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올해는 공자님이 誕降하신 지 257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공자님께 올리는 제사를 보러 성균관 대성전에 갔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석전은 공자님을 모신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석채, 상정제, 정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석전을 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전대제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오늘은 각 지방의 향교에서도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북부순환로에서 막히는 바람에 시작 시간인 10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전제가 시작되어 있었다. 석전제의 처음은 奠幣다. 幣篚(제사 때 신위에 드리는 폐백(幣帛) 따위를 담는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를 신위 앞에 獻幣하는 의식이다.
이제 제사 의식도 사라져가는 것 중의 하나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공자님께 올리는 제사를 보기 위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
대성전은 공자님을 위시한 중국의 성현 21분과 우리나라 설총, 안향 등 18현을 모신 곳이다.
이들이 하는 동작은 팔일무(八佾舞)다. 한 열이 8명씩 8줄로 벌여 서서 모두 64명이 같은 동작으로 문묘제례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춤이라기보다 어찌 보면 마스게임 같다.
이 팔일무에는 文舞와 武舞가 있는데, 전폐와 초헌에 추는 춤은 文舞이다. 머리에는 문관의 모자를 쓰고,
왼손에는 籥(피리의 일종), 오른 손에는 翟[나무로 만든 자루[柄]에 용두(龍頭)를 달고, 용두에 유소(流蘇-끈목으로 매듭을 맺어 그 끝에 색실로 술을 드리운 것)를 늘어뜨린 도구]를 들고 춤을 춘다. 전폐 다음으로 초헌까지는 이런 文舞가 계속되고 음악도 연주되는데 초헌까지는 登歌(당상의 연주단)에서 명안지악과 성안지악을 연주한다.
아헌과 종헌에는 팔일무를 추는 무용단의 복장이 달라지고 춤도 武舞로 바뀐다. 머리에 쓰는 모자도 투구를 상징하는 모자로 바뀌고, 왼손에는 방패, 오른 손에는 도끼를 든다.
登歌의 연주단이다.
방패와 도끼를 든 모습이다.
좀 더 가까이 보면 이렇다.
남자처럼 보이지만 여자들이다. 국악학교 학생들이라고 한다. 文舞를 출 때 쓰던 모자는 모두 발 앞에 벗어 놓았다.
아헌과 종헌까지만 팔일무를 추고, 이어지는 분헌례에서부터는 춤을 추지 않는 것 같다.
제관들이 분주히 당상과 당하를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홀을 들었다.
분헌례가 끝나면 차를 올리는 헌다례가 있다.
헌관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하에 있는 연주단 곧, 獻架의 연주단들이다.
마당에 이런 것이 세워져 있는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헌다례의 순서다. 헌다는 모두 여성 유도회 회원들이 주도한다.
헌다가 끝나면 음복수조례가 있다. 초헌관이 복주를 마시는 의식이다.
음복수조례가 끝나면 철변두가 있다.
이 때 獻架에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팔일무를 추던 무용단은 앉아서 쉰다.
철변두가 끝나면 望瘞례다. 축문과 폐백을 불사르는 의식이다. 망예가 끝나면 모든 의식이 끝나고,
제관들은 모두 당하로 내려온다.
성균관 안에 제물을 어떻게 차렸나 보러 갔지만 통제하여 들여 보내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석전 의식은 모두 끝나고 참관한 사람들에게도 점심을 준다기에 점심을 얻어 먹고 돌아선다.
오는 길에 들른 신륵사다.
강을 끼고 좋은 곳에 위치했다.
신륵사의 상징인 전탑이다.
음산한 날씨 탓인가 별로 사람들이 없다. 오늘은 석전대제와 신륵사 관람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