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시작되면 고립을 감내해야 한다.  고립을 둘러싸고, 공감하되 현실의 뭍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반대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공감하지만 현실의 뭍에서 먹고사는데 열심인 회색지대의 회색인간이다.  제주에 2공항은 필요없다는 싸움에 대한 나의 지점이다.  


  제주의 2공항에 관한 , 내가 이제껏 직간접으로 접한 내용만으로도 그것이 어째서 필요가 없는지, 공항을 주장하는 도정의 이유는 무엇인지는 넉넉하게 설명 가능하다.  그리고, 내용은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제주 신공항이라고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굴비엮여 나오듯 하는 이야기들을 다시 적어내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책의 의도와도 많이 일치한다.  신공항을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구심점으로 모여 세상의 목소리로 전파되는가를 궁금해 때이다. 


  책은, 신공항을 반대하는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논리와 합리를 거쳐 나오는지에 대한 귀납적 관찰의 결과이다.  그리고, 논리와 합리와 행동을 이끌어내는 이들의 생각과 삶에 대한 고찰이다.  초점은 신공항을 반대하는 영역 안에서도 반대의 정수, 그러니까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살아가며 반대의 모든 것을 이끌어내는 이들에 닿아 있다.  그들의 생각, 활동, 생활 안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념, 사상, 고민들을 드러내 보인 작업이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들의 주장은 너무 과격하고 거친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그들은 거칠지 않았다.  안에서의 저항은 모두 평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도 평화와 안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정에서도 신공항 문제에서도, 이들을 거칠게 대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이들은 추진하는 주체, 도정이었고 공권력이었다.  밀려서는 안되는 싸움에서 거친 자극에 대항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의 거칠어짐이다.  그것은 다시 언론에 의해 부풀려지고, 외부세력, 폭력행위, 고소고발 등등의 단어로 이미지를 규정받는다.  나는 세상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 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것이라 믿는다.  분명 옳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전반적 또는 국지적 환경에서, 그들은 옳지 않은 변화를 조금이라도 주춤하게 또는 더디게 만드는 역류의 중심에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항자들의 내면을 바라볼 기회 없이, 보여지고 주어지는 모습과 단어들 만으로 그들을 거칠게 규정하는 수많은 보편 안에서, 그들은 힘들게 핍진의 시간을 이어간다.  


  강정에 이은 신공항 문제는 추진과 저항의 시간 안에서 수많은 생각거리들을 남겼다.  국회의원 마저도 대놓고 드러냈던 현지인과 외지인의 차별문제, 극한의 저항 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냈던 남성과 여성의 차별, 생각을 구성하고 조직함 안에서도 어려운 합의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라 불리는 마을과 청년회 등등이 드러내보인 가여운 인식의 모습들..  개인적으로는 신공항 관련 비자림로 확장 반대 문화제에서 보인 마을 청년회의 작태들에 공동체에 대한 깊은 실망과 상처를 안았다.  강정의 사후에도 그러했듯, 공동체는 각자와 일부의 이익에 충실한 이기와 무지의 집합체일 뿐임을 깨닫게 계기였다.  이후로 나는, 공동체와 마을이라는 어떤 결속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른 불가항력의 변화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실망했던 공동체의 속내는 지금 선흘리 동물테마파크 추진 과정에서도 틀림없고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울림과 주장의 어떤 경계가 있다면 책은 경계 바깥의 소리가 아닌 경계 안의 직조된 현들을 직시한다.  현들의 울림은 어떻게 시작되며 저마다의 울림은 어떻게 구성되어 경계 밖의 소리로 퍼지는가..  안에서 우리가 공감하며 느끼거나 고민했던 것들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글쓴이는 수유너머의 일원답게, 글은 간결하나 가볍지 않다.  나는 여전히 공감하는 회색인간으로 책을 읽어냈다.  그리고, 세상의 보편적 시선을 넘어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단단하게 다독였다.  그리고 공감과 지지는 현실 안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금 깨닫고 움직이려 한다.