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 6장 -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장태원의 노자 이야기(8)

(原文)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토(吐) 달아 읽기
1) 谷神不死(곡신불사)하나니, 是謂玄牝(시위현빈)하고, 玄牝之門(현빈지문)을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이니라.
綿綿若存(면면약존)하나 用之不勤(용지불근)이로다.

谷=골 곡, 골짜기 곡.
牝=암컷 빈, 골짜기 빈.
綿綿=솜 면, 잇다, 이을 면, 끊어지지 않을 면, 잘 면, 감길 면, 얽힐 면=끊어지지 아니하고 죽 잇달아 있음(면면히).
若=같을 약.
存=있을 존. 道를 谷神으로 비유 함. 골짜기는 비어 있어서 만물과 물이 모여든다.
勤=부지런할 근. 盡(다할 진)과 같은 뜻으로 해석함.
不勤=다함이 없다, 게으르다.

1)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현묘(玄妙)한 암컷이라고 하고,
현묘한 암컷의 문을 일러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면면이 겨우 겨우 이어지는 것 같으나 쓰는 데는 힘겹지 않다(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 앞장에서 도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비어 있음(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이용지혹불영), 연못(湛兮似 담혜사), 풀무(橐籥 탁약) 등으로 설명했다. 이 장에서는 비어 있으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고 생명 활동이 왕성한 골짜기를 비유로 들고 있다(谷神不死).

곡신이라는 것은 골짜기 가운데의 빈 곳을 말한다. 그 비어 있는 곳은 모든 것이 모여들게 마련이고 거스르지 않고 낮은 곳에 처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수용하고 옹위(擁衛)하는 곳이다. 그 곳에는 생명 활동이 왕성할 수밖에 없다. 生殖不息(생식불식) 즉 아늑한 골짜기에서는 생산 활동이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니 이런 생명 활동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는 곳을 곡신이라고 하고 나아가 그 현묘(玄妙)함을 일러 현빈(玄牝)이라고 했다. 문(門)이라는 것은 그 현빈(玄牝)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 그것의 근본은 공(空)이나 태극(太極)이고 도(道)를 말함이니 천지의 뿌리가 된다. 면면히 겨우겨우 이어져 오는 것 같아 보이는데 쓰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곡(谷)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산이 연결되는 가장 낮은 골짜기 물이 흐르는 곳 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으나, 왕필(王弼)은 곡(谷)에 대해서 솟아오른 두 산 사이에 이루어지는 공간“곡신(谷神)=곡중앙(谷中央)=무자야(無者也)”라고 해서 무(無)라고 덧붙이면서 물이 흐르는 아주 낮은 곳과 그 위의 산과 산 사이의 기(氣)가 모이는 공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골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비어 있으므로) 모든 것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모여들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되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생명체들이 그 속에서 쉼 없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변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변화불측(變化不測) 미묘해 알 길이 없어 곡식(谷神)이라고 하고, 그곳은 생명이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이어서 왕성한 생명 황동이 이루어지므로 이를 현빈(玄牝)이라고 했다.

부연(敷衍)하면 등성이나 평지보다 골짜기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생명 활동을 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골짜기는 산으로 싸여 있어서 아주 연약한 생명체도 살아가기 좋게 되어 있다. 그곳은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잘 되어 있다. 그 안에는 다양하고 순환적인 먹이 사슬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곳의신은 죽지 않는다고 했고, 그것의 생산적 역할을 현빈(玄牝)이라고 한다.

현빈(玄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검은 암컷이 되는데, 암컷이면 암컷이지 왜 검은 암컷이라고 했느냐? 1장의 현지우현(玄之又玄), 중묘지문(衆妙之門, 가물하고 또 가물해서 모든 신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처럼 모든 만물을 수용해서 그 안에서 신묘한 활동이 일어나는 문으로, 특히 생명을 품어서 생산해 내는 문으로 해석해서 모성으로 또는 여성의 생식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굳이 생식기까지 갈 것은 없고, 노자에서 현(玄)이나, 묘(妙) 같은 말은 너무 신묘해서 표현이 안 되고 파악 안 되는 경우에 쓰므로 그냥 암컷으로 표현하면 충분할 것이다.

현빈지문(玄牝之門)을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이라. 신령한 암컷으로부터 만물이 생산되니 천지의 뿌리라고 하고, 그 활동은 눈에 확연하게 보이거나 감지할 수 없어서(면면약존(綿綿若存)) 면면히 겨우 이어져 오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용지불근(用之不勤)) 아무리 써도 고단한 줄 모르고 궁진함이 없다는 말이다(면면히 이어져 오고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하다).

도(道)를 신이 죽지않는 계곡에 비유하면서 그 공용(功用)의 신비스러움을 현빈(玄牝)이라고 했으니 현빈(玄牝)은 도(道)의 다른 이름이고 도(道)의 공용성(功用性), 수동적인 신비스러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나서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받아들이고, 만물을 받아들여서 변화 생성시키고 만물을 내어놓을 뿐 작위하지 않는 모습이다. 골짜기는 텅 비어 있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끊임없는 생명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겨우 명맥만을 이어오는 것 같지만 아무리 써도 궁진함이 없는 것이다. 1장의 중묘지문(衆妙之門)같이 거기서 나왔다가 거기로 돌아가는 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곡신(谷神), 불사(不死)=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나 '곡(谷), 신불사(神不死)=계곡에서는 신이 죽지 않는다'로 읽는 차이는 다른 것 같으나 크게 보면 같다고 본다.

이 장에서는 골짜기의 비어 있음으로서의 효용성과 포용성, 모든 것을 수용함으로써  활발한 관계 속에서 생명활동이 왕성해 지는 곳으로서 계곡을 비유로 도(道)를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심당(閒心堂)

 

장태원(울산환경운동연합 의장) / 2009-02-27 오후 3:59:49
 

 

출처 : 無何有之鄕  |  글쓴이 : hus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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