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건 이사를 하고 병원을 옮긴다음부터 내 마음도 분주해졌다는 것이다.  응급에의 부담은 있어도 시간여유가 많았던 지난 시간에 비하면 붙잡혀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만큼 움직임의 기회가 줄었다.  동시에, 그간 벌여놓았던 오지랖을 유지하려고 하니 마음은 더욱 분주해진다.  시간을 조절하여 일주일 중의 이틀은 헬스와 검도에 투자하고 집안일 등등을 챙기자니 피로감 역시 더하여 움직임을 방해하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이 민욱이에 대한 관심까지도 줄어들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민욱이의 독서습관에 대한 아내의 고민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나는 내 일상에 매몰되어 아이를 잘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돌아봄이 생긴 것이다.


  이사 며칠 전날엔 민욱이와 사라봉에 올랐다.  5년을 살아온 동네건만 바로 옆의 사라봉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퇴근하자마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옷을 입힌 후 햄버거를 사주겠다는 말로 살살 꼬드겨 걷게 했다.  걸어서 산책로 입구까지 15분 정도 걸리는 이 곳을 처음으로 오르자니 괜히 쑥스러웠고, 스마트폰에 빠진 요즘 아이답게 민욱이는 연신 힘들다 어디까지 가냐 투덜대기만 했다.  정상에 올라서서 부자는 이제는 멀어질 동네 모습을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눈에 오래도록 담아두었다.


  혼자 있는 아이에게 늘 신경쓰이는 것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는 일이다.  나는 되도록 사람들을 만날 때, 아이들이 있는 집들과 교류하려 한다.  그래야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아이들은 제각각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성향을 만들어가기에 마냥 어울리지만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성향은 점점 뚜렷해진다.  그것은 아이가 친구관계에 있어 호불호가 생긴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름의 사회성을 갖추게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민욱이는 점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기들만의 정보와 이야기를 나누고 온다.  그런 모습은 대부분, 여느 집이나 그렇듯, 어른들에겐 그닥 보기 좋거나 듣기 좋은 모습만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 하다.  마인크래프트나 요즘 많이 하는 핸드폰 게임에 대해 살짝 떠보면 연관된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진다.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도 좋아져 게임관련 동영상도 직접 찾아 보고는 한다.  나름의 즐거움과 아빠와 함께 즐기는 취미삼아 건프라를 권유하고 건담관련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지만, 그 관심도는 아이들끼리 나누는 그런 것들에 비해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물론 민욱이 나름의 관심과 호기심을 표하긴 하지만, 아이에겐 유행지난 오래된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는듯 하다.


  남자 아이들은 과격함과 거친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다.  허세와 마초의 어떤 무엇들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따라하려 하며, 거친 말들을 쉽게 배워온다.  힘자랑은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은 자신의 존재감의 표현인듯 하다.  때문에 민욱이는 아빠의 등짝이 제 힘자랑의 대상이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여전하다.  보이지 않는 본능 안에서 엄마를 차지하려는 욕심, 아빠의 등짝에 주먹을 날리며 보이는 허세와 존재감, 그리고 직접 내뱉으면 혼날 줄 아니 없는 데서 내뱉는 거친 언설이나 욕설..  일반적인 아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면서도 당장 넘지 말아야 할 수위에 대헤 명확한 선을 인지시키며 천천히 그런것들의 무상함을 깨닫게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숙제이기도 하다. 


  5월 한 달여를 쉬면서 아이의 등교는 내 담당이었다.  한 달간 아침마다 아이를 차로 등교시키면서 이런저런 음악을 같이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모가 된다는 것, 점점 자라는 아이의 부모로서 시기마다의 역할을 인지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 나와 동일선상에 있는 학부모들을 의식하게 된다.


  몇 달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왕따교사 사건'이 알고보니 민욱이가 다니는 학교의 그것도 옆반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한동안 멍했었다.  그리고 차분하고 진중해야겠다 싶어 시간을 두고 사안이 흐르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결론은 오해의 소지가 약간은 있지만, 선생님이 아이를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왕따를 시킨 것이 아니며, 학부모들의 예의 호들갑과 언론의 낚시질이 빚어낸 촌극이었다.  선생님은 하루아침에 억울함과 원치않는 근무지 이동을 당해야 했으며, 학교는 이유없이 번잡해졌다.  학부모가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를 볼모로, 부모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과 수단을 써서라도 아이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아내를 통해서 듣게되는 보통의 학부모들의 은근한 심리였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는 어려운 것일까?  그러자니 나 자신은 일과 일상에 매몰되어 아이를 잘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용을 지키는 학부모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잘 내리지 못하는 나 역시 학부모로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생각도 궁금하고, 숙제를 그닥 내키지 않아하는 아이를 뭐라 할 생각은 없으면서도 숙제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 적절한 책임을 부여해주어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써보았지만, 난처해하는 선생님의 반응에서 결국 나도 호들갑떠는 학부모의 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어버렸다.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이자 학부모인가..


  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만 하지 말라 선을 그어주고, 자잘한 잔소리 외에는 아이가 무얼 하든 놓아두는 편이지만, 요즘 보면 아이는 아이의 삶 자체로도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거쳐 집에 오면 씻고 밥먹고 숙제 일기쓰는 시간 외의 시간이 그리 넉넉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모습도 좀 짠하기도 하다.  아이는 자신이 만든 건프라를 가지고 놀거나 허락하에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거나 하지만, 많은 시간을 그림이 많은 책을 보며 보낸다.  그런 책들 중엔 내가 정기구독 중인 '고래가 그랬어'도 있고, 내가 내용이 괜찮아 사둔 웹툰 단행본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보는 건 한자도둑이나 수학도둑같은, 학습만화류 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학습만화류의 책들은 좀 멀리하겠지 싶은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가 문제제기를 했다.  학습만화류만 보니 글자가 조금만 많아도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순간 무언가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독서습관을 좀 잡아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역시 한번에 강제로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두고 적당한 수를 구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아이가 건프라를 만들때, 니퍼로 게이트를 아무렇게나 잘라 막 조립하는 단계에서 게이트를 섬세하게 손질하고 먹선도 넣으며 찬찬히 조립하는 단계로 유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아이에게는 무엇을 하던 간에 좀 더 윗단계로의 조정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은 아닐까..


  민욱이가 3학년이 되면 무언가를 좀 더 시켜보고 싶다.  공부가 아닌 운동이나 보편적인 악기를 다루는 일들 말이다.  자전거나 운동은 같이 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이가 좀 더 크면 혼자만의 시간이나 행동을 고집하겠지만, 같이 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면 조금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일상생활의 기준이나 책임도 하나하나 부여해주고 싶다.  모든 행위 모든 일상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외국어 외엔 공부를 강요하고 싶진 않다.  우리나라 제도교육은 점점 가진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고,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보듯 권력자의 이념에 부합하는 학습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성 때문에 공교육에서 이탈시킬 생각은 없지만, 아이에게 최소한의 자유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회는 부여해주고 싶다.  아직은 좀 먼 시기의 계획이긴 하지만 말이다.  언제나 같은 결말이긴 하지만, 나는 아이를 통해 내 자아의 성숙이 가능해진다.  생각과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나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통해서 말이다.  내가 무심해지지 않을 노력은 현실의 견고한 숙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