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한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 그곳에서 떠나 가셨다.(루가복음 10장)

이 불볕 여름에 주님이 주시는 시원한 물한잔 이면 우리의 번뇌는 가볍게 없어질것 같다.

나는 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중일 떄, 내게 가만히 오셔서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애야 기력을 차려라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더듬어 기억한다.

삶이 내게는 너무 무겁고 힘들어 삼십 구세의 나이에 그만 삶을 포기하고 저세상이 있다고 믿고 그만 이세상에서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그 찰라에 내 아이들이 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흉물스런 병자들만 누워 있는 중환자실을 찾아와 “엄마 형은 축구 본다고 안온됐어 그런데 내가 떼를 섰어”,,   아직 초등학교에도 안 들어간 어린것이 엄마 만나는 것이 좋아서 재잘거리며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히 퍼져 있었다.  아 신이여, 그래서 살아서 내게 주어진 책임을 제가 압니다. 살아야지요 네 살아야지요.

순간의 착각을 없애고 이 세상의 삶이 고달프더라도 나는 온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돌아 왔다.

나는 신의 손길이 있다고 한치의 의심없이 믿는 사람이다.

창자를 다섯자나 짤라내고 한자 남은 장을 가진 여자가 사는 것 보여줘야 한다. 누구에게? 내 신에게, 그리고 오진으로 사람잡은 의사에게,

가족이 아프면 아픈 사람보다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들이 더 괴롭다.

남편은 병원비 조달하랴 문병오랴 어린 아이들 챙기랴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 내가 빠른 속도로 좋아져서 남편에게 그 수고의 열배는 갚자고 나는 다짐했다.

 

열배만 갚자고 했던 그 다짐은 열배보다 더 많이 갚아 냈다. 아이들의 모든 것은 다 내차지고 당뇨합병으로 신부전증이 온 남편은 훨씬 수고가 많이 가는 환자가 됐다. 그때 내가 죽었다면 내아이들은 어쩔번 했을까? 그리고 이 남자는,,,

투석이란 것을 하기 위해 들어 누워 있는 남편 옆에서, 투석이란 병은 차라리 다리하나와 바꾸자면 얼른 바꿔주고 싶은 병이야 나는 남편옆에서 네시간씩 투석하는 사람 옆에서 피가 호스를 통해 빠져 나오고 걸려서 다시 들어 가는 그 시간에 쉴새없이 종알댔다.

“여보 어떤 여자가 지하철 입구에서 홍보지를 나누어 주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로 내려 갔는데, 화장실에 여자들이 줄을 길게 서있드래. 그래서 남자화장실이 비워 있어서 얼른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너무급히 나오다보니 홍보지를 두고 나왔데, 그래서 다시 들어가보니 그사이 남자거 들어가 용무를 보고 있드래, 그래서 염치불구 하고 그랬대, 아저씨, 거기 변기 뚜껑위에 있는 홍보지 좀 주세요, 했더니 남자가 밑에 있는 공간으로 홍보지를 내밀며 ”흑보지는 들어봤지만 홍보지란 소리는 처음이네“ 그러드래..” 내가 이런 우스게 소리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웃는지 어쩐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자식이 아무리 효자라해도 긴병에는 효자 없다고 누가 그랬지  아이들은 처음 한달 동안은 아버지의 병실에 부지런히 이틀이 멀다하고 오지만 시간이 지나 몇 달이가기 시작하면 발길이 뜨막해진다. 아픈 환자는 대부분 이제 이 길이 마지막으로 오는것을 감지한다.

남편도 그랬다. “ 당신 고마웠어, 당신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살았어, 만약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어,” 이 남자가 무슨 소리야, 당신은 절대로 내 우스게 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저세상이고 이세상이고 간에 정신 바싹 차리고 다들어야 해, 웃음 치료라는 것도 있잖아, 내 웃음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아직 십년치는 남았어,“

내가 진정 눈물나도록 우스운소리를 해도 그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낳을 기미는 물론 없고 마지막에는 말문까지 닫고 눔물만 가득히 흘리며 저세상으로 갔다,

병이 딱 닥치면 그때는 손쓸수 없이 막다른 길로 치닫는다. 내남편도 하루에 소주를 세병씩이나 먹으면서 당뇨 합병증을 불러 모우고 있었다, 마누라 말 절대로 안듣는 남자, 따지면 사랑할 건덕지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야 나는 그를 이해한다, 소위 엘리트라는 명문하교에 그것도 줄창 우등생으로 졸업한 사람이 사회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한순간에 받기도 했지만 꾸준하지를 못했다. 머리는 좋고 실력 빵빵해도 줄 잘 서야 살아 남았던 시대를 살아 넘기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남편의 고독을 나는 이해한다, 그는 그래서 혼자서 술을 즐기며 술에서 위로를 받았지만, 예수님의 고독만큼 외로울수 있었을까. 외롭다고 하신 말씀은 어느 구석에도 없지만 나는 주님의 외로움을 온 몸 가득히 받아 드린다. 물한잔이라도 기꺼이 대접할수 있는 작은 정성을 우리 서로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