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 여행차 다녀간 일 말고는 아무런 연이 없는 섬이었다.  누구의 소개로 온 것도 아닌, 호기롭게 선택해 내려온 남쪽의 섬에서 처음 얼마간은 분주함 때문에 가족 홀로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보충할 살림들을 장만하고 주변정리가 끝나자 장인 장모님을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셨다. 

  입도 후 2주 정도가 지나자 설 연휴가 시작되었고, 나와 아내와 아들 셋만 집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그제서야 고립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가나 처가에 가려면 밀려도 차만 몰면 되던 때에서, 비행기나 배를 예약해야만 갈 수 있는 섬사람 신세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는 섬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음도 깨달았다.  발이 묶인 기분과 고립감으로 누군가를 만나려 하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 차를 몰았다.  인연은 깊지 않아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 명절이라 섬에 없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런 정황을 가늠하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찾아가보고, 없다면 아쉬운대로 중산간이나 바닷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오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부를 만난 건, 전공의 1년차 중반을 보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엄청난 양의 업무와 당직, 그리고 번잡한 서울생활에 지쳐갈 때 즈음, 무주의 어느 산골로 들어가 삶을 꾸려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 모습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부부의 다큐멘터리를 일 초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알아내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용렬하고 무례해 보일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런데, 부부는 그러자는 답장을 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일요일 서초동의 어느 까페에서 잠깐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내게는 완벽한 환기였다.  지방에 내려갈 때 까지 서울에서의 수련생활을 잘 참아내자 다짐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시간이 흘러 우리가 제주행을 택했을 때, 그 부부도 제주에 내려와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섬에서 우리가 무작정 찾아간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부였다.  스테이는 회천동에 있었고, 무작정 찾아간 스테이 대문의 벨을 누르자 그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우리를 잘 몰라보는 그에게 나는 몇 년 전의 만남을 이야기했고 그제서야 그는 우리를 알아보았다.  아내분은 출타 중이었고, 우리는 스테이 한 켠의 서재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그간의 안부와 제주에 입도했음을 이야기했다.  조용한 성격의 그와 호들갑스럽지 않은 우리 사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몇 년만에 우연하게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공통의 흐름이 있기도 어려웠다.  다만 기억에 남는 건, 제주에서 키우는 고추는 이상하게 다 매워진다는 그의 말이었다.  아마도 텃밭을 이야기하는 도중이었을 것이다.  인상적이지 않고 담담했던 대화는 담담한 인연으로 이어져, 그와는 아직도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관계로 연을 잇고 있다. 

  내려오기 전 아동관련 책 동호회 분들과의 만남에서 제주에 가면 회원 한 분이 살고 계신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입도하고 정리가 되면 만나봐야겠다 했는데, 먼저 연락을 주셔서 어느날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저지리에서 택시영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 분이 사주신 저녁메뉴는 몸국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없는 어디서부터인가 거부감이 솟는 이름의 음식이었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약간은 까끌하고 속을 묵직하게 긁는 듯한 맛이었다.  몸국과 함께 돔베고기를 먹으며, 그 분이 익살맞게 구사하는 제주어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녁을 대접해주신 것도 감사했는데, 헤어지면서 책을 한 권 주셨다.  이영권 선생님의 제주사였다.  내가 지금까지 그 분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을 간직하는 건 이 책 때문이다.  나는 제주사라는 책 한 권으로 따뜻한 남쪽의 휴양섬이라는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제주섬의 이미지를 완벽히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멀고 먼 거리 바다건너 변방의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고립감, 외로움 등등의 우울한 기분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다.  섬 안은 어딜가든 차로 한 시간 거리였고, 한 시간 거리 안에 호기심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새로움과 호기심이 고립과 외로움을 압도했다.  거기에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갔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안다는 것을 넘어, 섬 안에서의 내 호기심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활동으로 발전했다.  살림을 풀고 잠깐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은 이제는 흔적없는 기억이 되었다.  지금은 너무 많다 싶을 정도의 오지랖으로 제주생활을 즐긴다.  그 안에 내가 제주섬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로 인해 내 생활은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풍성하다.  제주에 와서 처음 맞았던 설 명절 오전, 쌀쌀하고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몰았던 그 때의 막연함을 지금 이 순간, 아무렇지 않은 가벼운 마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회상할 수 있음을 난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