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으로 마무리 주말이었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다에 스노클링을 해서 아쉬웠고, 아내와 아들녀석이 다시 공부하러 멀리 떠나 아쉬웠다.  마음은 담담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했던 것들이 다가와 생각대로 되어가는 모습이 괜시리 아쉬웠다.  흐르는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사실마저도 아쉬웠다.  


  아들녀석과 어떻게 시간을 보낸 것인지 기억을 하지 못하겠다.  시간은 그만큼 빨랐다.  조금 넘게 아들은 집에 있었다.  방학이란 아이들의 시간이어서, 아들녀석은 어떻게든 게임과, 게임관련 동영상을 보고 즐기려 사투했다.  그런 모습을 엄마와 아빠가 가만 없었고, 초등 고학년을 예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 투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사이 아들은 피아노를 배웠고, 영어를 이어갔으며, 엄마의 지도하에 한국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했다.  아빠는 게임시간 엄수를 주문했고, 운동을 권유했으며, 혼자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니도록 훈련시켰다.  투닥거리면서도 시간을 나름대로 채워나갔던 방학이었다.  


  아내는 자신도 바다에 들어가보겠다며 스노클 장비를 마련했었다.  여름이면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장비없이 바다에 몸만 담그곤 했었다.  올해 물놀이는 스스로도 게을렀다.  그러다 아내가 장비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해외로 가기 전에 바다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가 마지막 기회였다.  장비들을 챙겨들고 곽지로 향했다.  사람이 많고 통제가 심한 해수욕장 영역을 벗어나 바로 포구에서 소소하게 스노클링을 즐겼다.  아들은 바다에서 나오질 않았고, 아내는 마련한 장비들을 사용하는 만족했다.  나도 올해 처음의 스노클링을 가족들과 함께 소소하게 즐겼다는 만족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아쉬웠다.  깊은 한담 바다에서 광활한 풍경을 감상하곤 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잠수는 못해도, 깊이와 시야가 주는 광활하고 두려운 풍경에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다음날 혼자서 스노클링에 나섰지만, 한담은 휴가 절정기에 차를 세워둘 곳도 없었다.  아쉬운대로, 곽지로 다시 가서 전날 놀았던 포구 바깥쪽 바다를 넉넉하게 돌아다녔다.  바다를 즐길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몸으로는 8 중순 이후로는 바닷물이 차게 느껴질 것이다.  슈트를 입으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제는 점점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집에 와서는 아들녀석과 간이 풀장에 물을 받아 오후를 즐겼다.  그것이 올해 여름 물놀이라는 소소한 재미와 사치의 마지막이었다.  굳이 내가 혼자서 즐긴다면 모를까, 집의 간이 풀장에 몸을 담그고, 홀로 바다에 몸을 담그는 일은 별로 없을 같다.  내년을 기약할 일이 되어 흘러버렸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은 다음날 멀리 떠났다.  이번 초겨울까지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온전히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들의 모습을 깨닫는다.  곳의 처남네에서 홀로 집의 남매들과 어울리며 눈치껏 스스로 행동하던 아이는, 집에 와서 모든 것을 스스로 무장해제했다.  많이 달라졌구나 했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아들에게 내가 권유 또는 강요한 것은 너무 부담스럽고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녀석은 곳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단호하다.  그래서 스스로 이번학기까지만이라 생각하는 하다.  부모는 곳에서 재미있게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 흐뭇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녀석이 겪게 공부의 편차가 걱정이다.  오자마자 중학생 공부를 하게 녀석을 두고 엄마는 조급하고, 아빠는 아이의 능력을 믿고 여유를 부린다.  그렇지만, 걱정은 매한가지이다.  녀석이 돌아오면 적응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부모의 개입과 간섭이 필요한전략 나라 교육의 부분인데, 아이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며 여유부린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를 나라에서 평생 공부하게 수도 없고 본인도 원치 않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렇게 힘들고 고민스러운 곳이 나라이다.  


  아들녀석은 곳에서 해낼 것이다.  나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이에게 하나의 경험으로, 나라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하게 배려한 것도 나름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보내며, 별다른 고민이나 걱정이 들지 않았던 이유이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올 아이를 생각하면 걱정이 생긴다.  공부만 필요없이 나이에 경험하고 배울만한 다양한 것들을 찾아서 공부하자는 말이, 사회에서는 얼마나 허황된 이상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없는 다짐이다.  아이를 보내며 느꼈던 아쉬움은, 당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서운함에서도 비롯되었지만, 돌아와서 겪어야 모든 것이 미리 던져주는 예고같은 것에서도 비롯되었다.  아이가 견뎌내야 부담에 대한 부모의 아픔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 역시 시기가 있으니 시간은 알아서 흘러 것이다.  아이가 돌아와 흐를 시간은 아쉬움이 아닌 다행감이 크길 바란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시간을 알차게 보냈음이 옳았다는 증명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