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토), 가을이 되면 뭐를 해도 아까운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어제와 같이 쾌청한 가을날이 그렇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고 한다. 며칠 미세 먼지가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더니 어제부터 날씨가 좋아 잠재된 역마살을 부추긴다. 가 본 지가 오래된 월악산으로 목표를 정하고 새벽에 떠나려는데 무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서리다가 만용을 부리기로 한다. 칭얼대던 아내도 마음을 굳히고 월악산으로 가잔다. 월악산 등산로 중에는 가장 쉽다는 신륵사 코스를 택하여 신륵사 주차장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7시에 등산을 시작한다.


아직 새벽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패딩까지 껴 입고 천천히 신륵사 경내를 지나는데 우리보다 젊은 부부가 가벼운 차림으로 우리를 앞지른다. 워밍업을 하듯 천천히 또 천천히 오른다. 1km 쯤 올랐을까? 이내 가파른 너덜길이 시작된다.


너덜길이 끝나는 안부에 이르면 거리상으로는 꼭 절반인 1.8km이다. 그러나 월악산은 정상 바로 아래가 급경사니 절반이라고 할 수가 없다. 行百里者半於九十이라 했으니 아직도 까마득히 남았다고 생각하려고 하는데도 마음 한 쪽 구석에선 반은 왔다고 우긴다. 능선길이라 視界가 올라 온 길보다 좋다.


드디어 덕주사와 동창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고 데크를 지나면서 산 아래를 굽어본다. 우측 골짜기 안개가 자욱한 곳이 우리가 올라 온 곳이다. 안개가 피어 우리가 올라 온 흔적을 가린다. 신선은 흔적을 남기지 아니 하나니 ---.


데크를 지나가다가 처음 만나는 언덕에서 우리가 지나온 방향으로 조망한 그림이다. 신륵사 골짜기는 안개가 덮었다.


소나무가 視界를 가리지만 그것도 괜찮다. 소나무도 풍경의 일부가 되면 그만이다.


오를수록 월악산의 북사면을 보게 되고 안개가 핀 충주호의 모습을 더욱 광활하게 만난다.


월악산에 몇 차례 오긴 했지만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仙境이란 바로 이런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


월악산의 북쪽이다. 충주호는 보이지 않고 안가가 바다를 이루고 있다. 작은 산들은 안개에 묻혀버렸고 이름 있는 봉우리들만 섬처럼 머리를 내놓고 있다.



약간만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충주호를 벗어나면 안개는 적어진다.


드디어 월악산 영봉 정상에 이른다. 쉬엄쉬엄 오느라 2시간 반 이상이나 걸렸다. 그러나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 仙境에 올라 장관을 접한다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나야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평소에 덕을 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봉을 마주 대하는 방향이 북서쪽 방향이라 충주호의 끝없는 안개가 산 너머에 가득하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붐비지는 않는다. 잠시 후면 인증샷을 하는 데도 줄을 서야 하겠지?


이 방향은 중봉, 하봉 방향이다. 바로 앞에는 중봉이고 그 뒤로 조그마하게 하봉도 보인다.


옛날에 한 번 보덕암에서 하봉, 중봉을 거쳐서 영봉에 오른 적이 있다. 등산로는 바위길을 타고 올라야 하므로 험하지만 오르면서 뒤 돌아 충주호를 보는 경치가 장관이었었다. 지금은 계단을 만들어 놓아 조금 쉬울 것 같다. 다음엔 보덕암에서 오르는 경로를 다시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교만 방자한(?)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월악산 서편 동창교 쪽이다.


영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하고 잠시 신선이 된 기분에 빠져 있는 사이 안개가 차츰 사라진다. 마을도 나타나고 노란 들판도 나타난다.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기를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영봉에서 내려 동쪽 봉우리로 가서 간식을 먹고 휴식하는 사이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이제 충주호를 제외한 골짜기에는 안개가 거의 걷히고 있다.


서쪽 동창교 방향도 더욱 선명해 지고,


동쪽 능선도 산골짜기의 안개는 사라지고 있다.


이제 신선 놀음을 그만하고 하산하기로 한다.


내려가다가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저곳을 내가 올라갔다가 온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암릉에 붙어 서서 수백년을 견디었을 것 같은 노송이다. 나무는 어떤 나무든지 오래 될수록 멋과 품위를 더하는 것 같다.


능선길을 되짚어 내리고, 너덜길을 되짚어 내리니 국사당이 나온다. 지금부터는 완만한 길이다. 오늘 산행에서 신선이라도 된 기분에 빠졌다가 하산길에 한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월악산 산신령이 보우하사 다치지는 않고 말짱했으니 감사할 일이다.


이곳은 출입문을 만들어 둔 곳이다.


한 편으로는 또 뭐가 있는지 막아 놓았다. 여기서 부터는 자동차가 오를 수 있을 만큼 좋은 길이다.


노래라도 부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낙얍이 수북이 떨어져 쌓였다. 속으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간다.


잠시 후 신륵사에 이른다.


신륵사엔 시끄러운 속인들은 오지 마라는 듯하다.


주차장에 내리니 차들이 꽉 찼다. 올 때는 내가 3등이었는데, 지금은 차를 세울 곳이 없을 지경이다. 시계를 보니 12시 45분, 약 6시간 동안 월악산에서 신선놀음에 빠졌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내가 사는 속세로 돌아가 속인의 신분에  맞게 또 열심히 살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