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도요타… 300만대 과잉생산에 '휘청'

올해 6월 도요타 창업가문 출신으로는 14년 만에 최고경영자(CEO)인 사장직을 맡은 도요다 아키오. 그는 이달 2일 "엔고(엔화 가치 상승) 상황의 지속으로 감익(減益) 요인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판매가 회복되더라도 흑자 반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로이터

고전하는 자동차 거인
1000만대로 설비 늘렸지만… 엔高·경제위기로 '직격탄'
하이브리드車 수익성 낮아…
보유 현금 48조원 달하고 친환경車 기술 경쟁社 압도
위기 극복땐 더 강해질 수도…

"도요타는 지금 구세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이달 2일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은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가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Collins)의 저서 '최강기업은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the Mighty fall)'의 '기업 몰락 5단계'를 거론했다. 도요타는 1단계 '성공 체험에 따른 자신감 과잉', 2단계 '규율이 따르지 않는 확장', 3단계 '리스크 무시'를 거쳐 4단계 '외부로부터의 구원에 매달림(grasping for salvation)'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5단계인 '기업 존재 가치의 소멸' 직전에 놓인 게 도요타라는 충격적 발언이었다.

1년 전 미국발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위기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올 4분기만 10억달러(약 1조1600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판매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최소 2~3년은 힘든 회복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00만대 설비 확충이 '독(毒)'


도요타의 고전 이유는 엔화 가치가 치솟는(엔고) 상황과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생산능력을 1000만대까지 확장한 게 최대 주범이다. 때문에 투자비도 뽑지 못한 새 공장들이 줄줄이 놀면서, 고정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2006년 영업이익만 29조원에 달했던 도요타는 지난해 5조7000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도 최소 작년 수준의 적자를 예상한다.

문제는 올 연말부터 판매가 일부 늘어나더라도 과잉 생산과 엔고라는 '2가지 고통'이 도요타를 여전히 괴롭힌다는 것. 특히 과잉 생산은 치명적이다. 도요타의 올해 생산목표는 650만대. 현재 1000만대까지 늘린 생산능력을 700만대의 '적정수준'으로 조정해 나가는 중이다. 따라서 연산(年産) 30만대짜리 공장 10개를 그냥 놀리고 있는 셈이다.

일본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생산능력 과잉으로만 연간 15조~20조원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엔고 상황도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도요타의 회복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하이브리드 거품'… 내수·해외 양쪽 모두 '돈 버는 차종' 없다

일본 내수시장 수익구조가 무너졌다는 점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 도요타가 지난 10년간 주력해 온 하이브리드카(모터와 엔진을 함께 움직여 연료를 아끼는 차) 전략이 최근 상황에서 돈을 못 벌어 주는 것은 물론, 자사의 고급차 판매까지 잠식해 수익성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요타는 미국에서도 대당 마진이 높은 SUV·픽업트럭·고급세단 판매가 급감, 국내외 시장 양쪽에서 수익성 하락을 겪고 있다.

한국·일본 시장을 비교해 보면 현대·기아차보다 도요타의 수익구조가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현대·기아차는 내수 80%를 점유하며 올해 1~9월 80만대를 팔았다. 도요타의 일본 내수 점유율은 고급차 렉서스를 포함해도 30%에 불과하다. 판매대수는 96만대 수준. 일본이 한국보다 2~3배 큰 시장인데도, 판매규모는 별 차이가 없다.

특히 차종별 수익성은 도요타가 크게 떨어진다. 현대·기아차는 쏘나타·그랜저·싼타페처럼 마진이 높은 중대형 세단이나 SUV가 월 5000~1만5000대씩 팔리지만, 도요타는 마진이 적은 하이브리드카나 소형차만 수만대씩 팔릴 뿐, 고급세단은 월 1000대 팔기도 어렵다.

◆'미쓰비시 실패'의 반복인가?… 위기 극복 땐 더 강한 회사로 거듭날 듯

도요타가 1996년 미국공장 성희롱 사건, 2000년 자동차 결함 은폐 사건으로 도산 직전까지 갔던 미쓰비시의 사례를 닮아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도요타도 2006년 북미 도요타 사장이 성추행 혐의로 비서에게 고소를 당해 직위해제당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미국에서 자사 차량의 지붕 강도 부족에 따른 사고위험성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 사상 최대 리콜을 실시한 데 이어, 미국에서 실시한 380만대 대량 리콜 역시 사전 은폐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미쓰비시 사태를 분석한 보고서들에 따르면, 사태를 낳은 주요 원인으로 품질보다 비용 절감만 우선시하면서 무리한 원가 절감을 강행한 점과 신차 개발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품질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을 배척한 조직 풍토 등을 꼽고 있다. 1980~90년대 성공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기술력만으로 품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점도 지적된다.

현재 도요타도 과도한 원가 절감에 나서면서 최근 중국·미국·일본 등에서 대량 리콜(recall·결함있는 제품을 무상 수리해 주는 것)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또 와타나베 전임 사장이 직접 나서 '대기업병'을 지적했을 만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조직에 만연해 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그러나 도요타가 이번 위기를 극복해낸다면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 사내 유보금만 3조엔(48조원)에 달하는 데다 시스템 경영이 완비돼 있기 때문에 수년간 적자를 낸다 해도 근본적인 기업 체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친환경차 부문에서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도요타의 '위기 탈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요소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 2일 강연 말미(末尾)에서 "도요타의 구세주는 내가 아니라 지금부터 100년간 자동차를 만들어갈 젊은이들"이라며 "도요타의 미래를 좌우할 인재 육성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최원석 기자 w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