또다른 원칙으로 한비자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상은 후하게 줄수록 효과적이며, 벌은 엄격할수록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상은 후하고 확실하게 주어서 민중으로 하여금 이롭게 여겨 신실을 추구하게 하고, 형벌은 무겁고 엄하게 하여 민중들로 하여금 법을 두렵게 여기게 함이 가장 좋다.”21) “상을 후하게 주면 바라던 일을 쉽게 이룰 수 있고, 벌을 무겁게 내리면 싫어하는 일이 갑자기 그치게 된다.”22)

 

 


IV. 현대 사회학의 이기적 인간관과 사회 질서관


  한비자와 현대 사회학의 인간관과 사회 질서관은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인간관의 측면에서 볼 때, 한비자와 많은 현대 사회학 이론가들은 인간을 이기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이기적 인간관에 대한 공유는 사회 질서 형성 방안에 대해서 유사한 견해를 갖게 되는 바탕이 되는데, 한비자와 현대 사회학 이론가들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성공적으로 억압하였을 때, 사회 질서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현대 사회학의 이기적 인간관과 사회 질서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대 사회학의 이기적 인간관


  홉스 이래 이기적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은 근대 서구의 대표적 인간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현대 사회학에 있어서도 많은 이론가들이 이러한 인간관을 공유하고 있다. 홉스는 인간이란 부, 명예, 권력, 쾌락을 포함하여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이기적 인간관을 제시하였다(Hobbes, 1994:58-59). 인간이란 이렇듯 이기적 본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 방임의 상태에서는, 서로의 이기적 욕망 충족이 상반하게 되고, 충돌하는 가운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고전적 사회학자인 뒤르케임도 인간이 사회나 사회가 형성한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각 개인에게는 자신의 이익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며, 각자는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행동하게 된다고 보았다(Durkheim, 1976:167). 뒤르케임에게 있어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욕구 충족이 없이는 만족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동물의 욕구가 생명 활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제한된 것임에 비하여,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욕구는 한계점이 없는 무한한 것이란 차이점이 있다(Durkheim, 1976:207). 그러므로 욕망의 고삐가 풀리게 되면, 인간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욕망을 가질 것이며, 충족은 욕구를 충만하게 해주는 대신 새로운 욕구를 자극할 뿐이다”(Durkheim, 1976:208).

 

  현대 사회학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사회학 이론가들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파아슨스는 홉스의 인간관을 부분적으로 수용해서, 인간은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Gouldner, 1971:241; 한완상, 1986:36).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인간은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안정되고 행복한 형태의 교호 작용을 이룩하지는 못할 것으로 믿고 있다”(Johnson, 1978:21).

 

  랄프 다아렌도르프(Ralf Dahrendorf)가 가정하고 있는 인간 역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지배 집단의 성원은 기존의 지배 질서의 유지와 강화라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피지배 집단의 성원은 기존 질서의 변화라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Dahrendorf, 1959:237-240). 다아렌도르프와 파아슨스의 사회학 이론은 상반된 측면이 많지만, 이기적 인간 본성에 대한 양자의 가정은 유사하다.

 

  조오지 호만스(George Homans)의 교환 이론에 나타나는 인간도 본래부터 이기적이며, 쾌락적이고,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Duke, 1979:247). 호만스는 인간을 욕망을 갖고 있는 독자적인 개체로 인식한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며, 행위를 통해서 가장 큰 보상과 가장 적은 처벌의 선택지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호만스의 인간관은 한비자의 인간관과 유사한 점이 많다.

 


  2. 현대 사회학의 사회 질서관


  이렇듯 많은 사회학자들이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가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간관의 바탕 위에서 이들은 사회 질서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였을까? 이들의 대답의 공통점은 인간의 이러한 이기적 본성을 성공적으로 통제하였을 때, 질서가 수립되게 된다는 것이다. 통제의 방법에 대해서 각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안은 다르지만, 근본적인 발상은 유사한 것이다. 사회 질서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던 뒤르케임과 파아슨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뒤르케임은 인간의 욕망의 특성은 적절한 통제 장치가 없으면, 무제한으로 확장된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무한한 욕망이란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이 폭발하였을 때, 개인적인 고통과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되어야지만 사회 질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뒤르케임(1976:209)은 “욕망이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욕망은 능력과 조화를 이루며 만족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욕망을 제한할 수 없으므로,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욕구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에 대해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정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 ‘합법적인 것인지 부적절한 희망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한계를 그어주어야 하며, 이렇게 개인의 열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제약하였을 때, 비로서 개인의 차원에서는 생활의 안정과 만족이 있을 수 있고, 사회의 차원에서는 질서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Durkheim, 1976:213). 그리고 이러한 외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통제의 수단으로 종교를 제시하였다. 그는 종교는 인간에게 자제를 가르치는 최선의 학교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종교는 빈곤의 장점과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절제의 훈련을 하게하고, 집합적인 규율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는, 그럼으로써 사회 질서를 가져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Durkheim, 1976:214).

 

  사회 질서의 문제는 파아슨스의 사회학 이론에 있어서도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대한 통제를 통해서, 인간이 규범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을 때, 사회 질서는 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통제하는 주된 수단으로 그는 사회화를 제시하였다. 사회화란 사회 체계의 지위-역할을 포함하여, 문화 유형의 언어, 가치 등을 행위자의 인성에 내면화시키는 과정이다. 파아슨스는 학습의 다섯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강화-소거(reinforcement-extinction), 금지(inhibition), 대체(substitution), 모방(imitation), 동일시(identification)를 제시하였다(Parsons, 1951:209). 특히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아서, 부모나 교사에 대한 동일시의 과정을 통한 가치, 규범의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회화 과정을 거친 인간은 규범 동조적으로 행위하게 되며, 이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회 통제의 기제를 제시하였다. 사회 통제란 “역할 기대의 충족을 어기는 경향에 대해서 행위자들이 맞대응을 하도록 동기화하는 과정”(Parsons, 1951:206)으로, 사회 통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대인적 제재와 몸짓(interpersonal sanctions and gestures), 의례 활동(ritual activities), 안전판 구조(safty-valve structures), 재통합 구조(reintegration structures), 강압과 힘의 사용의 제도화 등을 말하였다(Turner, 1986:68).

 

 


IV. 논의


  뒤르케임이나 파아슨스의 인간관과 사회 질서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비자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즉, 이들은 ‘사악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어떻게 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대한 적절히 통제를 통해서 사회 질서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통제의 주된 방법으로 한비자는 법에 따른 형벌의 강력한 집행을, 뒤르케임은 종교의 교화적 힘을, 파아슨스는 부모의 양육을 포함한 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파아슨스나 뒤르케임의 사회 질서 형성의 방안은 외면적인 측면에서, 공자와 맹자를 포함한 유가들이 교육을 사회 질서 형성의 방안으로 제시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파아슨스나 뒤르케임의 교육과 공자나 맹자의 교육은 근본적인 목적에서 다른 의미를 갖는다. 파아슨스나 뒤르케임의 교육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억압하기 위한 외적 힘으로써의 의미를 갖는 반면에, 공자나 맹자의 교육은 인간 내면의 어진 본성을 해방시키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인 것이다. 동일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사회 질서를 이루는 중요한 기제로서 순자와 맹자가 예(禮)를 강조하고 있는 유사성과 예의 근본적 목적의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파아슨스?뒤르케임과 공자?맹자가 사회 질서 유지의 방안으로 제시한 교육은 외형상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작용을 하는 것이며, 파아슨스?뒤르케임의 교육은 한비자의 법에 따른 형벌과 그 목적에 있어서 유사점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한비자와 파아슨스?뒤르케임의 사회 질서에 대한 이론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데, 이러한 유사점이 나타나는 근본적 요인은 이들이 이기적 인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들의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는 파아슨스나 뒤르케임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산업 사회의 인간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고, 한비자의 경우는 전국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이기적 인간관 형성의 시대적 배경은 상이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신의 시대 상황 속에서 관찰되는 지배적 인간 유형을 인간 본성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들의 이러한 인간관은 대부분의 사회학 이론들이 빠져 있는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현상으로 드러난 인간을 인간 본성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사회학 이론의 발전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러한 혼동은 논리적인 이유에서 인간 소외에 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며, 비판적 현실 인식을 어렵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현실의 인간 소외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관찰되는 인간의 비인간화에 대한 논의는 비인간화되지 않은 정상적 인간에 대한 가정을 전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관찰되는 인간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간주할 경우에, 이러한 인간의 비인간화에 대한 논의와 소외 극복의 방안에 대한 논의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게 되며, 현실에 대한 일차원적 기술만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불가능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현실의 인간 소외를 방조하게 되고, 강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은 사회 질서에 대한 논의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을 때, 사회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비자?뒤르케임?파아슨스가 그러하였듯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성공적으로 억압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가정하였을 때, 현실의 지배적 인간 유형으로서의 이기적 인간은 원래적이며,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부정의한 사회 제도 등의 영향으로 원래의 모습이 파괴된 결과로서의 현상적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경우에, 사회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회복을 위한 조치, 즉 사회 제도를 개혁하여 바로 잡고, 인간의 선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교육 활동 등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선설의 입장에서 사회 질서의 문제를 논의한 대표적 학자는 맹자이다. 무질서의 문제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맹자는 힘에 의한 사회 질서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즉, 힘에 의한 질서의 상태란, 사람들이 진심으로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불안정함하다는 것이다(孟子 公孫丑上篇). 법과 금령에 의한 정치는 백성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에 바탕해서 질서를 찾고, 도덕 정치는 백성들의 기꺼워하는 마음에 질서의 기초를 두기 때문에, 후자가 보다 근본적이며, 우월한 질서유지의 방법이라는 것이다(孟子 盡心上篇). 즉 사람들이 선에 흥기하게 되면, 비도덕적 행위는 자연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孟子 盡心下篇). 선성설을 주장했던 맹자는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인의예지의 본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사회에 규범적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며, 그러했을 경우 인간은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하게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반된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은, 사회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야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상반된 방안이 나타나게됨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 작업이 없이, 현상의 인간을 인간 본성으로 쉽게 간주하고서 사회학적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방관하고, 악화시킬 개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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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목련꽃이 질 때  |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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