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국인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의 여건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 결행을 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이른바 '天地人' 사상이다. 天은 시기와 시류(Trend), 地는 장소와 환경, 人은 협력자를 뜻한다. 이 세 가지 여건이 모두 구비됐을 때라야 비로소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가장 잘 따른 이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비劉備이다. 유비는 조조曹操에게 몸을 의탁해 있으면서 미래의 경쟁상대가 될 조조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늘 몸을 낮췄다. 조조와 술자리를 하던 중에 천둥번개가 치자 탁자 밑으로 숨어 벌벌 떠는 약자 코스프레도 연출했다. 그가 남긴 이 일화에서 '도광양회'가 비롯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의 빛을 칼집에 숨긴다"는 뜻이다.
유비는 훗날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지금의 강소성 서주 근처 패현沛縣의 태위太位라는 면장 정도의 미미한 관직을 받자 실망하지 않고 부임해 때를 기다린다. 유비는 의형제 관우 장비와 함께 이 곳을 기반으로 제갈량과 조자룡을 영입하고 제갈량의 천하3분지계天下三分之計에 따라 지금의 사천땅에 촉蜀을 세워 위魏, 오吳와 경쟁하게 된다. 天地人을 모두 갖춘 연후에 패권 다툼에 뛰어든 것이다.
'도광양회'는 1980년대 '부도옹不倒翁' 덩샤오핑邓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내건 슬로건이기도 했다. 대국이 굴기하는 데 대한 주위의 경계를 낮추기 위함이었다. 이 현명한 처신을 어기고 있는 게 현 주석 시진핑习近平이다. 그는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대국굴기大國屈起'를 외쳐대다 목하 최강대국 미국의 견제를 받아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시진핑의 성급한 처신으로 중국은 몇년간 지속해온 고도성장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을 보인다. 2019년 4월 1일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면 톱으로 "중국의 불량채권이 1조 5천억$(1500조원) 규모"에 달했으며, "미국과 일본의 금융기업들이 중국의 부실채권을 7,8할 할인가로 일괄매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부실채권은 2007년에 9,110억$였는데 그새 두 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이 중요한 뉴스를 국내 언론은 다루지 않았다.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부실채권 폭증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부실 운영 탓이 크다. 국유기업은 공산당 명문가의 자제들이 꿰차고 앉아 경영은 신경쓰지 않고 있는 곳이다. 경영이 나빠도 정부의 지시로 금융들이 대출을 해주는 까닭이다. 이 국유기업을 개혁하는 것만이 살 길이지만, 국유기업은 사회주의 체제의 아이콘 같은 존재라는 게 문제이다. 소위 '철밥통'이라는 종신고용제로 운영되어온 존재여서 작금의 시진핑처럼 폐쇄하거나 혼합소유제로 바꾸면 실업자가 발생하는데 이 실업자들을 모두 구제할 방법이 없다. 5G 시대를 선점해 일자리를 만들려는 게 시진핑의 생각이지만, 이미 미국의 경계로 진행이 벽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시진핑의 국유기업 개혁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곳이 장춘과 심양을 끼고 있는 동북3성 중공업 벨트이다. 이 곳은 현재 대량발생한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만이 위험 수준이다. 이들의 불만은 화약고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방채로 토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해 온 지방정부들도 경기하강의 직격탄을 맞아 분양이 지지부진해지면서 2017년 말 현재 40조 위안(6,500조원)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2019년 상황은 더 나쁠 것이다. 두 케이스 다 정부가 지불을 보증해야 한다. 모두가 위험이 곧 노정될 '회색코뿔소'에 해당한다. 이 '회색코뿔소'는 정부 주도로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말은 "중국이 당면할 위기가 심각하다"는 예상에 다름 아니다. 시진핑이 우쭐해서 미국에 달려들었다가 자초한 경제침체는 바야흐로 중국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천지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천지인'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국인의 자세는 장자莊子의 '싸움닭鬪鷄'에도 반영돼 있다. 투계 조련 전문가 기성자記性子는 투계광인 왕의 채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때를 기다려 투계를 완성해낸다. 기성자는 "공연히 허세를 부리며 제 기운만 믿고 날뛴다", "다른 닭의 울음 소리나 그림자에 반응한다", 상대를 노려보며 성을 낸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번번이 왕의 급한 성미를 누른다.
"아직 멀었다(未也)"
그러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기성자는 왕의 물음에 "거의 됐다(幾矣)"라는 답을 주었다. '이제 싸움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표현이다. "상대에 일체 반응하지 않는 목계木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내, 평정심, 절제를 갖춰 외유내강형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완성됐다(完也)"는 평가는 아니다. 프로페셔날의 눈에 차려면 더 시간을 투자해 다듬어야 할 터이다.
기성자는 프로페셔널로서 철저히 닭의 조련에 임해 냉철하게 분석한 후 실전에 투입해도 될지 여부를 평가한 것이다.
'천지인'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과
'도광양회'하는 주도면밀함
그리고 완성된 투계를 조련해내는 프로페셔날의 분석과 평가는
아마튜어리즘이 난무하는 오늘날 한국 정치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성급하게 시도한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의 지지부진이 그렇고,
'자주외교'를 내세우며 미국, 일본과 소원해지는 외교정책이 그렇고,
'정의 구현'을 내세우며 같은 국민을 적으로 돌려세우는 편협한 정치가 그러하고,
2019년 4월 현재 잡음이 큰 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또한 그렇다.
'목계'가 되기 전에 실전에 등장한 어설픈 '닭'들의 실수는 한숨이 나올 정도이다.
대표적 사례들이 대통령 보좌진들의 '웃픈' 에피소드들이다.
보도자료에 '발틱' 국가를 '발칸'국가로 표현해 라트비아 대사관의 엄중한 항의를 받고,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만나서는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하는 결례를 범하고,
저녁 인사와 밤 인사를 바꿔하고,
1993년 국명이 '체코'로 바뀐 걸 모르고 이전 명칭인 '체코슬로바키아'라고 표현하고,
파나마와의 외교장관회담장에 파나마 국기를 거꾸로 달고,
캄보디아를 방문하면서 SNS에 타이완 유적지 사진을 올려 망신을 산다.
아는 것도 적고 공부도 하지 않는다.
그걸 관리감독할 기능도 없다.
국정을 운영하고 보필하는 자들에게서 프로페셔널리즘이 읽히지 않는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 완장 차고 혁명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은 중국의 '홍위병' 세대들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광란의 시기'가 끝나고 사회가 정상화되면서 지식이 없는 그들은 후배 세대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구 말을 뱉어내기도 한다.
장관 후보자들이 3주택 소유자이고 아들에게 3천만원 짜리 포르셰 차를 사준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 홍보수석이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고,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강남 사는 정책실장이 "왜 다들 강남에 살려하느냐? 모든 국민이 다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남의 얘기 하듯 하고, 청와대 비서관이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헬 조선에 살지 말고 동남방 국가들로 가라"는 언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책임있는 공직자들의 입에서 무책임한 평소 인식들이 가감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2018년과 19년 최저임금제와 사립유치원 정책을 집행하는 정책수석과 교육부장관이 "시장이 사익을 추구하지 말고 가치를 먼저 생각해 달라"는 주문을 한 사례는 더 심각한 인식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장더러 "사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주문은 어불성설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요구인 까닭이다. 시장에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정책을 합리적으로 잘 세우면 될 일이다.
이 모든 정책안과 인사안, 의전과 보도문안을 기성자가 미리 보았더라면 모두 "미야未也"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임에 틀림 없다. '천지인'의 여건이 무르익기 전에 '도광양회'하지 않은 채 칼을 뽑아들었고 내실을 갖추지 않은 인사들을 정책결정자로 뽑으면서 정치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2018년 말 현재 국가부채가 1,700조원에 달했다. 2018년 한 해만 127조원이 늘어났다. 공무원과 군인에게 줘야 하는 연금이 940조원이나 된다. 2018년 세수가 27조원 늘었지만 부채를 감당하기엔 조족지혈이다. 성장책을 새로 마련하는 것외엔 해결책이 없다. 아마튜어처럼 과거 문제에 연연할 계제가 아니다. 미래 먹거리 마련에 프로페셔널십을 발휘해 뛰어들어야 한다.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