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하 수상해서 나라 전체가 무당기운 가득한 비선실세 한 명에 농락당하는 꼴도 보게 되네요.  황당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멍청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 지경까지 치닫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나라의 꼴이 절망의 심연을 경험케 하는 듯 합니다.  알아서 내려오는게 가장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권좌에 오른 인간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도 참 답답하고 어이없습니다. 


  문제는 그 멍청함을 민주적 제도를 통해 인민들이 직접 권좌에 앉혔다는 것입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권력을 얻은 인간은 멍청하더라도 합법적이고 무난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파악이 된 만큼, 정치적 계산이 농후한 탄핵보다는 직접 올려준 사람들이 직접 끌어내리는 게 맞습니다만, 여전하게도 그 멍청함이 왜 멍청한건지, 그게 멍청한 건지도 모르고 지지하는 인민들이 많다는, 더욱 절망적인 현실도 보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 민주적 절차란 상대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결과적으로 어떤 일을 저지르는 수단으로 작용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듯 합니다. 


  그런 와중에, 맛집포스팅을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습니다.  할까말까 하다가 지난여름, 핸드폰에 저장해 둔 사진자료가 철을 넘기며 빛바래고 있어서, 더 바래기 전에 대략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사진이 카메라가 아닌 핸드폰 사진이라 화질이 좀 나쁘고, 자료가 체계적이지 않아 내용이 단순간결합니다.  더군다나 여름메뉴를 가을의 끝자락에 올리려니 어울리지도 않네요.  하수상한 이런 시절에 별 생각없이 개략으로나마 올리기 적당하다 싶기도 해서 올립니다.  여전히 그 멍청함을 떠받드는 사람들도 배는 고프고 우리도 똑같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은, 맛집을 올리면서 곱씹게 되는 인간의 본능이자 이성의 껄끄러움입니다.


  일하는 곳을 서귀포 신시가지로 옮기고 보니 점심 먹을 때마다 외식을 하게 되는데, 절망적인 사실은 이 동네엔 맛집은 고사하고 맛있게 한 끼 할 만한 곳이 정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점심을 해결하러 나설 때마다, 우리는 어디를 가야할 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더운 어느날 '물회나 먹으러 가자'는 말에 물회는 어느 정도일까 싶은 반 포기의 마음으로 길을 따라나섰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감탄이 나오는 그런 맛은 아니더라도, 제주물회 고유의 특성이 많이 살아있고 그러기에 기본과 손맛이 단단하다는 느낌의 집이었습니다.


  자리철에는 자리물회를 맛보았었고, 한치철에는 한치물회를 맛보았는데 이때엔 한치가 한창 잡히는 때였으니 활한치물회로 주문했습니다.


  반찬은 단촐하지만, 각각 손이 깃든 그런 반찬들이었습니다.  특히 자리조림은 인원수대로 나오는데, 고소함과 배인 양념이 인상깊었던 밑반찬이었습니다.  밑반찬만으로 따지자면, 종류는 작지만 이렇게 손이 깃든 반찬을 만나기도 참 어려운 시절이긴 합니다.


  활한치 물회가 나왔습니다.  인원수에 맞추어 양은그릇에 한꺼번에 나옵니다.  된장베이스의 육수에 무 오이채가 가득하고 깻잎과 김 고춧가루가 얹혀나옵니다.  국물은 미지근하지만 얼음이 많아서 이내 시원해집니다.  물회를 먹어보면 너무 차갑지 않고 미지근한 정도가 같이 딸려나오는 밥 한그릇 같이하기 딱 좋습니다. 


  자리물회의 모습도 여기에 한치에서 자리로만 바꾸면 똑같습니다.


  각자의 그릇에 담아 밥공기와 함께 놓았습니다.  이 집의 특징이라면, 된장베이스의 제주 전통방식의 물회에 가깝다는 것 외에, 테이블엔 빙초산과 함께 다진 제피잎을 담은 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피잎은 향이 아주 강렬해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니 이렇게 개인그릇에 담은 뒤에 취향에 따라 조금 넣어먹는 것이 좋습니다.  제피잎의 알싸한 향이 물회와 나름의 조화를 이룬다는 데엔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다만 제피잎의 향이 부담스러워 넣지 않는 것 뿐이죠.  저도 제피잎을 나름 넣어 먹어보았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화순곶자왈의 깊은 청량감과 여름밤 습하고 시원한 한치낚시의 여유가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요?   


  아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의 탄탄함과 함께 오랜 시간의 흔적이 엿보이는 방식의 든든한 물회였습니다.  사실 물회는 아주 맛있기 힘든 음식이기도 하고,  이 동네에 맛집이 너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 선호의 입맛따라 변하는 제주의 물회보다는 된장베이스의 제주 전통방식에 가까운 물회를 맛보고 싶다면 이 집은 꼭 가보셔야 할 듯 합니다.  제피는 꼭 넣어 보시길 바랍니다.  호불호를 떠나서 그건 음식문화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