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르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를 앍고 있으면 사람의 상상력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미소를 가득담고 즐겨 읽는다.
꿈같은 상상을 요즈음은 거의 안하지만 가끔은 나도 베르르처럼 꿈을 꾼다, 내꿈의 실채는 주로 두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생활패턴도 다른 두 아들은 서로 만나지 않고 남처럼 지낸다. 그것이 얼마나 엄마의 가슴을 후벼파는지 아들들은 알기나 할까? 자기들도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텐데 큰아들은 아예 낳을 생각조차 안해서 자식이 아직은 없고 작은 아들은 이제 세살바기 아들 한명을 낳고는 그만 낳는다고 선언했다. 아 어쩌랴; 자식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할수 있는일은 고작 혼자는 외로울텐데하는 텅빈 메아리 같은 한마디쁜, 그래서 나는 가끔 꿈꾼다. 무인도의 섬을 하나 사서 그곳을 너무나 아름답게 가꾸어서 섬에 한번 들어 오면 나가고 싶은 생각은 잊고 우리 아들 말고도 수많은 자식들이 들어와 네것 내것없이 선하게 살며 사랑하며....
거기에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젊은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마치 천국에서 사는것처럼 살수 있는세상, 터밭가꾸고 낮잠자다 배추삼해서 단맛나는 점심먹고 아이들의 놀이를 처다보며 바다가 주는 프르름에 빠져 또 다시 졸며, 그러다 저녁 미사시간에는 주님의 다정한 속삭임을 들으며 그동안 고단했던 모든 시름을 완전히 내려놓고 감사한 하루를 봉헌하는 기쁨.....
나의 아들은 서로 남같이 산다. 이런섬이라면 그런것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담박에 깨달을걸, 그런데 이놈의 현실은 왜 벽이 가로 막을까?
매사에 깔끔한 작은 놈은 형이 여섯살이나 위인 아내에게 절절매며 엄마한테 장남으로서 할일을 안한다는데 불만이 있고, 형은 아우가 형에게 밭나라 감나라 하는 잔소리가 도무지 형으로서 자존심 긁는 소리라 건방진 아우가 싫다는 것이다.
게다가 큰며느리는 더이상은 동생이고 시누고 이젠 그이상 형제의 신경 끊고 살고 싶어서 두형제는 완전히 남처럼 산다.
시어머니고 시동생이고 달랑 남편만 가지고 살면 정말 편할까?
내젊은날 나는 시어머니도 시동생도 없었지만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야할 조카들은 둘이나 있었다.
남편이 형남을 일직 작별한 뒤라 그 조카들은 남편에게서는 형보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사랑이란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가끔 그때 젊은날 그들에게 잘못했던 일을 회상하며 너무 가난해서 줄것도 업었던 세상을 원망하곤 했다.
나는 내 아들에게 바란다. 엄마한테 정말로 효성이 지극한 작은 아들이나 무심한 큰아들이나 엄마 가슴에 자리하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그러니 진정 엄마를 사랑한다면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것, 그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내가 새벽에 나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마음 다 아시니 신의 큰손으로 내아들들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셔서 사랑하고 서로사랑하고 외로움에 떠는 노인들도 보살피고 세상에 좋은 일 많이 할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예수님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