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세계유산 Ⅶ - 페르퇴(노지들레르씨)문화경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http://www.unesco.or.kr)에는 지정사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ㅇ 8천년 동안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는 지점
ㅇ 호수 주위에는 18세기와 19세기의 성들이 문화적 관심을 높인다
유네스코 본부 홈페이지(http://whc.unesco.org/en/list/401)에서는 지정연도와 면적, 좌표, 사유 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Date of Inscription: 2001
Criteria: (v)
Property : 52.4130 ha
Buffer zone: 40.1190 ha
State of Burgenland (AT) / County of Györ-Moson-Sopron (HU)
N47 43 09.4 E16 43 21.8
Ref: 772rev
Brief Description
The Fertö/Neusiedler Lake area has been the meeting place of different cultures for eight millennia. This is graphically demonstrated by its varied landscape, the result of an evolutionary symbiosis between human activity and the physical environment. The remarkable rural architecture of the villages surrounding the lake and several 18th- and 19th-century palaces adds to the area’s considerable cultural interest.
Justification for Inscription
Criterion (v): The Fertö-Neusiedler Lake has been the meeting place of different cultures for eight millennia, and this is graphically demonstrated by its varied landscape, the result of an evolutionary and symbiotic process of human interaction with the physical environment.
오스트리아 동부 부르겐란트주와 헝가리 북서부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호수가 있다. 헝가리 이름으로는 페르퇴(Fertő) 호수라 부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노지들레르(Neusiedler)라 부른다. 이처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양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어 본 블로거의 오스트리아 세계유산을 소개할 때 언급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남동쪽 36km 지점에 있는 이 호수는 한때 헝가리 영토에 속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 이 호수와 이 호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르겐란트 주를 백과사전의 설명을 읽어보다.
먼저 다음백과사전에 나타난 노이지들러호수에 관한 설명이다.
노이지들러 호 [Neusiedlersee, 페르퇴토]
유럽호수, 유럽, 오스트리아, 헝가리
(헝)Fertötó (영)Neusiedler Lake.
오스트리아 동부 부르겐란트와 헝가리 북서부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호수.
'노이지들러'라는 이름은 오스트리아 노이지들 마을에서 따왔고, 헝가리어로 '늪 호수'라는 뜻이다. 수백만 년 전 홍적세에 만들어진 이 호수는 지각 일부가 가라앉아 움푹 패인 분지가 생기고, 그 분지에 물이 고여 호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해발 115m). 길이 36㎞, 폭 6~14㎞인 이 호수에는 작은 시내로 물이 흘러드는데, 지하에도 물이 솟아나오는 원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출구가 전혀 없고 깊이가 아주 얕아서(1.2~1.8m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음) 물에 약간의 소금기가 있으며, 날씨 변화에 따라 깊이와 면적(350㎢)이 달라진다. 1873~95년에 만든 운하가 이 호수를 도나우 강 지류인 라프니츠 강(헝가리어로는 렙체 강)으로 이어준다.
호숫가에 갈대가 우거져 있어서 수많은 종류의 희귀한 철새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 지역을 국제금렵구역과 조류서식지로 지정해 새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 호수는 날씨와 지하수를 조절하고, 셀룰로오스 산업에 원료를 공급하며, 가까운 빈에 사는 주민들에게 휴식처 구실을 한다. 호숫가의 주요마을로 노이지들·포데르스도르프, 그리고 포도주 생산지인 루스트가 있다.
부르겐란트 주를 다음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르겐란트 [Burgenland]
판노니아분지, 오스트리아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동부의 주.
동쪽으로 헝가리, 북서쪽으로 니더외스터라이히 주, 남서쪽으로 슈타이어마르크 주와 접한다. 헝가리 서부의 옛 4개주(州)인 프레스부르크(브라티슬라바)·비젤부르크(모손)·외덴부르크(쇼프론)·아이젠부르크(보스바르)의 여러 구역이 합쳐져 1921년에 형성되었다. 부르겐란트 북부의 저지는 라이타 산맥의 남과 북에 있는 2개의 관문을 통해 빈 분지의 남부와 연결되는 판노니아 분지에 속한다. 이 지역은 스텝과 호염성 식생을 특징으로 하며, 지형적 특색으로는 노이지들러 호가 가장 두드러진다. 알프스 산맥에 연결되는 결정암의 로잘린 산맥이 북부와 중부 사이에 있다. 중부 지방은 주에서 가장 산이 많은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판노니아 분지를 향해 낮아지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란트제·베른슈타이너·권저 산맥을 향해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남부는 구릉지대로,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하천들이 흐르며 계단상의 지형을 이룬다.
선사시대 이래로 계속 사람들이 거주해온 남서부 지방은 철기시대에 켈트족의 노리쿰 왕국에 속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는 로마의 속주 판노니아의 일부였다. 그 후 튜튼족·아바르족·슬라브족이 차례로 점령한 후 8세기에는 게르만족이 정착했는데, 헝가리의 영토였는데도 마자르족이 대부분인 지배 계급 밑에서 게르만족이 집중적으로 정착한 곳이다. 이곳의 초기 역사는 헝가리의 역사와, 또 1529년 이후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역사와 연관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 서부에서 독일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역들이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어 부르겐란트가 탄생되었지만, 1921년의 주민투표 실시 후 쇼프론(외덴부르크)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헝가리가 계속 보유하게 되었다. 쇼프론의 상실로 인해 부르겐란트는 지리적으로 보아 주도가 될 만한 중심 도시를 잃었고 남부와 북부의 연결이 어렵게 되었다. 1925년에 아이젠슈타트는 주도가 되었다. 부르겐란트는 안슐루스(1938~45,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있던 기간) 중에 독일의 니더도나우 주, 슈타이어마르크 주로 분할되어 있었지만, 1945년 오스트리아 주로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독일계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비독일계 소수 민족(크로아티아족·마자르족)의 구성비가 15%로 가장 높은 주이다. 주민의 약 85%가 로마 가톨릭교도이며, 1960년에 주교관구가 되었다. 경제가 농업 중심인데다가 극도로 세분화된 농경지, 낮은 생활수준, 실업, 계절적인 이주 등이 요인이 되어 여러 해에 걸쳐 주민들이 오스트리아의 다른 주들과 독일 및 해외로 이주해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이 성장했지만 큰 취락은 드물고 인구 1만이 넘는 곳은 아이젠슈타트 하나뿐이다. 지표 면적의 3/5이 가경지이며, 약 1/3이 삼림지이다. 근채작물과 옥수수를 포함한 곡물류는 잉여생산고가 높다. 북부에서 수확되는 작물로는 포도, 과일, 야채류, 약간의 담배, 삼이 있으며, 호수 연변의 바이덴에서는 쌀이 실험적으로 재배된다. 가축 사육은 널리 행해지지만, 소규모 농지에서 소를 역축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우유 생산량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노이지들러 호 연안에서는 제재업과 갈대 생산이 이루어진다. 우수한 건축용 석재인 라이타 산맥의 석회암과 도로 건설용의 현무암이 채석된다. 또한 스토프 부근에서 고령토가 산출되며 벽돌 제조용의 점토 채굴장이 많이 있고 안티몬과 갈탄이 채굴되며, 백악과 준보석인 사문석(장신구, 꽃병 제조용)의 광맥이 있다. 공업은 주로 소규모로 이루어지며 제당, 식품가공, 직조, 제재, 가구 제조업 등이 있다. 도로와 철도 운송은 상당한 개선이 필요한데, 이는 교통로들의 위치설정이 과거 부르겐란트가 헝가리의 영토인 상황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헝가리 영토(쇼프론)를 경유하지 않고 남북을 잇는 철도는 전혀 없다. 면적 3,965㎢, 인구 276,419(2003 추계).
부르겐란트 주의 주도 아이젠슈타트의 구시가에 있는 Schloss Esterhazy(에스터하지 성)은 아이젠슈타트의 상징물이다. 1672년 에스터하지 성이 세워진 후 1805년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 되었다.
페르퇴/노이지들러 호수가 생긴 것은 수백만년전인 홍적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였음이 조사결과 확인되었다. 그 후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는 켈트족의 노리쿰 왕국에 속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는 로마의 속주(屬州) 판노니아의 일부였다. 그 후 튜튼족·아바르족·슬라브족이 차례로 점령하였다.
5세기경 언어학적으로 우랄어족에 속하는 민족인 마자르족(MAGYAR)이 유라시아초원지대(EURASIAN STEPPE)에서 서쪽으로 이주하여 헝가리의 대평야 지대에 정착하였는데, 그들은 10세기경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부분 마자르족인 지배 계급 밑에서 게르만족이 대거 이주해 온 것은 8세기경이다.
1000년 마자르족들이 헝가리 왕국이 성립하였으나 합스부르크 제국은 1437년부터 헝가리를 지배하게 되었고, 1526년 헝가리 왕위가 합스부르크 가에 가게 된다. 16세기 초 오스만투르크 제국에게 정복당해서 반독립 왕국이 되었으나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싸워 승리, 카를로비츠 조약이 맺어져 헝가리를 빼앗게 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ia-Hungary)가 수립되었는데, 1918년까지 있었던 이중 국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Empire), 또는 이중 제국(Dual Monarchy)라고도 한다. 헝가리 왕국이 제국 내에서 자치를 누리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헝가리의 왕도 겸임)가 지배하는 제국의 서쪽과 북쪽 땅과의 공동 사안(외교와 국방 등)에는 비례 대표를 통해 참여했다. 이 연방의 정식 명칭은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들 및 신성 헝가리의 이슈트반 왕위의 영토들(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이다.
1919년에서 1946년까지 독재자 호르티가 헝가리를 통치하였는데, 1920년 트리아농 조약에 의하여 패전국 취급을 받고 막대한 영토를 잃었다. 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추축국으로 참전하여 역시 패전국 취급을 받았다.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헝가리 왕국이 무너진 뒤 1946년에 세워졌다.
페르퇴/노이지들러제 문화경관 지구(Fertö/Neusiedlersee Cultural Landscape)라는 이름으로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대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헝가리 영토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 서부에서 독일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역들이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어 부르겐란트 주(州)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1921년의 주민투표 실시 후 쇼프론(외덴부르크) 지역에 대한 관할권만은 헝가리가 계속 보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페르퇴/노이지들러제 문화경관 지구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의 부르겐란트 주(州)에 속하고 남쪽 일부는 헝가리, 즉 쇼프론지역에 속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입장으로 보면 쇼프론의 상실로 인해 부르겐란트 주는 지리적으로 보아 주도(州都)가 될 만한 중심 도시를 잃었고 남부와 북부의 연결이 어렵게 되었다. 1925년에 아이젠슈타트는 부르겐란트 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부르겐란트는 안슐루스(1938~45,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있던 기간) 중에 독일의 니더도나우 주, 슈타이어마르크 주로 분할되어 있었지만, 1945년 오스트리아 주의 하나로서 지위를 회복했다.
페르퇴/노이지들러제 문화경관 지구는 비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광활한 평원과 다양한 습지, 온천지역 등 자연유산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하다. 그러나 유럽 최대 넓이의 스텝(Steppe) 호수인 이곳은 약 8천년 이전부터 동유럽의 문명의 교류 장소로써, 물리적인 환경과 인간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경관, 호수로 이루어진 18-19세기의 궁전들과 전원적 풍경이 있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페르퇴/노이지들러제 문화경관 지구 일대는 오스트리아와 항가리 각국 마다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처음으로 공인한 오스트리아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참고 여기서 IUCN이란 종의 멸종위기등급을 기록하는 세계의 주요 기관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 자원 및 자연보호를 위하여 1948년에 국가, 정부기관 및 NGO의 연합체 형태로 창설되었으며 1992년 Rio 생물다양성협약 이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증대된 세계 최대의 환경단체로 84개 국가회원과 140개 국가의 111개 정부기관 및 870개 이상의 NGO가 가입되어 있으며, 11,000여명의 전문가 그룹이 6개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3월 30일 서영배 교수(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아시아위원회 초대의장에 선출된 바가 있다.
이곳에서 만든 적색목록(- 赤色目錄) 또는 IUCN 레드 리스트(- Red List, 줄여서 레드 리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지구 식물, 동물 종의 보존 상태의 목록이며, 1963년에 만들어졌다.
다음은 http://www.tourist-net.co.at/natps1ae.htm에서 가져온 글이다.
National Park Neusiedler See - General Information
Austria's first IUCN-approved National Park
This national park on the plains at the heart of Europe - reached from both Austria and Hungary - shows that nature knows no boundaries. Its aim is the long-term preservation of habitats for a wide variety of bird and plant life at the point where the Alps meet the Euro-Asiatic plains. The basis for the Park was created by the inclusion of large privately owned areas of cultivated land.
The riches of the area between the Alps and the Puszta
Water, rippling reed beds, sweeping meadows with flat saltwater pools - this ist the National Park known as the Neusiedler See Lakes Area. The Pannonian climate with its long growing period and its position between the Alps and the Puszta determine the type of plant life: mosaics of dry meadow surrounded by wetlands and salt marshes. The National Park is full of wildlife, mainly birds: meadow sandpipers, geese, herons, storks, curlews and birds of prey. The mammal most popular amongst visitors is the funny little suslik, or ground squirrel, that lives in the short grass of the pastures.
From all over the skies
Large parts of the Neusiedler See Lakes National Park are extremely important for the migration of birds. The meadows and marshes are places where many migratory species choose to rest and winter. European research programmes into endangered bird species refer to study results from this Lake Area. One need not be an ornithologist to appreciate the unique experience of waders, ducks and, in particular, tens of thousands of geese passing throught in spring and autumn. The work of the National Park is also of the utmost importance in preserving one of the most endangered birds species in the world, the great bustard.
Saving nature for the people
The main task of the national park is to safeguard the natural processes of nature. However, in the conservation areas, people should be allowed to make use of the land for educational and leisure purposes. People who live in the region, holiday-makers or people on day trips: all of them are asked to treat nature`s creatures with consideration in return for what has now become a rare natural experience. Guiding visitors and encouraging them to behave properly can help here - conservation achieved by locking people out is a contradiction in terms. Nature needs a home, but man should not lose his place in nature.
Everything is based on knowledge
The combination of orginal natural landscape and man-made landscape that not been intensively farmed provides a habitat for avariety of flora and fauna that is unparalleled throughout Europe.Because it is locatad at a point where several climatic zones meet,the area is home to Alpine species as wellas those from the Mediterranean and Central Asia. Scientists have long since made the National-Park area into an open-air laboratory on which their research is focused.Maintaining the quality of the habitat-and thus of the cultivated landscape-means that the area must be put to non-intensive use all the time, based on the regions centuries-old tradition of cattle farming. The results of research help to bring about constant improvements in this work.
From science through politics to the population
Conservationists and scientists hed wanted a National Park in the Neusiedler See Lakes Area for decades. It was not until 1987 that this desire started to bear fruit with the establishment of an Austro-Hungarian planning commission. This commission, which operated not only across national boundaries, but also-at the time-across the Iron Curtain and two completely different froms of society, was not only aimed at protecting the natural environment-it was also a singn of peace. The planners fought for recognition of the National Park by the IUCN from the beginning. Negotiations with the various landowners took five years, and once the contracts had all been signed, the Regional Parliament of Burgenland were able to pass the National Park Act on 12 November 1992.
Cultivated land goes back to nature
The central concern of a National Park is the preservation of a natural landscape where use is no longer made of the land by man and where the dynamics of nature are allowed to take over again. The National Park around the Neusiedler See Laake Area consists of The southern part of Lake Neusiedler and the surrounding marshlands, covering about 4,000 hectares. The areas accessible to people on existing pathways are in the five conservation areas. These are characterised by small, shallow saltwater pools with reed beds, and by wide meadows. The appearance of the meadows and the wide variety of flora and fauna in them are due to the fact that for centuries they were only used for grazing and hay-making.
헝가리는 5개의 국립공원 등을 비롯하여 전 국토의 7.6%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앞의 글에서 소개드린 호르토바지(Hortóbágy)국립공원(63,635헥타르)을 비롯하여, 키쉬쿤샤그(Kiskunság)국립공원(35,859헥타르, 1975년 지정), 뷔크(Bükk)국립공원(38,813헥타르, 1976년 지정), 억텔렉(Aggtelek)국립공원(19,732헥타르, 1985년 지정: 유럽에서 가장 긴 종유동굴이 있음) 그리고 오늘 소개드릴 페르퇴(Fertő)국립공원(13,669헥타르, 1991년 지정)등이 그곳이다.
이 일대에는 많은 궁전과 성을 포함한 문화재들이 있다. 이들을 각 지역별로 소개한다.
오스트리아 아이젠 슈타트(부어겐란트주의 주도)
오스트리아 와인의 고향인 부르겐란드(Burgenland)주는 비엔나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정도만 차로 달려가면 도착한다. 헝가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헝가리 말이 독일어보다 더 잘 통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부르겐란드주의 주도‘에이젠슈타트(Eisenstadt)’의 대표적 건물로 구시가에 있는 에스터하지 성(Schloss Esterhazy)이다. 본래 고딕 궁전으로 13세기에 지어진 이 궁전은, 1663년 개축 공사에 들어가 지금의 바로크 궁전으로 변모하기까지 10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1672년 에스터하지 성이 세워진 후 1805년 프랑스의 모로가 전체적으로 개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또 이곳은 요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이 30년이나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와인’이 아니라 음악성지순례의 코스로 알려진 지역이다. 매년 하이든을 기념하는 연주회가 하이든 페스티벌 기간 중 이곳에서 열린다.
요셉 하이든은 1761년 헝가리의 명문가 에스터하지(Esterhazy) 가의 부악장으로 이 곳 에이젠슈타트에 자리를 잡았다. '에스테르하지 가를 위한 칸타타(CANTATES POUR LES ESTERHAZY)'라는 곡을 남기기도 하였다. 에스터하지 가의 보금자리였던 에스터하지 성에는 하이든이 거의 매일 공연을 하고 창작활동을 했던 콘서트 홀 하이든 잘(Haydn-Saal)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이든은 성 인근에 정원이 달린 집을 마련해 1778년까지 소유했고 지금 그 곳은 하이든 박물관이 되어 있다. 하이든의 이름을 딴 하이든 음악원(Haydn Konservatorium)에는 한국 학생들 비롯한 각국에서 모인 음악도들이 공부하고 있다. 하이든의 유해는 에스터하지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베르크키르헤 마리아 하임주슝(Bergkirche Mariae Heimsuchung)이라는 교회에 위치해 있다. 골고타 언덕의 모습을 본 딴 특이한 모습이 인상적인 이 교회는 1700년대 초에 세워진 것이다.
헝가리 쇼프론(Sopron)
부다페스트에서 지하철 2호선(빨간색)을 타고 Keleti Pu.역에 하차하여 쇼프론(Sopron)행 열차 탑승하면 약 3시간 후에 도착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지역에 위치한다. 잘 보존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쇼프론(Sopron) 시내는 기원전 3세기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지형적인 특성을 살려 상업도시로서의 번영을 누렸고, 유럽 전역이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에 이 도시는 전화를 피해 갔기에 아직도 중세의 풍경이 완벽히 보전되어 있는 고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12년 트리아농 조약과 헝가리 국민투표로 인해 오스트리아에 속하지 않고 헝가리령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시장이었던 투르네르미하이의 생각이 시민들의 큰 지지를 얻게 되어 헝가리에 귀속하게 된 것이다.
시청 앞에는 그의 동상과 마을의 심볼인 불의 탑(Tüztorony)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화제와 적을 감시하기 위하여 세워졌지만 타지에서 들여온 와인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높이 61m의 탑은 각 부분 마다 세워진 시기에 따라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중세에 세워진 탑의 하부는 로마네스크 양식, 16세기에 세워진 회랑은 르네상스 양식, 17세기에 세워진 탑의 상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구성되었다. 124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회랑에 도착하게 되고 쇼프론의 아름다운 구시가 지역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탑의 입구에는 충성의 문(Huseg kapu)이 있다. 1912년 국민투표에 의해 쇼프론이 오스트리아가 아닌 헝가리 령으로 속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문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Főtér 중앙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한가운데는 삼위일체상(Szentharomsagszobor)이 있으며, 슈토르노 저택(Storno Ház)을 비롯한 유명한 헝가리의 저택들도 이 광장에 면해 있다. 대부분 15세기의 건물들이다.
중앙광장 왼쪽에는 시청사 (Varosi Tanacshaz)가, 남쪽에는 베네딕트 수도회 교회인 산양 교회(Kecske Templom)가 있다. 산양(山羊)이 땅 속에서 파낸 금을 양치기 소년이 교회를 짓는데 기부하였다는 전래(傳來)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사이로 천사약국(Angyal Patika haz)이 있는데, 현재는 약국 박물관(Patika múzeum)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기구와 약품들을 볼 수 있다. 중앙광장 정면으로는 아름다운 민가인 슈토르노 가(Storno Ház)와 라 크네르 가, 파브리치우슈 가 등이 늘어서 있다. 길 건너 오른쪽으로는 벤췌쉬 성당이 있고, 성당 앞으로는 에스테르하지 시민 궁전이었던 광업 박물관이 있다.
천사약국 옆의 우이 거리에는 유대 교회(Ozsinagoga)가 두 군데 있는데 11번지에 있는 유대 교회에는 박물관이 있어 유태교의 옛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우이 거리의 끝에는 우르술라 광장이 있고 중앙에는 마리아의 샘 및 네오고딕 로망 양식의 우르술라 교회가 있다. 그 밖에 프란츠 리스트 박물관도 가볼 만한 곳이다. 6∼7월 소프론 축제기간에는 오페라, 발레, 음악회 등 각종 공연이 열린다.
관련 사이트
ㅇ www.sopron.hu
헝가리 페르퇴드(fertőd)
소프론 근교 동쪽으로 27Km 떨어진 곳에는 페르퇴드(fertőd)마을이 있다. 헝가리의 베르사이유라 불리는 에스테르하즈(Esterház)가의 궁전이 있는 도시로서 에스테르하즈 가의 30년간 종신 악장이었던 하이든의 고별교향곡이 작곡되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소프론이나 케세그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에스테르하지 궁전 (Esterházi Kastély)에 대하여 약술한다.
에스테르하지(Esterház)가(家)는 종교개혁 당시 합스부르크가의 편을 들어준 정치적 배려로 인해 후에 백작이 되었으며, 18세기에는 공작의 지위로 격상 되었다. 그래서 에스테르하지가문은 당시 유럽에서 제일 명망있고 부유한 귀족이 되었다. 원래 이들의 저택은 앞에서 소개드렸고, 하이든이 태어난 아이젠슈타트에 있었으나 가문이 융성해 지면서 그곳이 비좁게 되자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Nicholas Esterházy) 백작은 페르퇴드(fertőd)에 새로운 성을 짓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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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Nicholas Esterházy) 백작은 부다페스트 |
대단했던 그의 세도는 이 궁전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자주 비견된 이 성은 18세기 헝가리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성이 되었는데,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720년 빈의 유명한 건축가와 처음 시공했으나 1762년 본격적인 확장공사가 이루어졌고, 1784년 궁전 맞은편에 폭포가 완성되고서야 끝을 맺었다.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혼합되었고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루이 16세풍의 양식도 많이 도입되었다.
당시 공사비용은 1천3백만 플로린이었다. 당시 하이든의 연봉이 400플로린이었으니까 하이든이 3만2천5백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투입한 셈이 된다.
하이든과 궁정악단은 1768년부터 이곳으로 이사해서 살았다. 하이든은 이곳에서 수많은 작품을 작곡, 지휘했다. 연주회 외에 오페라 연극도 끊이지 않고 상연되었는데, 1778년 한해에만 총 242회의 공연이 열렸다고 한다. 1800년 이곳에서 하이든은 영국의 넬슨제독과 동행한 해밀턴부인 등 여러 관객 앞에서 자신의 곡 <깊은 슬픔 시대 미사>를 연주했다. 이를 듣고 감동한 넬슨제독은 자신이 차고 있던 금시계를 하이든에게 선물했다. 하이든은 해밀턴부인을 위한 짧은 칸타타를 작곡하면서 사용한 펜을 제독에게 주었다. 그 후로 <깊은 슬픔 시대 미사>는 <넬슨 미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해밀턴부인은 창녀출신으로 당대의 요부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에스테르하지 궁전 안의 126개의 방과 거실이 매우 볼만 하다. 특히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중앙방과 중국방, 음악방, 대연회실 등이 눈여겨 볼만하며 겨울정원과 당시의 가구, 시계, 그림, 보물 등에도 감탄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복구되어 현재는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연간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궁전을 보기위해 페르퇴드(fertőd)를 방문한다. 여름에는 대연회홀에서 음악회가 개최되는데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궁전견학은 월요일 휴관을 제외하고 가이드 안내를 따라 각 나라 언어의 설명과 함께 실시되며 실내에서는 반드시 비치된 덧신을 신도록 되어있다.
관련 사이트
ㅇ http://www.fertod.hu/ (페르퇴드 사이트)
ㅇ http://fertod.lap.hu/ (페르퇴드 관련 모든 정보)
ㅇ http://www.schloss-esterhazy.at(슐로쓰 에스터하지 관련 모든 정보)
다음은 유네스코 헝가리본부(http://www.unesco.hu)에서 소개한 글이다.
Fertő / Neusiedlersee Cultural Landscape (2001)
In 1979 UNESCO declared Lake Fertő a biosphere reserve due to its unique natural qualities, including the facts that it is a natural body of water with European and international significance and that it is the continent's largest saltwater lake, the westernmost representative of the lakes of the Eurasian steppes. Taking all this into consideration, in 2001 the World Heritage Committee inscribed Lake Fertő/Neusiedlersee, along with the settlements encircling it, onto the World Heritage List as a cultural landscape. This was done on the basis of a joint proposal from Hungary and Austria, which showed exemplary cooperation and was based on common principles. It is undeniable that the area around the lake has been the meeting place of different cultures for 8,000 years, during which time the evolutional symbiosis of human activity and geographical environment has resulted in the development of a unique cultural region. In addition to the area's natural assets, it is worth noting its vernacular architecture and the many important 18th and 19th century palaces, which are significant cultural sights. Three quarters of the lake lies in Austria, but despite this, the region may be considered a natural unit that is not affected greatly by political divisions.
On the Hungarian side the world heritage proposal contains the entire area of the Fertő-Hanság National Park's Lake Fertő portion, as well as Fertőboz, Fertőrákos's historic center and stone quarry, and the Eszterházy and Széchenyi palaces and their surroundings in Fertőd and Nagycenk, respectively (the buffer zone contains the following settlements: Balf, Nagycenk, Hidegség, Fertőhomok, Hegykő, Fertőszéplak, Sarród and Fertőújlak). In the Austrian portion, the area of aquatic habitats in the Neusiedlersee Seewinkel National Park and the listed historic district of Rust free town's downtown were proposed.
The Lake Fertő/Neusiedlersee area also presents us with an unmatched diversity of geological and geomorphological attractions. Within this relatively small area, extraordinarily diverse flora and fauna exist due to the fact that the borders of several climatic zones divide the region into different sections: continental lowland steppe lake, sub-Mediterranean hills and sub-alpine mountains, valuable alkaline deserts, and high mountains are also found.
In addition to the climactic conditions, the high salinity of the ground and water contributes to the biological diversity of the 20,000 year-old Lake Fertő/Neusiedlersee region and its surroundings. Saltwater habitats may be found near the sea throughout Europe, but continental bodies of saltwater only occur in the eastern portion of Europe and the Carpathian Basin. The lake is very shallow; the water depth continually changes, but on average it does not even reach a meter in depth, and the deepest parts do not exceed 180 cm. Therefore the fluctuation in the water level is enormous, and in the past the lake has even dried up entirely for periods (most recently between 1865 and 1871). Further features of the Fertő region are the large areas thickly covered with reeds, about 80 salt marshes, as well as vineyards on the hillsides, since the area has been characterized by viniculture for a long time.
Archeological excavations have been able to trace the area's history back to the sixth millennium b.c.e.; settlement remains and extensive permanent villages of peoples from the early Neolithic era have come to light. Later inhabitants of the region were the Celts, and then the Romans. In 1900, the remains of a spa dating to the time of Marcus Aurelius and a spring used by the Romans were discovered in the southern area of Lake Fertő, and in Fertőrákos ruins of two Roman villas have been excavated.
A network of towns and villages took shape during the course of the Middle Ages, including for example, the settlements of Rust, Purpach, Mörbisch am See and Breitenbrunn on the Austrian side and Fertőrákos, Balf, Hidegség, Fertőboz and Hegykő on the Hungarian side. The myths, legends and stories still live to this day in the imagination of the locals about the impressive natural diversity of the landscape, enriching the area's cultural heritage.
Even today the 18th century's architectural heritage dominates the main streets of towns surrounding the lake. It was at this time that the Eszterházy palace in Fertőd and the Széchenyi palace in Nagycenk were constructed, both of which have special value within this cultural region.
The current form of the Lake Fertő/Neusiedlersee region is therefore the result of a continuous and dynamic process of development clearly exemplifying how varied human cultures have been able to form their habitat in symbiosis with this extraordinary and diverse natural environment. In addition to natural and geographic factors, this landscape is a product of land use, animal husbandry and vini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