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원형을 찾아서(4) - 헝클어진 고대사의 실마리
<이하는 새먼제국(박용숙 저)의 머릿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 머릿글이 샤먼제국이란 책의 압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글만 정독해도 그 어렵고 두꺼운 책을 사보지 않아도 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느낌이 강하게 전해오면 그때 샤먼제국을 사서 읽어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모든분들이 꼭 사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진리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갖고 있는 모든 의혹들이 풀어질 것입니다.
석가세존께서 불교교의 교주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교주이신가?
성경의 구약도, 모든 불교의 역사도 조선의 역사임이 드러납니다.
또한 현문명의 가장 오래된 종교로서 배화교(조로아스터교)가 부도의 전사집단들이 행하던 의례행사였고 이것이 종교화 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뿐이 아니라 미트라교, 브라만교, 힌두교 등 모든 종교의 원형이 조선의 샤머니즘임을 확인하시게 될것입니다. 4대문명, 요즘은 홍산문명 까지 포함하여 5대문명을 말하지만 현재 지구의 모든 고대문명이 바로 고조선의 부도였음도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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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적어도 4세기 이전에 국가가 존재했던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마다 개천절이면 어김없이 반만년의 역사를 기념하지요. 이는 정말 희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가운데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도 한반도 여기저기를 파면서 반만년 역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찾는 물건들은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물건들만 쏟아져 나옵니다. 이집트, 크레타, 소아시아(켈트양식)의 물건들이 우리 땅속에 묻혀 있으니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요? 그뿐 아닙니다. 인도, 중앙아시아의 물건도 있고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남북조 시대 물건도 있습니다. 발굴상황을 보면 이 물건들은 대략 5세기경에 이 땅에 묻혔습니다.
5세기 즈음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 조상이 이집트나 소아시아로 쳐들어가 약탈을 했다고 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전설적인 도깨비들을 모두 동원하여 감쪽같이 그것들을 훔쳐다가 한반도에 묻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유물의 실체는 그런 가정을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그것들은 거의 신성한 제기나 의례기구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4,5세기경에 어떤 종교세력이 한반도로 밀려 왔다고 말해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교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종교가 샤머니즘입니다. 19세기 초에 서구 학자들이 발견한 샤머니즘이 미개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해탈)을 유도하는 방법의 종교였다는 사실은 이제 정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샤머니즘 시대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고 천문학을 교리로 믿었던 제정일치의 사회였습니다. 태양신(우리 용어오는 옥황상제)은 많은 천문박사와 음양(무巫)박사를 거느리는데, 그 박사들이 바로 샤먼입니다. 샤먼은 태양신인 사제와 함께 세계를 지배합니다. 샤머니즘은 일종의 사원국가 형태로 구현되며, 인종을 초월하는 특수한 이념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이 종교는 어떻게 한반도로 왔을까요? 밀자는 이 해답을 얻기 위해 여러 기록과 유물을 찾아보면서, 그 종교가 실은 지중해라고 해야 할 쪽에서 동진하여 한반도에 이르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본곳은 지중해 입니다. 그곳은 미술사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켈트 양식의 황금유물이 만들어진 본고장입니다. 토로스산맥은 오늘의 터키 땅 한가운데에서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그곳 중부 지역에 7,000~8,000년 가량되는 고대유적 차탈휘위크가 있습니다. 1958년에 영국의 제임스 멜라트경이 그곳을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그런데 똑같은 이름이 우리의 <환단고기>에 적혀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거의 같은 소리인 '사타여아'라고 부른곳에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이 혼인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신전으로 보이는 유적 안에서는 천문을 상징하는 소머리(우두상)와 활활 타오르는 불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고, 그곳에 천문대와 연금술이 숙련된 승려 집단이 있었음이 학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정황은 수메르, 바빌로니아, 이집트, 인도 모헨조다로의 유적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며, 그들은 모두 태양신을 믿었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 앤드루 콜린스가 그곳에 살던 도시민들이 오늘의 동아시아인을 연상케 하는 인종이었다고 밝힌 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흑해와 코카서스 산맥으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환단고기>에는 기원전 3,400년경 환인이 차탈휘위크에서 구이九夷를 대동하고 흑수와 백산 사이의 땅으로 갔다고 써있습니다. 흑수는 흑해이고 백산은 백인종의 고향인 코카서스 산맥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구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의 아홉신관이 전지전능한 존재였으며 우주에 관한 고도의 지식이 있었고 직접 천문을 관찰했다고 썼습니다. 아흡신관이란, 사제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이도 이와 다르지 않는 사제계급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샤먼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인은 백산을 가리키는 삼위태백에 있었는데 이곳은 천문대 기능을 했던 피라미드와 다르지 않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언급은 최초의 종교가 샤머니즘과 마찬가지로 천문신을 숭상하는 동이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고전 <서경>은 고대 세계를 구주로 나누고 그중 하나를 옹주라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옹주의 자리에 대해서 "흑수를 따라 삼위에 이르면 그 삼위에서 남해로 들어간다"고 적었습니다. 흑수가 흑해이고 삼위가 삼위태백임을 의미한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남해는 어디일까요?
삼위태백이 있는 코카서스에서 남쪽이란 결국 자그로스 산맥니아 티그리스 강을 타고 들어가는 페르시아 만이 됩니다. <서경>이 중국 땅에서 일어난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소아시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의 중국 땅에서 흑해를 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의 고문헌인 <이아爾雅>는 <논어>나 <서경>같은 책이 한자가아니고 과두문자(올챙이문자)로 쓰여졌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가 설형문자9쐐기문자)를 사용했던 서아시아 문명권에서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1897년 러시아의 고고학자 베세로브스키가 흑수와 백산 사이에서 기원전 3천년대의 마이코프 유적을 발굴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 그루지아 공화국의 영토로 마이코프 유적은 코카서스 산맥에서 발원한 쿠반 강이 서쪽 흑해로 들어가는 연안입니다. 그곳에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유물을 통해 밝혀졌으며 그들이 이집트, 수메르는 물론 인도 모헨조다로 지역과도 무역을 했다는 사실도 입증되었습니다. 환인이 구이를 거느리고 그곳에서 세계를 통치했다는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이제 시선을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 내려갔다는 신시로 옮겨가 봅시다. 그곳은 오늘날 시리아의 중심부 알레포에서 서남방으로 약 5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고대유적 '이브라Ib-La'입니다. 거대한 접시를 엎어 놓은 모양의 이 유적은 1964년 이탈리라의 파올로 마티에가 발굴하였고 그곳이 기원전 3,000년경의 고대도시 '델 마르두크' 신전 터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중심부에는 이크로 폴리스가 있고 그곳에 수많은 수도승이 거주했습니다. '신시'라는 기록이 우연히 나온것이 아니지요. 게다가 '마르두크'의 뜻이 지팡이(낫)이므로 이것 역시 환웅의 천부인과 대응됩니다. 성서는 이 낫을 가리켜 만국을 지배하는 쇠지팡이라고 했습니다. 유적에서 발굴된 점토판은 마르두크신이 수메르 문명 새대의 영웅 사르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환웅이 곧 사르곤입니다. 그렇다면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왕검의 역사도 그곳 어디에서 펼쳐졌을 것입니다.
왕검은 신시를 버리고 강화의 마리산으로 갔습니다. <환단고기>의 고조선기는 이곳을 아사달이라고 적어서 요긴한 정보를 남겨 주었습니다. 마리산은 오늘날 시리아의 심장부에서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나있는 마리mari의 유적지와 대응됩니다. '강화'가 유프라테스 강이고, 마리가mari임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겠지요? 마리 유적지에는 이슈타르 여신전의 터가 남아 있으며, 이 여신의 이름은 아스카르테라고 불렀습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아슈타르케가 '아사달'로 옮겨진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지요. 결정적인 단서는 그곳에서 발견된 다곤Dagon이라는 신의 이름입니다. 어원이 불분명했던 단군이라는 이름의 본래 소리를 짐작케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다곤'이 불레셋 사람들의 주신이며, 이 신은 처음 시리아 지역에서 중배되기 시작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적어도 기원전 2,000년경에는 다곤(단군)이라는 이름의 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불레셋 사람들은 누구 일까요? 성서에는 이 사람들이 람세스3세(기원전 1,188년) 때 이집트를 침입했다고 써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이집트를 인종의 특징을 반영하여 남국이라고 쓰는데, 제21세 단군 소태 때(기우너전 14~13세기)에 이집트로 들어가 그곳에 후국(고리후)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집트 람세스2세가 반격하자, 고조선은 마리의 아사달을 버리고 다시 환응 시대의 이브라(신시)로 돌아갔다고 썼습니다.
불행하게도 기원전 7세기경에 시리아 지역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많은 신전과 왕궁이 무너졌습니다. 신시도 무너져 단군조선은 북쪽의 소아시아 반도로 천문대(부도, 샤머니즘 시대의 신전)을 옮깁니다. 단군 보을때입니다. 옮긴 곳은 오늘의 터키 중서부에 있는 사르디입니다. <환단고기>는 사르디스를 진晉이라고 쓰고 그곳에 천문대가 있다고 암시했는데, 사마천도 <환단고기>와 똑같이 진을 언급합니다. 사르디스는 'Asia' 'Anatole'로 적으며 그 뜻은 '솟아오르는 태양'입니다. 이 개념이 그리스 신화에서는 올림프스라고 표현됩니다. '진'도 천문대가 있는 곳, 해가 떠오르는 부도를 뜻합니다. 고조선은 이곳에서 기원전 6세기경에 막을 내리고 그곳의 사제 계급(구이)이 새 부도를 세우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지역으로 옮겨갑니다. 진은 곧 조선이고 조선은 오늘날 로마 교황청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두뇌집단인 샤먼(구이)들이 만장일치의 의사결정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던 것이지요. 이후 세계사는 열국들이 세계국가(교황청)의 지위를 얻기위해 부도(조선)을 두고 치열한 각축을 하는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새로운 곳에서 일어난 샤먼 사제단이 대월지이며, 그들이 포스트 고조선 세력입니다. 우리의 삼국사는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북부여의 해모수가 메디아 제국의 영웅이며, 오늘의 카스피해(가섭원)남쪽에 있는 고대도시 헝그마타나성에 도읍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헝그마타나 성은 우리 쪽에서 홀승골 성이라고 기록되며, 주몽은 이곳에서 부여의 태자 대소에게 쫒기어 오늘의 중국 신강성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옵니다. 거기에서 졸본부여의 공주와 혼인하며 고구려를 세운 것이지요. 졸본부여의 중심지는 누란이며, 중국은 이를 '소월지'라고 적습니다. 사마천의 기록에는 한의 무제가 기원전 2세기경에 그곳을 침략하여 한사군을 두었다고 썼습니다. 조선이 기원전 2세기경에 중원에 있었음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고구려는 이곳을 기점으로 잃어버린 고조선을 되찾기 위해 소아시아의 사르디스로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알렉산드로스의 정벌로 그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시대는 단명했는데, 304년에 부도(구이) 세력이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중국은 이를 서진이라고 기록합니다. 구이가 중국의 서쪽에서 일어났다는 뜻이지요. 고구려, 신??, 백제의 역사무대가 여기입니다. 그들이 바로 부도를 지키거나 운영하는 삼한입니다. 고구려는 태조대왕 부터 15대 미천왕 때까지 오늘의 우즈베키스탄을 일컫는 소그디아나 지역(사마르칸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트리아, 소그디아나의 구이세력은 자중지란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종지부를 찍고 샤면 사제계급(구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오늘의 중국땅으로 옮겨와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이 시대를 중국은 오호십육국 새대라고 부릅니다. 이 와중에 서진시대의 종실인이 다시 부도를 세우게 되어 중국이 이를 동진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서쪽의 부도세력이 동쪽으로 옮겨 왔다는 뜻이지요.
이 진晉은 대개 남경 일대와 사천성의 성도와 섬서성의 장안 그리고 산둥의 광고로 옮겨 다녔던 것으로, 이 진이 다름 아닌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한(3기능)을 대표하는 주체입니다. 처음 이 진의 세력은 감숙성, 섬서성의 동쪽에서 청해에 이르는 오아시스 일대에 근거를 두고 전개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당황하겠지요. 이곳이 중국의 고유 영토라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중국사의 실체라고 말하는 한나라(후한)는 이미 기원후 3세기 중반에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린 상황입니다. 그러니 그 빈터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말하는 진의 역사가 전개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동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미 사원국가 형태의 통치방식(샤머니즘)은 식상해 졌고 바야흐로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제계급의 대리자였던 고구려는 이때 장안을 근거지로 둥황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었는데, 북위가 동진을 대신하여 세계국가(천하국)의 지위를 얻게되자 고구려의 장수왕은 427년에 한반도(평양)로 근거지를 이동합니다. 그런가 하면 양자강 하류 지역의 남경에서 양나라를 세웠던 백제 세력은 많은 유민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468년경에 한반도의 중서부로 옮겨 옵니다. 이 일은 <삼국사기>의 백제 개로왕기사에서, 개로왕이 동극에다 나라를 세웠다고 씀으로써 사실상 말뚝을 박아놓은 상황입니다. 극極이라는 말은 지자기의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천축이라고 씁니다. 중원에서 볼 때 동극은 한반도임이 분명합니다.
신라는 이보다 앞서는 350년경에 집안현에 나타나 그곳에 부도를 건설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안현 태왕릉과 그일대의 고분군들이 신라의 부도인 것입니다. 중국인이 집안을 태양, 부도를 의미하는 Jin과 비슷한 소리로 '지안Jian'이라고 발음한다는 사실도 이를 뒷바침합니다. 이 중국식 표기 Jian이 동이를 가리키는 진이며 뒤에 발해가 이를 국호로 삼았지요. 집안에 부도를 건설했던 인물은 신라 제17대 내물이사금으로, 당시 실세는 그의 부친 말구각간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는 서진이 망하자 환웅이 그랬던 것처럼 중앙아시아에서 기술자 집단을 거느리고 이동하여 집안에 부도를 세웠던 것입니다. '각간'에서 '角'은 소뿔을, '干'은 흉노의 사제를 말하는 칸khan을 의미합니다.
신라가 샤머니즘 시대의 세계국가를 상징하는 부도를 세우자 고구려는 이를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469년에 장수왕은 1만 말갈병을 거느리고 신라의 실직주를 공격하여 점령합니다. 김부식은 그곳을 소머리주(우수주)라고 써야 함에도 조선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이를 불교용어인 실직이라고 쓰고 그 위치도 지금의 삼척에다가 옮겨놓았습니다. 신라가 한반도의 붙박이 나라임을 굳히기 위해서입니다. 실직은 산스크리트어로 'siddhi'를 옮긴 글자로 보통 실지라고 번역됩니다. 브라만 승려들의 수도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라는 고구려에 밀려서 다시 제21대 소지마립간 때(488년)에 오늘의 경주 첨성대 앞쪽에 샤먼부도(천문대)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나을신궁이라고 부릅니다. '나을'은 날(日) 주그 태양을 뜻합니다. 이 '신궁'이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던 것이지요. 법흥왕, 진흥왕 이후 부도(샤먼) 세력은 불교세력에 져서 그 잔존세력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게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논증의 실감을 더하기 위해 서술 순서를 거꾸로 해서 먼저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지중해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하였씁니다. 이 점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고대사 여행을 떠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