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가 많이 열렸다.  작년보다 알은 작지만, 주렁주렁 많이 열렸다.  제주섬 특유의 대찬 바람이 지나갔음에도, 살구는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그대로 매달려 색대로 익어갔다.  약을 치지 않아 어떤 것들은 벌레 먹었고, 그물망을 치지 않아 익은 것들은 새들이 먼저 상처를 냈다.  그것 그대로 거두어, 먹을 없는 부분은 베어내고 알뜰하게 먹었다.  달콤함이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에 포근함을 느낀다.  나는 살구를 좋아한다.


  살구가 너무 많이 매달려 가지가 늘어졌다.  장인어른은 색은 완연하지만 조금 익은 살구들을 거두어 살구청을 만드셨다.  어차피 먹을 것이고, 이대로 두었다간 새들이 먼저 부리로 쪼아댈 것이니, 먹을 조금만 남겨 익히고 나머지는 살구청을 만들자는 심산이셨다.  때는 6 초순이었고, 매실을 거두는 시기였다.  올해 매실은 손에도 차지 않을 정도로 적게 열려서, 장인은 매실을 사다가 매실청을 담그면서 살구청도 생각하신 것이었다.  정성을 다하셨다.  매실은 꼭지를 따고 반으로 갈라 씨를 내고 항아리에 담으셨다.  설탕을 켜켜이 쌓아 넣고 밀봉을 하셨다.  살구도 마찬가지였다.  씨를 빼내고 너무 벌레먹은 것들은 제외하고 씻어서 설탕에 섞어 통에 담으셨다.  살구는 과즙이 설탕에 녹아들며 과육이 금방 쪼그라들었다.  당분간 혼자 있을 사위가 더운날 얼음물에 타서 시원하게 마실 있도록 그렇게 정성을 들이셨다.  


  30년만에 만난 어머니와의 우연한 대화에서, 어머니는 내가 살구를 좋아한다는 말에 몸을 떨었다.  당신은 나를 속에 담고 있을 , 아버지가 오신 검은 비닐봉지 살구 여러 알을 자리에서 드셨다고 했다.  레베카 솔닛은멀고도 가까운에서 살구잼을 만들며 어머니와의 애증 어렸던 시간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도 그랬을까?  나에게 살구는 혈연의 끈이다.  맛이라고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 두텁고 폭신한 연결체이다.  그것을 손수 거두어 직접 손질하여 청으로 담근 장인의 손길도, 한여름 맛에의 기대가 아닌 깊은 연대와 다독임이다.


  살구를 거두고 나니, 텃밭에서는 처음으로 거둘 것들이 보였다.  마당에 심은 애호박 하나가 먹기 좋을 만큼 굵어졌고, 가지 하나가 땅에 닿을 만큼 길어졌다.  마지막 거둔 살구 알과 처음 거둔 가지와 애호박을 함께 담아 주방으로 가져갔다.  거둔 것들은 되도록 빨리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있다.  애호박을 토막 일부와 가지를 얇게 썰어서,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살짝 노릇하게 익힌 따뜻할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 발사믹 식초에 버무려 먹었다.  전채요리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이다.  살구는 씻어서 반으로 쪼개 씨를 빼고 바로 먹었다. 남은 애호박은 조금씩 잘라 파치로 주워 양파와 함께 강된장 찌개에 넣어 먹었다.  수확하자 마자 바로 먹으니 안에 생기 넘치는 단맛이 돌고, 거둔 양이 적어도 하나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럴 있는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얼마 전체를 바퀴 돌아 잡초를 뽑았다 했지만, 말이 무섭게 마당과 텃밭에는 다시 잡초가 땅을 뒤덮기 시작했다.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전에 호미를 잡고 쪼그려 앉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로즈마리 덤불 옆에 심은 참외덩굴에서는 노란 꽃이 피었다.  늦여름이 되면 꽃만큼 노란 참외가 매달려 있을 것이다.  고구마들은 자리를 잡고 있지만, 넉넉한 거름에 먼저 뿌리내린 잡초들이 고구마 줄기를 뒤덮을 기세이다.  아내가 루꼴라가 먹고 싶다 해서 파종한 자리엔 이제 루꼴라의 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멀리 있는 아들 곁으로 이제 떠난 뒤였다.  여름이 완연하니 마당에 손님도 늘었다.  하늘소들이 길다란 더듬이를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뒤뚱거린다.  풀모기들은 두말할 없다.  로즈마리 덤불을 따라 뒤뜰로 가는 좁은 통로엔 거미줄이 수시로 길을 막았다.  제비들이 뒤늦게 필로티 천장 아래 공간에 집을 짓고 있었다.  아래 주차한 지붕에는 온통 말라붙은 진흙덩어리들과 제비똥으로 지저분하다.  뿌리 가까이 줄기를 쳐냈던 펜넬은 어느새 만큼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우고 붉은 줄이 선명한 풍뎅이들을 불러모았다.  마당 구석 곳곳에는 딜이 줄기를 세우고 마찬가지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월동했던 고수는 꽃이 시든 자리에 둥글게 씨를 맺어 메마른 색으로 익어갔다.  장마의 직전, 마당의 여름풍경이 완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