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자마자, 원장님의 2 장기 휴가로 당직체제 근무가 편성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과 밤을 하루씩 번갈아 퇴근하고 있다.  혼자 먹고, 혼자 살림 정리하고, 출퇴근하는 일상은 외의 모든 것들에 신경 여지를 주지 않는다.  느낌이 이상하던 오른쪽 무릎은 고정자세에서 대퇴부가 회전하듯 움직이면 찌릿하게 아파왔다.  병원에 있는 무릎 보호대를 하나 구입해서 움직이는 동안에 착용하고 다닌다.  무릎이 아프고, 일상을 유지하는데 힘이 드니 검도는 과감히 포기했다.  운동은 점심시간 잠깐 헬스장에 들려 배틀로프와 플랭크만으로 유지하는 중이다.  이제는 일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체력소모가 크다.  단지 피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몸이 피곤하다고 먼저 신호를 보낸다.  정신이 신호 앞에서 버티지를 못한다.


  개원 준비는 잠시 보류다.  아마도 이번 주까지, 2주는 그냥 놓는 수준으로 보류상태이다.  설령 시간에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자리를 보았더라도, 어차피 마땅한 수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수소문한 소식들을 정리하고, 원장님과 상의한 지분문제를 세세히 알아보고, 부동산과 의사 정보 사이트를 뒤지는 정도의 작업만 이어졌다.  사이트는 조용하고, 두번 지난 개원희망지에는 여전히 틈새하나 보이지 않았다.  인간적인 신뢰와 파격에 가까운 제안을 제외한, 명확하게 따져보고 계산해야 부분은 지식이 부족하고 자료가 부족하다.  원장님이 돌아오면 나는 물어보고 상의할 것들을 정리한다.  


  도와주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는 진료에 발이 묶여 몸과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틈틈이 혼자 원하는 것을 알아보고 정리하고 준비하는 일이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답보상태에서 마음과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답답함은 나의 부족한 계산능력과 게으름 때문인지, 아니면 처한 상황이 발을 묶어버려서인지 자주 돌아보게 된다.  후자였으면 하는 마음이고, 사실 그런 면이 크지만, 나는 전자의 분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고 있다.  애써 외면하려는 마음이 조금 비루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에게너같은 의사가 있구나.’라며 감탄하고 칭찬했지만, 나는 감탄과 칭찬의 이면에 냉정하게 자리한 현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현실 안에서는의사라는 직함 하나로 실정 모르고 이상만 쫓는 사람, 조금 내려놓으면 그렇게 살아갈 있는 직업군,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해 질문과 행동 하나하나가 답답하기만 부적응자.’ 뿐이다.  독톡하고 생각있는 의사로서의 과거 이미지는, 현재에 와서 계산 잘못해 모든 순서가 뒤바뀌어 사서 고생중인 예비개원의로 변했다.


  혼자가 되니 다시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다.  냉장고 파먹기는 시작이 제일 좋다.  당장에 꺼내 먹을 있는 반찬들과 군것질거리들이 넘친다.  당장에 먹을 있는 것들을 비우고 나면, 다음부터는 조리해야 하는 재료들이나 인스턴트들이 보인다.  저녁마다 다음날 하루 먹을 분량의 밥을 하고, 소량의 찌개나 국거리를 끓여둔다.  아침에 먹고, 도시락을 싼다.  요즘같은 때엔 야간까지 진료하는 날엔 도시락을 개씩 싼다.  진료실에서는 움직임이 없으니 도시락 양이 많거나 다채로울 필요가 없다.  텃밭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먹거리들이 거두어지고 있다.  텃밭에서 거둔 것들 만으로도 먹거리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쳐난다.  몸이 게을러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불필요한 지출없이 내가 먹을 것들을 해결할 있는 것이다. 


  이번주 까지는 몸과 마음이 정신없을 것이다.  출퇴근만 신경써도 지치는 주가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면 장맛비가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  더워지고 조금 왔다고 다시 고랑을 덮어버린 잡초들과, 뒤뜰에 다시 자리를 메우기 시작한 잡초들이 눈에 밟히고 있던 터였다.  장마가 시작되면, 텃밭과 뒤뜰은 대책이 사라진다.  어쩔 없이 놓고 무성한 덤불들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  주말에 잠깐이라도 비가 멈춰주려나..  그래준다면, 틈틈이 장화신고 잡초를 뽑아낼 것이다.  , 개원자리 물색도 다시 돌아다니며 알아보아야 한다.  동안 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주말이면 다시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버겁다.  나는 게으른가? 라는 의문은 결과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게으를 없도록 스스로 일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