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로드리고는 터키 출신의 피아니스 빅토리아 카뮤와 만나 발렌시아에서 결혼식을올린다. 사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부모님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로드리고의 부모님들은 두 손 들어 환영 했지만 부인인 카뮤의 부모님은 강력히 반대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그녀가 결혼을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순간 까지도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언제든지 결혼이 불행하다고 여겨진다면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와 눈물로 그녀를 배웅했다. 로드리고의 가족은 그녀를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없어 보이는 로드리고의 집안은 행복이 넘쳐 보였고 부유해 보였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로드리고의 비서가해 주던 역할들은 자연스레 그녀의 몫이 되었다. 그녀 역시도 촉망 받는 피아니스트였고 로드리고를 만나기이전부터 이미 로드리고의 작품과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결혼과 더불어 마드리드에 정착 했다. 결혼생활은 시작 되었지만 로드리고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겐매달 일정한 생활비가 필요했지만 종종 들어오는 의뢰가 로드리고의 일들의 전부였다. 생활비는 늘 턱없이부족 했다. 간신히 교육청과 몇 주 간의 면담 끝에 얻은 일자리라고는 무보수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대학에서임시직으로 강의하는 교수자리가 전부였다.

이듬해 4월에 일이었다. 한 장의 전보가로드리고의 가족으로 부터 왔다. 로드리고의 어머니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이었다. 부부는 부랴부랴 정신없이 짐을 챙겨들고는 발렌시아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다행히도 로드리고의 어머니는 위험한 고비는 넘긴 상태였다. 그러나 그 때 부터 그들의 고난이시작되고 있었다. 부부는 마드리드에 있는 자신들의 신혼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로드리고가 큰형으로부터 부모님의 악화된 경제사정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기나긴 겨울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집에서 로드리고의 어머니와 조카들 그리고 누이들 함께 보내야만 했다. 생활은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 해 여름이 될 무렵 로드리고의 가족은 비좁은 집을 떠나 Estivella로 이사를했다. 이사 한 곳은 비록 낡은 집이었지만 가족이 쓸 수 있을 만큼 넓고 큰 공간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집 주변에선 전원의 냄새가 물씬 묻어났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부부의생활은 여전히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떠들썩한 많은 조카들과 그들을 포함해 많은가족들이 한 집에 북적 거리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로드리고는 전혀 작곡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무척 혼란스럽고시끄러운 환경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점점지쳐만 가고 있었다. 부부의 일과는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넓은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언덕을찾아 올라가 올리브 나무 아래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때때로 부부는 종일 그 곳에서 머릿속으로음악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힘든 시간이 그렇게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카뮤의 친구 Mathilde가 로드리고 부부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녀는 두 사람의 생활을 보고 경악을 금지 못했다. 어떻게든 그들을이생활로부터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렇게 그녀가 방문한 다음 날 발렌시아로부터 로드리고가어릴 때 부터 간호해주며 보살펴 주던 간호사 Rosalia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부는 서둘러짐을 챙겨 발렌시아로 돌아갔다. Rosalia는 로드리고를간병했던 간호사일 뿐만 아니라 로드리고의 집에 있으면서 카뮤의 가사일과 집안일 들을 돌보아 주던 부부에겐 가족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제 많이 늙고 아팠다.

또 다른 고난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로드리고의 아내는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는 한편새로운 삶도 이끌어 가야만 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의 도움과 인내력 있고 친절한 의사의 도움으로 Rosalia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집 안엔 이미 그들이먹을 수 있는 것들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닭장에 닭들 몇 마리가 전부 였고 식량도 거의 시들어가는야채 몇 개가 전부였다. 카뮤는 좌절감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 했다. 정말로 자기 능력으론 이 몇 되지 않은 식구의 입도 풀칠 할 수 없는지 스스로 반문 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방법을 찾으려 노력 했다. 그러나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더 이상의 좋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 때, 천사처럼 로드리고 형 Pepe가부부를 찾아 왔다. Pepe는 자기가 일하는 농장에서 식료품과 땔감을 챙겨 자동차에 싣고 부부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 곳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로드리고 부부와 그의 늙은 간호사 Rosalia Pepe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이젠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연이어 다른 좋은 일도 생겼다. 로드리고 부부를 잘 도와주던 Rafeal이라는 마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우 친절하면서도 일도 잘하기로 소문난 여자였는데, 어느날 카뮤에게 복권을 한번 사 보라 권했다. 그들의 어려운 생활을 지켜본 그녀가 망막한 그들의 삶에 돌파구를한번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제안한 것이었다. 마침 부부에겐 카뮤의 어머니로 부터 받은 조금의 현금이있었다. 그들은 끝자리가 5인 복권을 구입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 신문엔 3500 페세타의 상금에 당첨됐다는 기사가 났다. 그들 부부는 서로를얼싸안고 기뻐했다. 이로써 당분간은 경제적인 어려움의 고통부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얻을수 있었다. 그 덕택으로 좋진 않지만 피아노도 한 대도 구입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고는 여전히 로드리고 부분에게 피로감을 가중 시키고 있었다.

그해의 크리스마스가 되기 며칠 전 날이었다. 로드리고의 장모는 부부를 만나기 위해먼 길을 돌아 Valencia에 도착 했다. 그 것은 사위와의첫 만남이자 딸과 갖는 오랜만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부부와 시간을 보내던 중에도 장모의 눈에는두 부부의 심각 하리 만큼 어려운 현실의 상황들이 보였다. 로드리고의 부부의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사돈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까지 로드리고 부부에게 이중의 고통이 되어 삶의 무거운 무게를 가중 시키고 있었다. 그녀는부부에게 무엇인가 해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까뮤에게 잠깐 로드리고와 떨어져 친정에 머물며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취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까뮤는 자기 자신이 잘 극복해낼 거라 믿었다. 그래서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한 그녀 역시 지금같은 방식으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카뮤는 어머니를따라 친정이 있는 파리에 잠시 머물며 그 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로 결심했다. 잠시동안의 이별이지만부부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실패한 듯 한 생각에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완강히 반대하시던 아버지에게보란 듯이 잘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카뮤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 냉혹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별하던 날, 그 날은 두 사람에겐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부부는 후에 그 날을 기억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처참했고 슬펐던 날 중 하나라고 회고 했다. 눈물로 이별한 부부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가까이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더커졌다. 로드리고는 매일같이 카뮤를 그리며 눈물로 음악을 만들거나 그녀에게 애틋한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잃어버린 반쪽을 위한 시간을 채워갔다. 카뮤 역시도 그를 생각하며 그 어려운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친정에 돌아온 카뮤는 그들의 결혼을 강력히 반대했던 아버지를 볼 면목이 서지 않았다. 아버지도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떠났던 딸을 처음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자신의 조언을 듣지않고 떠났던 딸의 결혼 생활의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딸에 대한 연민의감정이 생겼고 마음은 곧 풀어지기 시작 했다. 그리고 로드리고를 받아드린 것은 아니었지만 딸이 행복해지기를바랐다.

로드리고는 어려운 시기를 지내며 몇 개의 슬프지만 낭만적인 작품들을 섰다. 그가가장 사랑한 작품이 기도한 십자가의 ‘성 요한’이란 가사에 곡을 붙인 'Cancion de la Esposa'(신부의노래)와 교향시 'Per La flor del LliriBlau"(파란색 백합)가 이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의 로드리고가 느끼고 있던 슬픔과 비애, 아내에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 중 교향시 ‘파란색 백합’은 후에 ‘Circulo de Bellas Artes’라는 상을 발렌시아 시로 부터 수상하기도 했다.

부부는 슬프고 비참한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활기찬 여름이 다가 왔지만 로드리고는아내 없이 점점 더 쇠약해져만 갔다. 카뮤 역시도 남편을 그리며 먼 파리에서 온 종일 테라스에서 무기력하게시간만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비극적인 상황은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해 주 었다. 그나마 카뮤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카뮤의 아버지의 사업이 계속해서 날로달로 번창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뮤의 아버지는 처량한 모습의 딸과 망가져만 가는 사위의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카뮤에게마드리드 행 기차표 한 장을 건네주며 로드리고를 빨리 파리로 데려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카뮤의 아버지는두 사람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사명감 가진 사람처럼 로드리고를 구하기 위해 발렌시아로 한숨에 달려간다. 그것은 마치 그녀에겐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그것으로 경제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그 때 카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 것은 Conde de Cartagena 장학금 이었다. 그것은 순수 예술을하는 젊은 예술가에게 발렌시아의 예술원에서 예술가들이 예술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2년 동안 수여되는 장학금제도였다. 그것만 받을 수 있다면 2년 동안은 생계 걱정은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 사이로 카뮤가 꿈에도 그리던 로드리고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눈물의 재회를 했다. 로드리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말라 수척해 보였다. 피아니스트인 Gonzalo Soriano가 로드리고를역까지 부축해서 나와 있었다. 부부는 곧바로 그들이 묶을 팬션 방에 짐을 풀고 곧바로 장학금을 위해서많은 관계자들과 만나기 시작 했다. 로드리고와 카뮤에게는 시간도 돈도 충분하지 않았다. 단지 며칠을 묶고 간단한 식사를 해결 할 수 있을 정도의 숙박비와 식사비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카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예술원 회원들 중 음악부분에 많은 영향력을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로드리고의 경제 상황과 로드리고가 장학금을 받아야만 하는 당위성들을 설명해 나갔다. 많은예술원 회원들은 로드리고의 상황은 이해하고 로드리고에게 표를 주겠다고 약속 했다. 그러나 상황은 갑자기좋기 않은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 했다. 예술원의 한 관계자가 로드리고에게 말했다. “어쩌면, 당신이 이번 장학금의 수혜자가 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로드리고는 당황해서 이유를 물었다. “당신이 흐름의 판도를바꿀 만한 영향력을 가진 분을 안다면 모를까, 마이스트로 Arbos의제자인 바이올린리스트 F 모씨가 받을 가망성 가장 높습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청천 병력과 같은 소리였다. 한 동안 로드리고는 넋을 잃고 가만히서 있었다. 그의 아내 카뮤 역시 밤 잠을 재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마치 그들은 삶의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린 듯 한 생각이 들었다. 카뮤는 이대로 자신들의희망이 눈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잠시 동안의 혼란의시간이 지났다. 카뮤는 정신을 차려 어떤 돌파구든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몇 번이고 인사를 나눈 적이 있던 마이스트로 Arbos의부인인 berenjela이를 떠올랐다. 그녀에게 장문의 편지를쓰기로 했다. Arbos의 부인인 berenjela는 매우우아하고 지적이며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가 어려운 로드리고의 사정을 듣고 그냥 지나치지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편지를 보내고 이틀이 지난 후 였다. 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있어 로드리고 부부도 연주장을찾았다. 그 곳에서 로드리고 부부에게 berenjela 부인이다가 왔다. 그리고 로드리고에게 ‘정말 이지 당신은 보석과 같은 아내를 둔 사람이에요.’라고 하면서 카뮤를 가볍게 포옹해주었다. 그리곤 부부에게 Manuel de Falla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밤을 세면서 장문의 편지를 Falla에게 섰다. 편지엔 로드리고가 지금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과 경제적인 위기 그리고Falla가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묻는 내용을 써 내려갔다. 편지를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전보가 발렌시아 예술원의 의장인 Romanones의 백작에게 보내졌다. 백작은 로드리고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표를 로드리고에게 주는 한 편 의장의 집권으로 예술원에서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회원들을 움직여 주었다. Falla는 적극적으로 로드리고가 장학금을 받을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실어 주었다. 그 덕택으로 로드리고는1935 Conde de Cartagena 장학금을 예술원으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카뮤와 로드리고는 행복하게 파리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Falla는그 이전에는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로드리고를 위해서 움직였던것이었다. 로드리고 부부는 그 어려웠던 시절 Falla로부터받은 도움을 늘 감사했다.

 

 

*

Joaquin Rodrigo

*



*‘아랑후에즈(Aranjuez) 궁전은 스페인 왕궁의 중요한 유적지이다.


*2001,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 1554년 부터 1598년 까지 44년간 왕으로 군림했던 필립 2’(Philip II of Spain) 시대에,
*건축가 Juan Bautista de Toledo' *후안 데 헤레라’(Juan de Herrera)
*
의해 건축되기 시작하여..

*‘페르디난트 6’(Ferdinand VI of Spain: 1746 ~ 1759) 시대에 이르러 서야 완성된 건축물이다.
마드리드에서는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아랑후에즈 역이 나오는데..
역을 빠져 나오면.. 포플라 나무가 길게 이어진 호젓한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 가면..
아름다운 아랑후에즈(Aranjuez) 궁전이 우리를 반긴다.
궁전의 아치 안으로 들어 가면..
복도의 수십개 기둥과 천정에는 수백년이 흘렀을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초록 금빛의 등불이 걸려 있는 건물 벽을 지나면..

 

왕궁(Palacio Real )으로 들어 가는 아치형 정문이 나온다.
*왕궁안으로 들어 가면,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명화들로 둘러 싸인 호화스런 방들이 나오고..

**금빛 찬란한 액자 뒤로는 유명화가들의 작품들이 숨어 있다.

*다른 방으로 들어 가면 호화찬란한 포셀린방이 나온다.

**포셀린방의 수많은 거울들은 여행객들의 정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왕궁을 모두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면 ..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랑후에즈 왕궁의 정원들을 찿게 된다.
*첫번째로 찿을 정원은 분수가 많은..
*이스라 정원’(Isle Garden).
*다음에는 조각품이 많은..
*파르테레 정원'(Parterre's Garden)을 찿게 된다.

*그리고, 황태자의 정원(Jardin del Principe)도 빼놓을 수 없다.


*아랑후에즈 궁전의 정원들은..

*합스부르크 시대’(House of Habsburg)를 보여 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정원들이다.



이렇게 해서 아랑후에즈 궁전을 모두 돌아 보았는데..

 

아랑후에즈 궁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궁전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스페인이 자랑하는 시각장애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때문이다.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로드리고는 3세 때 '디프테리아'(Diphtheria)를 앓아 시력을 잃게 됐는데..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피아노로 작곡과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만난 사람이..

스페인의 저명한 작곡가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그리고..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빅토리아 카미’(Victoria Kamhi)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후에 부인이 된 터키 출신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카미’(Victoria Kamhi).

사람은 카미가 먼저 세상을 떠난 1997년까지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어졌는데..

1939년에는 아기를 유산시켜야 하는 가슴 아픈 시간들을내야 했다.

바로, 아랑후에즈를 위한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작곡하던 해였다.

로드리고는 그 아픔들을 고스란히 아랑후에즈 협주곡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랑후에즈 협주곡..

역사상 가장 많은 편곡이 발표된 클래식 음악이자..

20세기에 가장 많이 연주된 스페인 음악이며..

스페인의 음악작품 가장 많은 저작권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기록된다.

세계 음반 시장에 나와 있는 아랑후에즈 협주곡 버전도 50가지 이상.

그 중..

거장,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폴 모리아’(Paul Mauriat)가 연주한 버전과

쟝 프랑소와 모리스’(Jean Francois Maurice),

리쳐드 앤소니’(Richard Anthony)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노래한 버전을 아래에 올렸다.

*Regino Sainz de la Maza

*‘아랑후에즈 협주곡 1940,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Regino Sainz de la Maza)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로드리고는 이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다.

아랑후에즈 협주곡이 세상에 울려 퍼졌던 그 다음해인 1941,

*빅토리아 카미는 로드리고와의 사이에 첫 딸 세실리아’(Cecilia)를 낳았다.

* 그 후로.. 두 사람은 평생을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1997 721, 아내 빅토리아 카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로드리고2년 후인 1999 7 6, 그 녀의 뒤를 쫓았으며..

*두 사람은 ‘아랑후에즈묘지에 함께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