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텃밭에서 자리를 제대로 배정받지 못하는 작물이 오이와 호박이다.  , 자리만 잡고 조건만 맞으면 굵직한 것들을 주렁주렁 매다는 들이다.  그런데, 우리 텃밭에서는 열매가 그리 많이 매달리지 않는다.  방치해서 관리나 방제를 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고, 자리를 잡아주지 못해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집이 아쉽지 않게 먹을 있을 정도로 꾸준하게 매달리기는 하지만, 기대나 나름의 관심에 비해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없다.  


  텃밭을 처음 만들고, 오이는 남쪽 벽에 줄이나 그물을 쳐서 아래에 오이를 심었다.  기어 오르겠지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리는 남쪽으로 맞붙은 3층짜리 옆집으로 하루 종일 그늘이었다.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  더디게 자라 덩굴줄기를 내고, 간신히 줄이나 그물을 붙잡은 오이는 어쩌다 하나씩 먹을 만한 오이를 내어 주곤 했다.  자리를 바꾸어주려 고민을 해도 마땅치 않았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오이망을 걸칠 지주대를 세우는 일은 나름 고민스러운 일이다.  다른 작물들을 고려한 자리배정 역시 고심해야 했다.  오이는, 우리 텃밭에서 어쩔 없이 되지 않는 작물이라 단념하고 매년 형식적으로 심어왔다.  그러다, 작년부터 나름의 해결방법이 생겼다. 


  작년 , 아내는 포도나무를 심고 싶다 했었다.  유실수를 무척 좋아하는 아내는 마당과 텃밭을 유실수를 가득 채우고도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심어야 했다. 어디에 심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자리는 1 안방 데크 자리였다.  데크 앞으로는 기역자 돌담이 세워져 있어 공간을 은밀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기역자 돌담 안쪽과 데크 사이는 흙이었다.  그리고, 오전이면, 동향인 안방 통유리에 햇볕이 반사되어 안쪽을 비추었다.  나는 자리에 켐벨 포도나무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포도가 자라면 타고 오를 있도록 여섯개의 나무지주대를 세우고 위로 노루망을 덮었다.  완성해놓고 보니, 땅에 박힌 지주대는 오이가 타고 자랄 만한 훌륭한 도구였다.  지주대에 줄이나 그물을 감고, 아래 오이를 심었다.  아주 자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이는 이전보다 훨씬 양호하게 성장했고, 꽃도 많이 피워냈다.  그렇다고 오이를 아주 많이 내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보다는 아쉬움을 조금 보상해 정도로만 오이를 키워냈다. 


  호박도 마찬가지였다.  텃밭용으로 나오는 여러 호박 모종들 중에서, 나는 주로 애호박 품종을 심었다.  녀석들은 해마다 자리를 배정하느라 고민스러웠다.  아무데나 둔덕 만들어주고 심으면 그만이지만, 작은 텃밭에 자리 넓게 마련해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돌담 경계 아래에 심자니 그늘지고, 여름에는 뜨거워진 돌에 말라갔다.  어느 해엔 뒤뜰에 자리해주었더니 다른 잡초덩굴과 뒤엉켜 아무렇게나 자라다 호박 두어 열고는 말라버렸다.  땅이 너무 척박한 데다, 뒤뜰에 심어 관심에서 조금 멀어지니 주는 조차도 게을러져서 방치되었던 때문이다.  한없이 뻗는 줄기들 때문에 텃밭 안에서는 관리가 힘들었다.  그러면서 조금 구석에 심거나 시야에서 조금 곳에 심으면, 관심이 줄어든 그만큼, 호박은 열매맺기를 게을리 했다.  올해는 마당 기역자 돌담 바깥쪽에 호박을 심었다.  텃밭에도 공간을 비워두고 간격을 넉넉히 주어 호박을 심었다.  녀석들은 열심히 줄기를 뻗어가며 공간을 장악했다.  넓은 잎들 아래로 여린 초록의 알찬 호박을 은밀하게 숨겨두고 있었다.  


  오이와 호박은 거두지 않으면 금방 늙어버렸다.  점점 커지는 것들을 보며 거두어야겠구나 싶다가 잠깐 잊어버리면, 녀석들은 어느새 노각과 노랗게 바랜 애호박이 되어버렸다.  자리를 잡고 성장을 돌보며 열매를 거두는 일까지, 녀석들은 은근 까다롭게 굴었다.  다른 작물들도 그렇지만, 오이와 애호박은 한여름의 좋은 먹거리이다.  무더위로 입맛이 없어 간단하고 시원한 비빔면으로 끼니를 때울 , 금방 거둔 오이를 채썰어 듬뿍 넣으면 향긋하고 시원한 느낌이 간단한 끼니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호박 역시 여러 요리에 활용도가 높지만, 호박을 주인공삼아 만든 호박전은 여름밤 파티안주로 제격이다.  이제 거둔 호박을 둥글고 얇게 썰어 계란물을 입혀 부쳐낸 호박전은 달고 물기가 촉촉하다.  어른의 입맛이 완연해진 나에게 이런 호박전은 매력이자 만족이다.  막걸리나 맥주 곁들이지 않을 없는 것이다.  


  많이 열리지는 않아도 먹거리나 두번 파티를 하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은 양이다.  방치농법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열려 볼품없어도, 맛있게 먹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다.  열심히 먹지 않으면 오히려 남는 정도이고, 방제나 성장을 위해 약을 쓰지 않으니 그냥 두어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남는 것들은 냉장고로 들어간다.  나는 냉장고로 들어가는 것들이 아쉽다.  금방 먹는다고 하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것들은 생각보다 기억해내기 어렵다.  거두자마자 생기와 맛을 잃기 시작한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해진다.  얼른 먹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의 안심을 안겨 문명의 도구가 냉장고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녀석들은 안심한 인간의 기억에서 차츰 희미해진다.  자연스러운 마당에서 자라 인위의 도구인 냉장고 안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행위에 종종 어색함을 느낀다.  어쩌면, 마트에서 편하게 돈을 지불하고 녀석들을 냉장고에 넣는 행위였다면 느끼지 않을 감정이었을 것이다.  행위 사이에서 다시 솟아나는 괴리감은 어디에 원인이 있는 것인지 깨닫기 어렵다.  냉장고일까?  손으로 직접 거둔 것과, 주고 사온 것의 어떤 차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