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는 재작년, 수박은 작년부터 심기 시작한 작물들이다.  녀석들은 주인의 방치아래 아무렇게나 줄기를 뻗다가 조용히 열매 두개를 맺었다.  숨은 조용히 익어간 열매들은 어느날 주인의 눈에 들켜 땅에서 들려졌다.  한여름 또는 늦여름의 숨바꼭질이었다.  


  참외 모종을 심는 시기는 고추나 다른 작물을 심는 시기보다 늦어야 한다.  2-3 이상 늦게, 공기가 따뜻해진 다음에 심어야 모종이 죽지 않고 제대로 줄기를 뻗었다.  사실을 올해 깨달았다.  살아남은 녀석을 보기까지 두세 모종을 추위에 잃었다.  마지막 심은 녀석은 한낮의 햇볕에 웅크린듯 버티더니 이내 줄기를 사방으로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먹 개만한 참외 두어 개를 열었다.  


  수박 역시 호기심에 처음 나온 모종을 사는 아니었다.  그런 녀석들은 자라지도 않거니와, 자라도 수박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참외 모종을 안심하고 심을 있을 무렵, 수박은 접을 붙여 안정된 모종으로 종묘사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접붙인 녀석으로 구입해서 텃밭에 심었는데, 크기가 작기는 해도 수박을 아쉽지 않게 맺어냈다.  수박에 관하여 흥미롭고 뿌듯한 사실이 하나 있다.  올해 처음 시도했던 토종 씨앗 심기는 대부분 실패로 결말이 났다.  그런데, 수박만큼은 아니었다.  흑수박 씨앗을 포트에 심어 싹을 틔워 충분히 자란 모종을 텃밭에 심었는데, 하나이긴 해도 배구공만한 수박이 열린 것이다.  흑수박은 작지만 익어주었고 맛도 충분히 달았다.  사실 토종씨앗 중에서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녀석이었는데,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어주었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게 짧고 서툴다.  


  보통 참외와 수박은 6 경부터 맛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노지에서 길러보면 달에서 정도 늦게 익는다.  게으른 텃밭주인의 한가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과일이나 채소는 제철이 있음을 생각하면 정도의 간격은 인위적이라 밖에 없다.  사실 그러하다.  하우스 재배, 성장촉진 기술과 약제 등등이 작물들을 빨리 익고 크게 만들게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도 하우스 딸기와 노지 딸기가 있다.  하우스 딸기는 2 말이 되면 마트에서 있지만 노지 딸기는 빨라도 5 초가 되어야 만날 있다.  딸기의 제철은 적어도 5월은 되어야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기술은 이렇게 먹거리의 제철을 망각하고 빠르게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켜 준다.


  그녀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가무잡잡했다.  세상 거의 모든 짐을 짊어진 듯한 표정에 차림은 팔토시에 남루한 작업복이었다.  3월의 어느날, 진료실엔 딸기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그녀의 남루한 작업복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였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힘들어 죽겠다며 진통제 주사라도 놓아달라 사정했다.  앞뒤 설명없이 진통제부터 달라는 환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차림에서 퍼지는 딸기향에 다짜고짜인 환자의 사정을 어렴풋이 이해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수시로 작업을 해야 하는 딸기농사에 몸이 지쳐버린 것이었다.  일단 의자에 앉히고 차분하게 질문을 던지니 환자는 자신의 사정을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 움직일 수가 없고, 자신은 동의 딸기하우스를 혼자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수확시기가 되어 아침 6시부터 새벽 시까지 몸을 수가 없고, 지금도 인부들 부려놓고 너무 힘들어 잠깐 병원에 것이라 했다.  느긋하게 수액이라도 맞고 가고 싶지만, 그럴 여유도 없으니 주사라도 달라고 했다.  


  철을 일찍 당긴 하우스 농사로 피로에 찌든 병원으로 달려오는 환자들을 몇몇 마주했었다.  이후로 초봄이면 마트에 들어서자 마자 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가지런히 쌓인 딸기들을 바라보기가 무거웠다.  쉽게 손이 가지도 않았다.  딸기 뿐만 아니었다.  박스에 가지런히 담겨 열을 맞추어 쌓인 과일들을 보면, 과일들의 제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수많은 과일들의 제철을 잊고 살고 있었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딸기는 이미 2 부터가 제철이었고, 노지딸기는 조금 늦게 즐기는 특이한 먹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성주에서 참외값이 폭락했다고 천변에 쏟아 버렸다는 뉴스가 나온 6 경이었지만, 텃밭에서 익어가는 참외는 7 이후에나 맛을 있었다.  애월 한담으로 잠시 스노클링을 즐기러 가는 길의 7 신엄 길거리에는 커다란 수박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 텃밭의 수박은 크기도 작고 거두려면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들의 그런 차이를,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이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고통과 수고로움을 쏟아넣은 것이다.  차이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 그것이 누군가의 고통과 수고라면 우리는 차이를 이렇게 당연한 아무런 생각없이 누려도 되는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텃밭의 녀석들도 주인의 게으름을 알았다.  참외는 모종 4 정도 심어서 정확히 3개를 거두어 먹었다.  달고 맛있었지만, 수확량으로 치자면 그저 재미의 수준이었다.  수박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줄무늬 수박 3개와 배구공만한 흑수박 개가 전부였다.  작은 줄무늬 수박들은 말라카 여행에서 보았던 노점의 수박쥬스용 정도의 크기였다.  그래도 맛은 훌륭해서 시원하게 한여름을 즐길 있었다.  하나는 아이디어가 생겨서 수박에 작은 구멍을 내고 소주병을 박아 수박소주를 만들어 마셨다.  녀석들은 내게 여러 생각거리들을 진지하게 던져주기도 했지만, 한여름의 제철을 제대로 즐길 있게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수박과 참외가 역할을 하니 어느새 아침바람이 시원해지고 열대야도 사라지고 있었다.  녀석들은 봄과 여름의 텃밭이 이제 마무리되었다는 알림 역할까지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미련같이 남은 여름의 끝자락에, 이제 가을텃밭을 준비하라고 녀석들의 줄기가 시들어 말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