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었음에도 나는 텃밭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처럼 잡초를 걷어내거나 땅을 뒤집지도 않았다.  이번 겨울은 눈을 거의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따뜻해서, 텃밭의 잡초들은 더욱 무성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일단 텃밭에 신경을 끄고, 마당 곳곳에 피어난 잡초들에만 우선 신경을 썼다.  매년 하는 텃밭농사이지만, 올해의 시작은 게을렀다.

  그렇다고 텃밭일에 지치거나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내 머리속에는 겨울의 끝자락부터 올해엔 무얼 심어볼까, 작물의 구성과 비율은 어떻게 조절할까, 고민거리가 가득했다.  머리 속은 분주하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예전처럼 왕성한 노동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작은 텃밭이라는 생각에, 기계없이 가장 단순한 도구와 노동력만으로 벌이는 농사를 흉내내고 있었다.  해마다 힘은 무척 들면서도 효율은 별로인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몸에 쌓인 에너지를 발산하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몸은 점점 버거워했다.  이제는 농사를 흉내내기보다는, 작은 텃밭에 어울리는 소소한 운영을 생각하게 된다. 

  3월 내내 텃밭을 바라보며 생각한 것들은 이렇다.  우선 작년에 만들었던 이랑과 고랑을 그대로 활용한다.  지금 당장 잡초를 거두지 말고, 음력 3월이 시작되면 이랑 하나하나마다 모종을 심거나 파종을 하면서 잡초를 거둔다.  거름주기 역시 미리 주지 않고, 모종을 심으면서 옆으로 원예용 유기질 비료를 조금씩 같이 묻어준다.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게으르고 느긋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각 작물의 모종 수를 줄이고 작물 종류를 다양하게 심는다.  작년까지는 심다보면 고추 종류만 너무 많이 심어서, 거둔 고추들을 냉동실에 보관해서 일년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올해는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좀 더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우리 텃밭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작물들을 선별해서 심을 계획이다. 

  올해엔 텃밭 운영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을 주었다.  첫번째는 생강재배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생강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출근길의 집부근 도로변 어느 밭에 생강이 재배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호기심이 일어 우리 집에서도 작게 재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종자생강을 구해야 했다.  제주도에서 재배한다는 자색 생강도 고민했다.  그러나, 종자생강은 육지에서 대용량으로 팔고 있었고, 자색생강은 판매는 했지만 종자를 팔지는 않았다.  이럴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오일장에 가는 것이다.  종자생강을 구하기 위해 오일장을 돌아다니니, 역시 모종을 다루는 곳에서 종자생강을 파는 집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종자생강을 파는 집에서는 생강구입과 동시에 생강을 재배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종자생강은 생각보다 비쌌고, 말이 종자생강이지 우리가 그냥 사 먹는 생강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토종씨앗에 관심이 생겼다.  토종씨앗 고민은 작년부터 있었는데, 작년에는 때를 놓쳤다.  올해엔 미리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나눔행사 소식을 듣고 몇가지 씨앗을 주문했다.  쥐이빨 옥수수, 흑수박, 독새기콩, 오리눈콩, 우도땅콩, 봉강오이, 상리단 호박 그리고 수비초와 미양적상추를 받았다.  콩 종류는 텃밭에 직접 파종하고, 나머지는 발아를 위해 포트에 심었다.  허브류는 오레가노와 바질을 포트에 심었다. 

  4월 초가 되었고, 음력으로는 3월이 시작되었다.  바람은 많이 부드러워졌고, 햇살은 조금 따가워졌다.  더워진 공기에 땀이 나는 날도 가끔씩 있었다.  텃밭에 모종을 심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어느날 오전, 나는 반려견을 데리고 걸어서 집 가까운 모종집에 가서 여러 모종을 샀다.  순한고추, 청양초, 꽈리고추, 흑방울 토마토, 가지, 애호박, 참외, 물외, 깻잎 그리고 옥수수..  중간크기의 종이박스에 가득 들어찰 만큼에 딱 2만원을 지불했다.  한 번에 모두 심을 욕심없이 조금씩 텃밭을 채워 나갔다.  계획대로, 이랑 하나를 먼저 잡초를 거둔 다음,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종들을 심어나갔다.  심는 위치는 작년에 심었던 자리를 피해 배정했다.  콩 종류는 하루 정도 미리 물에 불린 다음, 한 구멍에 세 알씩 적당한 간격으로 심었다.  생강은 마디를 뚝뚝 잘라 역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었다.  심은 간격 중간에는 유기질 비료를 넉넉하게 땅에 묻었다.  하루에 두 이랑씩, 잡초를 걷고 계획한 모종을 심거나 파종을 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걷어낸 잡초들은 이전에 집 곳곳에서 미리 거두어 말려둔 잡초들과 섞어 모종을 심거나 파종한 이랑을 덮는 용도로 사용했다.  특히 생강은 심어주고 물과 비료도 잘 주어야 하지만 이랑을 두텁게 덮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집 마당은 곳곳에서 잡초가 많이 올라와서, 이랑을 덮을 것들을 준비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모종을 다 심고 파종할 것도 다 마무리 한 다음에는 지주대를 세웠다.  그리고, 모종들을 바로 지주대에 묶어주었다.  제주에서는 바람이 거칠고 세서, 바람만으로도 모종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작은 모종이라도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토마토는 높이 자랄 수 있게 큰 지주대를 세워 주었다.  옥수수는 집 경계 담벼락 아래 줄지어 심었고, 물외나 참외, 호박 등등은 텃밭 외에도 마당의 공터 곳곳에 심어 주었다.  포트에 파종한 토종씨앗들은 파종도 조금 늦긴 했지만, 자연 온도에서 발아시키려니 많이 늦었다.  봉강오이와 흑수박, 미양적상추는 싹을 틔웠지만, 나머지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고추의 발아조건이 18도 이상 유지되어야 하니 아직은 좀 힘들긴 할 것이다.  밤에는 보일러가 돌아가는 창고에 넣고 낮에는 햇살비치는 마당에 내놓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바질과 오레가노의 발아도 늦어지긴 마찬가지이다. 

  포트에서 발아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토종들을 심기 위해, 텃밭에는 이랑 두 개가 비어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꾹꾹 눌러 채운 듯 모종들이 심어졌고, 콩과 생강이 심어졌다.  올해의 봄 텃밭 작업은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서서히 발아할 토종씨앗들만 나중에 텃밭 안으로 옮겨심고, 텃밭 주변의 정리되지 않은 잡초들을 제거해주는 일만 남았다.  이 역시 서두르지 않고, 햇살 좋고 시간이 나는 날에 조금씩 해 나갈 것이다.  모종을 다 심고나니, 좀 더 따뜻해질 줄 알았던 날씨는 생각과 달리 저온현상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는 날이 흐리며 안개비가 이어지는 나날이다.  좀 더 더워져야 덩굴작물들이 적응할 것이고, 콩들도 발아를 시작할 것인데 낮은 온도에 성장이 지연되고 약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나 미리 다짐했듯 조급해하지 않고 걱정도 조금만 하기로 했다.  작은 텃밭에 어울리는 운영은 몸도 좀 덜 움직이고 생각도 좀 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해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자라게 하고, 열린 만큼의 수확에 적당히 만족하는 것이다.  그래도 때마다 손은 필요하고 몸은 어쩔 수 없이 분주할 것이다.  한 해 한 해 텃밭을 운영하면서 습관처럼 운명처럼 몸과 마음이 움직여진다.  올해에도 한 해 텃밭을 시작했고, 나는 자연의 섭리에 맡겨 몸을 움직여야 한다.  텃밭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몸 어딘가의 뻐근함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