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서도 심장이 뛰는 멋진 동물, 돼지
새해가 시작되고 설날까지, 지난 두 달 동안
여러 매체는 돼지에 대해서 무수히 다뤘다.
돼지해이니 할 만한 기획인데
대부분 돼지가 가축이 된 유래, 문명사, 돼지고기 요리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슬프게도 이제 인류에게 돼지는
돼지고기라는 식재료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모양이다.
식재료가 되기 위해서 갇혀 사는 불편한 돼지의 현실은 건너뛰고 맛있는 요리에 관심은 집중된다.
하긴 현대인은 살아있는 돼지를 실물로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식재료가 된 돼지 신체의 일부를
고사용 돼지머리, 족발, 간, 순대 등으로 만나거나 돼지저금통으로나 만날까.
오히려 푸우의 소심한 친구 피글렛이 실제 돼지보다 친숙하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도
농장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생각보다 거대한 돼지를 보고 놀랐던 어린 시절의 가물가물한 기억 정도가 실물을 본 전부이고,
이후로는 일 때문에 찾았던 동물원이나 테마파크에 전시된 새끼돼지를 본 정도이다. 이처럼 실제 돼지는 우리와 단절되어 있다.
사람들이 알만한 돼지 관련 단어도 대부분 가축으로서의 돼지이다.
공장식 축산이라는 단어나
어미 돼지가 새끼를 임신하고 수유를 하는 동안 갇혀 사는 철제 우리인 스톨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초기 로마 시대에도 돼지를 먹이고 살찌우는 기술을 가리키는 포르쿨라티오Poruculatio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동물학대 요리로 비난을 받는 현대의 거위 간 요리인 푸와그라처럼
그 시대에도 돼지에게 무화과와 꿀을 탄 와인을 강제로 먹여서
비대해진 돼지 간을 최고의 진미로 여겼다고 하니
돼지는 가축화된 후 특히 고통 받는 종이다.
그러면서도 공장식 축산이 도입되기 이전에 돼지는
서양에서 일종의 식용 가능한 애완동물이었다니
아마도 돼지의 높은 지능과 귀여운 외형 덕분일 것이다.
어디선가 책 <대단한 돼지 에스더>를 반려돼지와 사는 에세이라고 소개했던데
그보다는 돼지와 함께 살게 된 인간이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파티를 좋아하는 두 남자가 돼지와 살게 된 후 겪게 된 첫 번째 변화는
베이컨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삼겹살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것과 비슷할 테니
대단한 변화이고 결심이다.
이후로는 다른 고기, 우유도 먹지 않고,
가죽 옷, 가죽 신발도 입지 않고 신지 않는다.
자기 옆의 에스더는 이렇게 행복한데
행복하지 못한 동물에게서 착취한 것들을 소비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두 남자는 자기들만 변한 게 아니라
행복한 돼지 에스더의 모습을 SNS에 소개하면서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육식 소비를 줄이는 큰 변화를 일으킨다.
나도 채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가축들의 끔찍한 영상을 보면서 채식의 의지를 다지는 건 고통이다.
그럴 때면 에스더의 SNS를 찾아간다.
오히려 그곳에서 에스더가 코로 땅을 파헤치고, 넓은 땅에서 여유롭게 어슬렁거리고,
인간, 개, 고양이, 칠면조 등 종이 다른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육식의 욕구가 슬며시 꺼진다.
다른 돼지도 에스더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돼지해인 올해, 사람들이 고통 받는 돼지보다 행복한 돼지를 많이 보는 해가 되면 좋겠다.
꿈에서 돼지를 보면 복이 들어오는 길몽이라고 하는데
육식을 좀 줄여서 현실에서도 행복한 돼지가 많은 세상에 일조한다면 그게 복 짓는 게 아닐까.
게다가 황금돼지해여서 임신을 계획하는 부부도 많다는데
동시대의 돼지에게 임신과 출산이란 지옥과 다름없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돼지에게는 두 개의 심장이 있다고 한다.
처음 듣는 말이라고?
돼지의 심장 하나는 가슴에서 뛰고, 나머지 하나는 코끝에서 뛴다.
돼지의 코를 자세히 보라.
심장을 거꾸로 한 딱 그 모양이다.
그래서 돼지는 코로 흙을 파며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고, 코로 인사하는 모양이다.
에스더가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코를 비비는 건 사랑한다는 표현이라고 했다.
코에서도 심장이 뛰는 이 멋진 동물이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황금돼지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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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칼럼이다.
대장이 아프고 정신이 없다보니 2주나 지난 글을 이제야 올린다.
보기만해도 마음이 행복해지는 에스더의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