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7일 목요일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기행문은 22회로 마감한다. 23일간의 여행이지만 마지막 날은 비행기에서 돌아오는 시간과 시차가 겹쳐 하루를 다 보내기 때문이다.>

어제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넘어질 뻔 하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난간을 붓잡고 용을 쓰는 동안 난간에 부딪혔는지 옆구리가 아프다. 갈비뼈 부근이다. 골절이라도 되었다면 난감한 일이다.

6시 20분에 식사하러 간다. 차린 것이 잔지바르에 미치지 못한다. 하긴 객실 자체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잔지바르에서는 호강했다는 생각이 든다. 8시 45분 출발이다. 아프리카 도시 여러 곳에서 보아 온 풍경이지만 구두를 닦는 풍경이다. 60년대 우리네 모습이다.



먼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부터 방문한다. 에티오피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는 19631223일에 수교하였다. 수교 이전인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에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연방과 함께 더불어 전투병력을 파견하였다. 에티오피아 전투병력은 황제의 친위대로서 한국 전쟁에서 최정예 군인에 걸맞은 전투 성과를 내고 명예롭게 귀국하였다.

1951413일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돕자는 파병 출정식이 있었다그들이 돕고자 하는 나라는 바로 대이었다. 에티오피아의 강뉴(KANGEW - 카그뉴, 카뉴 라고도 표기) 부대는 참전한 6,037명 중,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나라의 참전용사들은 월급의 일부를 계속 모아 1953년에 동두천에 보화교육원을 건립하고 1956년까지 한국인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그들의 전공을 기리며 연장자인 내 구령에 따라 묵념을 했다. 여행 중 다른 건 사양해 왔지만 묵념을 올리는 구령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리곤 사진을 찍는다.



1935년 이탈리아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기어코 에티오피아를 합병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국제연맹에서 제명당하면서까지 무솔리니는 1936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입성, 황제를 영국으로 쫒아내었으며 에티오피아를 에리트레아, 소말리아와 합쳐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세운다. 그러나 1941년 치열했던 아프리카전이 끝나갈 때 즈음,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황제는 이탈리아군을 쫒아내었고 권좌에 복귀했다. 터키공산주의의 위협 때문에 6.25 전쟁의 참전을 했지만 에티오피아는 오직 정의를 위해 참전을 하였다. 1950한국전쟁 당시 16유엔 참전국 가운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상군 부대를 파견한 유일한 국가였다한국 파병부대 출국 신고식에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 파병 부대 이름을 'Kagnew부대'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부대원들에게 "한국의 자유를 지켜라"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Kagnew' 라는 뜻은 에티오피아어로 격파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후 황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남았는데, 멩게스투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국가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공산주의와 싸우겠다고 스스로 지원했던 참전용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게 되었다그래서 KANGEW부대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에티오피아그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 되어 한동안을 살아가게 된 것이. 기념 탑 주변에는 전사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적힌 비가 서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기증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지금은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하고, 2006 2월부터 춘천시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6.25 참전 용사 회관이 지어져 있어 들어가려다가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는데 주민이 서 있어 비켜달라고 하니 사진 모델이 되어 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표지판 앞으로 가서 포즈를 취한다. 할 수 없이 사진을 찍는다. 참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춘천시에서 참전 용사 후원회를 만들어 참전 용사 기념관을 지어 기증했다는 표지판이다.



참전 용사 후원회 간판도 이렇게 붙어 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6.25 때 전사한 참전 용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2011년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추서한 표창장도 걸려 있다.



KANGEW 부대의 전투 지역도 상세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들이 이렇게 훌륭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도 중요했겠지만 이탈리아와의 전투 경험, 또 황제의 근위 부대로서 최정예 부대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6.25 때 사용했던 무기와 장비들이다. 오랜만에 M1 소총도 볼 수가 있다. 6.25 이후 세월이 20년도 더 지나 내가 입대했던 때도 개인 화기는 M1이었다. 한켠에 쪼그려 앉아 지난 일을 회상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것을 주체할 길이 없어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그들은 목숨을 바쳐 희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부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가? 우리는 지금 우리를 지킬 각오가 되어 있는가? 지금도 참전 용사 170분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 한참 동안을 앉아서 마음을 진정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룩한 희생에 감사하며, 경의를 표한다고 방명록을 적었다.



옆 방에는 참전 용사회 회장이 나와 있었다. 우리 일행은 지난 날 이들의 거룩한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며 정성껏 기부를 했다. 



큰 도움은 안 되더라도 이들이 결코 헛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자긍심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고,



우리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큰 감흥을 안고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을 나왔다. 길거리에 나서면 구두를 닦는 모습이 흔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에티오피아의 국립박물관이다.



루시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여기에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루시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루시는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다. 105cm의 키에 20세 전후. 318만년 전 숨진 걸로 추정한다.

사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에티오피아 언어로 딩크네시(Dinknesh), 'You're beautiful'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이 루시가 된 배경은 고고학자 도널드 조핸슨이 쓴 책에 있는 내용 때문이다. "캠프에는 테이프 레코더가 한 대 있었는데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흘러 나왔다. 우리는 흥에 겨워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그 곡을 계속 들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 새로 발견한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이유로 최초의 인류를 비틀즈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루시의 화석은 게재하지 않는다.


너무 덥다. 대충 관람을 마치고 정원에 나오니 여고생들이 현장 체험 학습을 온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우리 일행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루루 몰려와 알고 있는 한국 말로 인사를 한다. 한류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기념 사진을 찍는데도 온통 난리다. 어느 나라 없이 여고생들은 이렇게 발랄하고 유난스러운 분망함이 있는 모양이다.



박물관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날씨가 너무 덥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다른 한국인들을 만났다. 연예 기획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왔다는 팀이다. 물론 일반인도 함께다.



다음으로 대성당을 들른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이디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천정화가 그려져 있다.



아름답게 장식된 stained glass.


내부를 한 바퀴 돌면서 현지 가이더는 자세한 설명을 하는데 관심 밖의 일이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더위가 맹렬하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이 찻집이다.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데 독특한 문화다. 커피의 맛도 잘 모르겠다. 에티오피아는 커피로 유명한 나라인데 내가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가공 기술이 별로라서인지 특별함은 느낄 수가 없다. 찻집을 나와 시장으로 간다.



재래 시장이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카페트 가게가 많다.



너무 더우니까 상인들도 우산으로 해를 가리고 있다.



여기는 옷가게인데 마네킹들이 엄청 많다. 우리도 쇼윈도에 마네킹을 세워 놓기는 하지만 이렇게 매달아 두지는 않는데 여기는 많은 마네킹을 매달아 놓았다. 물론 세워 놓은 마네킹도 많다.



그 옆에는 시장 바닥에 미싱을 놓고 옷을 만들고 있다. 너무 무질서하긴 해도 활기차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커피를 파는 가게를 찾아 커피를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은 원두 형태로 가공되지 않은 콩을 1kg 샀다. 그 가게까지 가는 데 가이더가 주의해야 한다고 엄청 겁을 주는 바람에 일행들이 서로 손을 잡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그러고도 한 손으로는 가방을 움켜 붙잡고 가는 모습이 가히 구경거리였다. 시장이 난장판이라 시장 바닥에서 태연히 오줌을 누는 사내도 있었다. 5시 다시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공항에서 짐 검사와 출국 수속으로 시간이 걸렸으나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위력을 실감한다. 일부러 우리 일행에 대해 호의를 베풀어 안내를 해 주는 공항 직원도 있었다. 면세점에서 몇 가지 선물을 구입한 후 비행기를 탄다. 10시 45분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한다. 지금 출발하면 비행기에서 날짜 변경이 되고 18일 오후 4시가 되어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 정시에 도착하여 다이렉트로 집으로 갈 수 있는 리무진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좌석은 아내와 찢어져 있다. 소위 말하는 랜덤 방식이라 무작위로 좌석이 배정된다. 아내 옆자리 두 개가 모두 비었기에 좌석을 그리 옮겼다. 그런데 한참 후 흑인 신사가 나타나 자기 자리란다. 나는 30A가 내 자리니 그리로 가 달라고 부탁을 한다. 다행히 그 신사가 내 청을 들어 주어 이산 가족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아니다. 3명이 앉아야 할 자리를 2명이 차지했다. 뒤에는 사람이 없는 자리다. 비지니스석이 부럽지 않은 자리다. 피곤한 몸을 기대고 조는 사이에 기내식이 나온다. 나는 피쉬에 맥주, 아내는 치킨에 와인을 시켜 거창하게 식사를 한다. 어느새 날짜 변경선은 지났다. 이제 1월 18일이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면서, 여행하는 동안 별로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데 대하여 건강이 따라 준 것을 감사하고 먼 훗날 돌아볼 위대한 여행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